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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마가렛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0) / 소록도의 사랑 - 김강호의 '소록도에 핀 꽃

by 고흥을 찾아서 2019. 8. 29.


소록도에 핀 꽃

 

김강호

 

눈물로 피워 올린 답신 없는 수많은 편지

봉인된 그 사연을 이제야 읽는 걸까

피고름 아문 하늘에 푸른 살이 돋았다

 

옥토에 꽃을 피워 단란하게 살고 싶었던

암흑시대 단종대에서 잘려나간 자손의 씨앗

처절한 흐느낌 소리 수목으로 커 올랐다

 

절망을 갈아엎고 희망의 씨 뿌린 자리에

마리안, 마가레트 수녀의 꽃 피웠다

청춘을 다 바치고 떠난 꽃보다 더 예쁜 꽃

 

-『시조시학』(2010년 봄호)

 

 

해설

 

앞의 두 수는 소록도의 아픈 역사요 셋째 수는 두 수녀님이 행한 선행의 43년 역사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시립 나요양원에서 시작되어 1916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했다. 일제 강점기 때 거세와 강제노동 등 온갖 비인도적인 행위가 행해졌다. 광복 이후에도 인권침해 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마리안 수녀가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 발을 디딘 것이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아픈 이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주었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ㆍ정착사업에 헌신했다. 43년 동안 환자를 보살펴온 두 수녀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적혀 있었다.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다. 두 수녀의 방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세 수로 이루어진 시조작품인데 독자한테 주는 울림이 크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