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흥관련예술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를 읽고

by 고흥을 찾아서 2012. 11. 3.

 

 

남도 선생이 된 서울댁, 내가 그녀에게 반한 이유 

                                                                              -서 부 원

 

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가르치려는' 책과 '보여주려는' 책. 전자는 삶을 성찰하게 하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구실을 하고, 후자는 마치 내 자신의 삶과 고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감동과 위로를 받는 건 둘 다 같지만, 거리감이 없어 쉽게 읽히고 오래 기억되는 건 아무래도 후자다. 

 

늦깎이 교사의 7년간 기록을 통해 지금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와 독자인 난 공통점이 한둘 아니다. 우선, 교사다. 그리고 무엇보다 90학번 동갑내기이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지방으로 내려와 근무하는 것도 닮았다. 문학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것도,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골수팬인 것까지도.

 

그러나 저자를 마치 나의 '아바타'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건 단연 교직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교육현실에 분노하는 뜨거운 가슴이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진정한 배움으로 이끄는 일이 비록 서툴지만, 열정이 다 하는 날까지 좋은 교사가 되겠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하는 그 모습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가슴 속 나의 '동지'다.

 

책을 읽다보면 그가 자꾸만 부러워진다. 그가 쏟아내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조차도 교사로서 행복과 보람이 뚝뚝 묻어난다. 고3 담임교사 시절 제자들이 책 제목으로 추천했다는 '서울 여자, 유자꽃으로 피다'는 것도 아이들 눈에 비친 그의 행복한 타향살이를 토속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해바라기마냥 모두가 서울을 향하고 원하며, 서울이 지방의 모든 것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현실에서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의 '땅끝' 시골 생활이 처음부터 행복했을까. 그도 말미에 고백했듯이,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네 차례의 갈림길을 만났다고 했다. 고3 시절 재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제외하면, 모두가 서울이냐 시골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들이다.

 

대학 졸업 때 임용시험을 볼 것인지 농촌운동을 할 것인지도, 농촌 출신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 여부도, 여성 농민으로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교사가 돼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지조차도 결국엔 서울과 시골 양자택일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시골 선생님'이라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

 

시골 선생님을 택한 그녀, 그녀의 삶을 지지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가 여성 농민으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대학시절 강렬한 농촌활동의 기억이 그를 어떻든 서울 생활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농촌 총각과의 사랑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면 결국 이 질문만 남게 된다.

 

감히 단언하건대, 여성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언정, 그의 바람대로 그가 뿌리내리고자 했던 농촌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변 지인들의 평판대로 그는 '천상 선생'인 탓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으로서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해도 그의 의지와 노력을 쏟을 농촌이 날이 갈수록 쇠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결혼해 살고 있는 전라남도 고흥을 두고 어떤 이는 '간신히 섬을 면한 한반도의 막내'라고 표현한다. 우주선 발사 기지를 유치하고, 최근 들어 생태 관광지를 개발하는 한편, 섬과 육지,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를 건설하는 등의 지역개발 사업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인구가 대거 유출되는 이른바 '농촌 공동화'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고흥만의 문제일 수는 없지만, 다리가 놓이고 도로가 넓어질수록, 예상과는 달리, 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농촌의 경관이 도시를 닮아간다고 결코 해결될 수는 없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문제인 탓이다.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동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농촌은 60대 노인이 마을의 '청년회장'을 맡는 곳이 속출할 만큼 텅 비었다. 과거와 달리 농촌운동이 노인복지운동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곧, 농촌운동의 핵심은 농촌 출신의 젊은 인구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한편 귀촌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녀 교육 문제가 농촌이 텅 비어가는 이유로 첫 손에 꼽힌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가 하면 요즘 들어 농촌 교육에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가 조손가정 자녀와 다문화가정 자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포용하는 게 지금 농촌 교육이 맞닥뜨릴 현실이자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에겐 여성 농민보다 시골 선생님이 더 잘 어울린다고 본 이유다. 그처럼 농촌에 대한 애정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는 교사가 농촌에 많아져야 한다. 그가 국어교사로서 제2의 고향, 고흥에서 벌이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독서동아리와 여성 독서동아리 등 지역 독서토론 활동은 차라리 농촌 살리기 운동이다. 농촌도 교육 받고 살 만한 곳이며, 이곳 어떠냐며 와서 함께하자는 손짓이다.

 

편리해진 교통 탓에 웬만한 오지가 아니라면 인근 도시에 거주하고 향유하며 농촌 학교로 출퇴근하는 교사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이 아니라도 그의 존재는 많은 울림을 던져준다. 낯선 땅에서 자기 혼자가 아닌 여럿의 힘을 모아 살 만한 터전으로 일구어가는 모습이 고민을 함께하는 교사로서 고맙고 존경스럽다.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과 또 지역주민들과 문학을 통해 교감하고, 고흥 작가회의 일원으로서 시 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교사 모임을 꾸려 학교와 수업 혁신을 고민하는 아름다운 시골 선생님. 고흥의 숲과 바다가 좋고, 이곳에 와서 만난 아이들과 이웃, 선생님들이 더없이 좋다며 만족해한다. 시샘이 날 정도다. 그러나 그를 힘들게 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농촌은 시나브로 비어 가는데 교육청은 앞장서서 고향의 이름을 빛낼, 곧 명문대에 진학할 '싹수 좋은' 몇몇 학생에게 모든 지원을 쏟아 붓고, 지역별 학교별 서열을 매기려는 일제고사의 광풍이 이곳까지 몰아쳐 순박한 시골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숨통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250쪽 책에서 만난 나의 '멘토' 

 

한부모가정과 조손가정이 비일비재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의 학교가 성적이 좋을 리 없을 터, 획일적인 일제고사는 그렇잖아도 성적에 주눅이 든 시골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교육청과 일부 지역주민들의 요구는 그에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또 아이들의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고민이 깊어지고 의지가 흔들릴 때, 주위의 '선생님'들을 찾았다. 교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분의 말과 삶을 바라보며 배울 수 있다면 모두 선생님이라고 그는 말한다. 교사든 공무원이든 발령받으면 울면서 온다는 유배지 같은 곳에서 끝까지 남아 교육을 하고 농사를 짓고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멘토'들은 그의 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의 삶이 교훈이 되어 내게로 전해져 온다. 그에게 궁벽한 시골을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250쪽짜리 작은 책 한 권을 통해 만난 그는 이제 나의 '멘토'다. 이 땅의 교사로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값싼 위로를 넘어, 농촌과 교육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을 조금이나마 닮고 싶다.

 

그는 여는 글에 앞서 이 책을 '내 마음 속 선생님에게' 드리고 싶다며 부끄러운 듯 핑크빛 글씨로 적었다. '과연 나라면' 하는 생각에 순간 뜨끔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천상 교사'다. 이 책을 통해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교사들과 강고한 현실의 벽을 절감하며 시나브로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현직 교사들이 부디 건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족 하나. 1장부터 3장까지 7년 동안의 교직 생활에 대한 경험을 담백하게 담아냈다면, 맨 뒤 4장은 그의 전공인 문학과 학교 밖 활동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군데군데 지역 출신 문인들의 작품들이 짤막하게 소개돼 있어 마치 시집 한 권을 손에 쥔 느낌을 받는다. 산문집이라 쉽게 읽히고, 잠깐씩 쉬어가듯 시 읽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래서인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뚱맞은 생각마저 들었다.  -오마이뉴스 8월 18일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는 고흥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중인조경선 교사가 썻으며, 그녀가 7년간의 국어수업과 독서활동 그리고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고민하고 해보고 좌절하고 다시 기운내는 이야기와 교육문제, 세상이야기 등을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