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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성지고흥

호국성지 고흥 진무성장군의 무열사를 찾아서

by 고흥을 찾아서 2015. 4. 13.

 

 

 

두원면 신송리 무열사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에 전공을 세운 조선중기 무장 송계 진무성장군(1566∼1638)을 기리는 사우로 여양진씨문중에서 매년 음력2월과 8월 둘째정일에 춘추계 제향을 올리고 있다.

 

1826년(순조 26)에 대서면 상남리에 용강사를 지어 진무성 장군 및 3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1868년 (고종 5)에 서원사우일제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다가 1882년(고종19)에 호남 유림의 발의와 영남 유림의 협찬으로 두원면에 복원하여 무열사라 하였다. 2번에 거쳐 고쳐지어 진무성 장군만 제향토록 하고 동상을 세웠다.

 

무열사에는 진무성 장군의 영정, 칠성검(七星劍)과 일산(日傘) 그리고 진무성 장군이 무과에 급제 및 각기 관직을 제수 받았던 교지와 소지(所志)·상서(上書)· 명문(明文)·입안(立案)·호구단자(戶口單子)·통문(通文) 등 총79매의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58호로 관리되고 있다.

 

진무성장군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 휘하의 군관으로 그해 6월 당포해전에서부터 공을 세우고 용명을 날렸다.

 

임진왜란의 전공으로 선무원종1등공신에 책록 되었으며, 34세가 되던 1599년(선조 32)에 무과에 급제하고, 1605년(선조 38) 유원진첨사, 1623년 (인조 1)년 경흥도호부사, 1626년(인조 4)  통제영우후,  정묘호란이 있은 뒤에는 장재(將才)가 거듭 인정되어  1627년 (인조 5) 구성군수, 1630년(인조 8)  구성도호부사겸 방어사 등의 무관요직을 두루 거쳤다.

 

1638년(인조 16) 향리에 돌아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바로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총관이 가증(加贈)되었다.

 

묘지는 고흥에서 두원면사무소 지나 왼편 야산 시멘트 도로 입구에 이정표가 있으며 도로 끝 묘역 상단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