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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마가렛

강무홍 글, 장호 그림의 인물동화책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 -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야기

by 고흥을 찾아서 2013. 8. 1.

 

 

세상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외롭고 쓸쓸한 섬,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그림책입니다.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의 손과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한센병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썩어 가는 손발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보듬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한 수녀님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줍니다. 최대한 색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연필선으로 표현한 그림이 글과 어울려 따스한 느낌을 전합니다.

 

 

2005년 11월 21일 이른 새벽 소록도선착장에는 첫 배를 타기 위해 나온 수녀님 두 분이 서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43년 전 이 섬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다 헤진 손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얼른 보기에 가까운 뭍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행선지는 바로 오스트리아. 파란 눈의 수녀님 두 분은 70대 은발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록도 선착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녀들이 떠난 후 텅 빈 방에서는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고 적힌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국내 의료기술의 향상과 고령의 나이로 더 이상 자신들이 할 일이 없고, 한센병 환자와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줄까봐 말없이 떠난다는 내용이 A4 용지 두 장에 촘촘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때는 거슬러 196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국립간호대학을 졸업한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레크는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20대 후반의 나이로 들어왔습니다.

 

처음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이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환자들의 썩어 가는 부위를 맨손으로 만지고 약을 발라주었습니다.

 

언어가 달라서 손짓과 발짓, 눈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지만, 수녀님의 정성과 진심은 환자들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환자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변화시켰습니다. 전염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의료진들도 더 이상 환자들을 피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했으며, 전국에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소록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열악한 소록도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자, 고국에 도움을 요청하여 각종 의약품과 우유, 물리치료기와 새 건물과 치료 시설을 지을 후원금까지 지원 받았습니다.

 

또한 수녀님은 한센병 환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원과 보육원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완치된 환자들을 위해서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재봉 기술, 건술 기술, 농사일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소록도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두 분의 선행이 알려지자 각종 기관과 언론에서 상을 주려고 하고 인터뷰를 청하였으나, 수녀님은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1996년 받은 국민훈장 모란장의 상금마저 병이 다 나아서 소록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 10만원과 고국 수녀회에서 보내는 생활비까지 환자들의 우유나 간식비, 교통비로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들은 작은 장롱과 십자가만 있는 좁은 방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일흔이 넘자, 수녀님은 늙고 병든 몸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05년 겨울 아침,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라는 편지만 남긴 채, 43년간의 소록도 생활을 접고 아무도 모르게 가방 하나만 들고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3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는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 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과 봉사한 인물 이야기를 많이 집필한 글작가 강무홍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두 수녀님의 43년 선행의 발자취를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게 만들었습니다.

 

소록도에 가서 한센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녀님들과 함께 일했던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두 분의 진정하고 고결한 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작가가 느낀 그 감동은 어린이책에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무겁고 어두운 ‘한센병’과 ‘소록도’를 아름답고 문학적인 글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감동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더해졌습니다. 200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그림 작가 장호는 소록도 큰 할매 작은 할매에서 최대한 색을 배제하고 수백 번 반복된 연필 선으로, 부드럽지만 생명력과 감정이 느껴지는 인물들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젊은 시절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그림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그림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그러지고 뭉개졌지만 선하고 편안한 한센인의 모습을 마치 두 분 수녀님의 눈을 통해 보듯이 따뜻하게 그려냈습니다.

 

 

글쓴이 강무홍

1962년 경주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습니다. 1997년에는 제49회 아동문학 평론 부문 신인 문학상에 당선됐습니다. 현재 어린이 책 전문 기획실인 ‘햇살과나무꾼’에서 주간으로 일하면서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섬마을 소년의 꿈』『탐험가 허영호』『호랑이 잡은 피리』『좀더 깨끗이』『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깡딱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새벽』『비오는 날』『괴물들이 사는 나라』 등이 있습니다.

 

 

그린이 장호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2009년에는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습니다. 사람(인물초상)과 사람살이(풍속화)를 그려왔으며 그린 책으로 『나비잠』『달은 어디에 떠 있나』『큰애기 복순이』『어린 엄마』『명혜』『행복한 이티할아버지』『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귀신고래』『내 푸른 자전거』『강아지』『아! 여우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