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사楞伽寺에서
오재동
흰 구름 몇 굽이 능선을 감고 넘어온다
솔숲을 헤치고 골짝으로 불어온 바람은 대웅전을 기웃거리고
고요를 흔들어 깨우는 풍경소리는 단청이 시리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흐르는 촛불 앞에서
살아서 지은 죄 풀지 못하고
아스라이 너무나 멀리 있는 염원
꼭 감아쥔 두 손 모두우고
들릴 듯 말 득 향 묻는 음색으로
슬픔을 유언처럼 일궈 올린 여인의 기도 소리
너를 위해 천 번 죽어도 여한이 있으리오
바람이 지나고 새들이 지저귄다
전생에 살다 이생의 산자락 속에서 머물다 가고 싶다고
흘러간 세월 무거운 행장 저 멀리 산 아래 벗어놓고
그림자처럼 올라온 비구니의 포름한 눈동자
눈썹 가늘게 덮고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우리는 것은
지금껏 마음을 닫지 못하고 두고 온 슬픔 하나 남아 있는 탓일까
이제 어둠이 내린다
산은 갈매빛 치맛자락 풀어 대웅전을 감아 돌고
사립문 너머 선사禪師가 머무른 뜰방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고무신 한 컬레
노을빛 곱게 내려 앉아 하늘 끝에 닿으면
슬픔도 가랑잎도 마음에 피어 아름답지 않으리
아미타불 한 줄가 내려와 빈 가슴 가득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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