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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水月 서동애의 수필 '내 고향'

by 고흥을 찾아서 2015. 7. 1.

 

내 고향              

                                                                             水月 서동애

                       

내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군 외나로도이다.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지명은 쑥이 무성한 고을이라 하여 봉래(逢萊)라고 불렀다는데 지금은 그저 나로도라 부른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다.

 

이곳은 고흥반도에서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섬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양축장(養畜場)의 속장(屬場)이 있었다고 한다. 영조대에는 곡초(穀草)와 분양마(分養馬)를 사육하여 바쳤는데 그 당시 말을 키웠던 육마장(育馬場)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나로도항이 어항 역할을 시작한지 올해로 80년이 된다. 일본 강점기 대는 어업 전진기지로 지정되어 인근 남해 연안의 수산기지와 어울리면서 큰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봄에는 삼치어장 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전북 위도와 함께 전국 파시(波市)중 두번재로 손꼽히는 어장이었다. 성시가 되면 조업하던 어선들이 뭍에 접안 할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럴때면 부둣가는 사람들로 들끓었고 선술집에서는 연일 장구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노을을 타고 들려오는 선술집 아가씨들의 노랫소리는 오히려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나는 그때 빨래터에서 유난히 앳되어 보이던 c를 만났다.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내 사춘기 추억 속에 측은지심으로 자리 잡은 친구이다. 내 고향 나로도를 떠 올리면 거의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그에 대한 회억(回憶)은 숱한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있는지.

 

물때가 되면 출어를 하는 어선들로 온 부두는 술렁 거린다. 어선에서 뿜어되는 중유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이 깔린다. 그제야 선술집 여인들은 밀린 빨래를 안고 냇가로 모여든다. 그녀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었다.

 

미처 지우지 못한 화장탓인지 얼룩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머리는 제멋대로 엉켜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애처로움을 느끼게 했다. 억센 바다 사내들 틈에 부대끼는 고달픈 삶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않고 그 모습 그대로 풀숲에 주저앉아 신세타령을 하기가 일쑤 였다. 그들 중에서 가장 어리게 보였던 c는 화장을 지우고 나면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 있는 십 대 소녀로 돌아갔다. 고향이 충청도라던 그녀와 가까워지고 나서 얼마후, 그가 이곳까지 흘러 들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빨래를 하다 말고 수시로 먼 하늘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진한 눈물이 홍건이 고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함부로 불확실한 선입견으로 남의 처지를 재단할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십대의 꿈을 간직한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그녀는 장차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 했는데, 과연 그꿈을 이루기는 했는지.

 

나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그녀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혹시 고향으로 돌아 갔을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전업한 것은 아닐까. 여하튼 선술집 앞을 지날 때면 행여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열린문 사이로 가게 안을 기웃거려기도 했다.

 

훨씬 후에 안 일이지만 그녀가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것은 순전히 우리 할머니 때문이었다. 내가 가끔 술집 여자와 만나는 것을 안 할머니는 혹시 손녀가 잘못될가 봐 걱정되어 아예 그녀를 우리 동네에서 격리 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동네에 발걸음을 하면 크게 혼내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한마디의 작별인사도 없이 무심하게 헤어진 그녀와나. 이젠 30년도 훨씬 넘고 보니 새삼스럽게 그대 그 시절이 못내 그리워진다. 몸은 비록 진흙탕에 묻혀 있었을망정 해맑은 영혼만을 늘 싱그러운 연꽃처럼 청초한 꿈을 꾸던 그녀는 필시 좋은 가정과 행복한 삶을 가구며 살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내게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한 곳도 나로도이다. 풍부한 어족 때문에 성시(盛市)를 이루던 곳, 이제는 어로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무차별적인 치어(稚漁0남획으로 수산자원이 점점 고갈되는 바람에 선술집도 하나둘씩 문을닫아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다만 뱃사람들의 낭만과 여인네들의 애환이 먼 옛날 이야기로 남아 있을뿐이다.

 

드넓은 하늘을 오가는 비행기를 쳐다볼뿐, 그것을 한번도 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섬마을. 그러나 먼지와 번뇌속에 찌든 도시인들이 찿아오면 언제라도 따뜻이 보듬어 주는 나로도의 인정. 그런데 내 가슴엔 전에 없이 고독한 바다가 되어 비릿한 갯내음만 피워 올리고 있다.

 

한평생, 거센 파도와 싸우며 살아가는 내고향 나로도 사람들에게 늘 만선의 끼쁨이 파도처럼 출렁거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水月 서동애 프로필

전남 고흥 나로도 출생

백송예술제 용산 백일제 수필 장원수상

월간순수문학 수필등단

순수수필작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동작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