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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단신

李書彬 詩人이 읽은 감성 詩 '송수권의 여승'

by 고흥을 찾아서 2018. 12. 14.


李書彬 詩人이 읽은 감성 詩


여 승 -송 수 권 [2018-12-12 오후 7:31:18]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나는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오던 길을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송수권은 갔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흐들히 적신다. 고뿔을 앓는 사춘기 소녀가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밖을 내다보고 여승이 염불 외는 것을 훔쳐 본 것이 명시를 낳을 줄 알았을까? 삶의 일상적 체험도 관심을 기울이면 시가 되고 문학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사춘기의 순수한 호기심이 파르라니 떨며 서있는 감성시다.


고랑이 깊은 음색 / 설움에 진 눈동자 / 황홀한 마음 /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로 아름답게 승화된다. 한낮에 하늘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희미한 낮달에서 포름한 향내를 맡은 것은 길고 윤기나는 머리를 삭발한 앳된 여승의 머리를 시각화 시켜 후각까지 내달음질 하는 함축의 백미다.


또한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압지요. /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은심리적 암시로 상징과 비유로 최면효과까지 나타내는 여승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직접 말하지 않고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게 하는 대목이다.


송수권 시인은 토속어인 우리말을 잘 갈고 닦는 애국시인이며 진정한 선비다.


-송수권(宋秀權) 시인 약력

*전남 고흥 출생 *1940년 03월 15일 ~ 2016년 04월 04일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 당선

*소월시 문학상 외 다수


-이서빈 약력

*경북 영주 출생

*동아 일보 신춘문예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중랑 문화원 ‘남과 다른 시 쓰기’ 시창작반 강사


권대현(youngju@newsn.com)


출처 : 영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