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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신동옥의 시 '월악'

by 고흥을 찾아서 2023. 2. 6.

월 악

 

신동옥

 

 

버려진 집마다 잡초무덤이다 게 중 긴 풀에 주인 잃은 개가 누웠다 가뭄에는 짐승도 귀가 자라서 울음소리 밖으로 물이 흐른다는데

 

버드내라는 곳인데 바닷바람만 줄기줄기 불어와 나무 한 그루 없는 그루터기 평상에 누웠다간, 뜨내기도 마음을 고쳐먹기 일쑤

 

인적이래야 배차 시간표에 묻은 손자국이 전부다 아스팔트에 귀를 대면 지척을 갈아엎을 듯 사장등(沙場燈) 달려가는 트랙터 발톱 갈리는 소리

 

버드내 하고도 월악이다 해방되고 전쟁 끝나고 붙인 이름이다 月下風樂을 줄였다는데, 바람이고 달이고 다 옛말이고 풍악이다

 

월악산 다래기 마을 끄트머리 유리를 심은 담벼락에 손이 베도록 넘어보던 그 집 앞은 눈에 선한데, 열 손가락에 도장밥을 먹여주던 그 친구 아버지

 

하루 두 번 벌교로 나간다는 버스를 기다리고 섰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염만 보아도 나고 자란 곳을 알아서 적어주었다던 면서기, 죽을 날이

 

지나도 한참은 지나 보이는 노인 등 뒤에서 밤방골 두루실 배다리 잠긴다리 쇠섬 누에머리 신직기미 왕지머리, 동네 이름이 하나 둘 지워지는 어스름

 

햇살 내리쪼이는 들말에 불붙은 구름 떠가는, 고향은 고향인데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국은 쓸어 담지 않는다고 농협 담벼락 위로 제 몸뚱이를 버리고 웃자란 그림자, 세 갈래 네 갈래 길을 벌린다.

 

계간 딩아돌하2018년 가을호에서

 

 

신동옥 시인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시와반시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밤이 계속될 거야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

시론집 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