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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마가렛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씨앗, 소록도에 찾아온 푸른 눈의 천사들

by 고흥을 찾아서 2013. 8. 1.

천주교회 병사 미사에서

 

교회 부흥회에서

 

보육소에서(까리따스 수녀회와 조창원 원장)

 

영아원에서(보모와 수녀, 의료진)

 

영아원에서(마리안느 수녀와 반드로겐신부)

 

영아원에서(마가렛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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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리가 놓였지만 녹동항에서 뱃길로 5분 거리, 육지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 섬 모양이 사슴을 닮았다 해서 ‘소록도’라고 불리는 그곳은 이름과 달리 눈물과 한숨이 가득한 비극의 섬이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부터 지난 한 세기 동안 소위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한센병은 나균 때문에 살이 썩고 뼈가 녹아서 손발이나 코와 입 등이 뭉그러지거나 없어지는 병으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불릴 만큼 무서운 병이었다.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와 신체접촉을 하거나 그들이 만진 물건만 만져도 병이 전염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센병이 발병하면 가족과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버림받았으며 정부에서는 법을 제정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소록도에 모여 살게 했다.

 

명분은 치료와 재활이었지만, 실제 소록도의 상황은 처참했다. 치료시설이나 의료진은커녕, 환자들이 거처할 곳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환자 5,000명에 의사와 간호사가 고작 5명이었다. 그나마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병이 옮을까 봐 장갑과 마스크 등 중무장을 하고 되도록 환자와의 접촉을 피했다. 제대로 된 치료약은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치료라고는 그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독약을 뿌려대는 것뿐이었다.

 

환자들은 4평이 안 되는 작은 방에 13명이 함께 생활해야 했으며, 식량과 연료도 모자라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환자들은 병으로 얻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참아내야 했다.

 

그러던 1960년대 20대 후반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거릿 피사렛 수녀는 수도자이자 간호사로 소록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전후 궁핍함이 나라 전체에 만연해 있고 꽃다운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상당수의 의료인조차 꺼리는 한센인들과 생활하며 봉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고국에서 보내온 의약품과 지원금으로 사랑과 봉사를 베풀었고,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수술을 알선했다. 환자 자녀를 위해 영아원을 운영했고, 자활사업에도 발 벗고 나섰다.

 

시간은 흘러 2005년 겨울 두 수녀는 43년간 머물던 소록도를 늙고 병든 몸이 환자들에게 짐이 된다며 편지 한 통만 남기고 홀연 고국으로 돌아갔다.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뉴스들만 줄줄이 들려오는 가운데 소록도 수녀들의 평생에 걸친 봉사와 조용한 작별은 참으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