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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역사인물

고흥의 역사적 인물(무과)

by 고흥을 찾아서 2013. 11. 4.

※ 출사자와 그 공적 상신(相臣), 문과(文科), 무과(武科) 등 출사자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무과(武科)

성 명
본관
약 사 (略 史)
거주지
고세일(高世日)
제주
문영(文英)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기영입(奇榮立)
행주
승지(承旨) 축(軸)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김상걸(金商傑)
김녕
영돈녕(領敦寧) 준(遵)의 후손으로, 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을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덕검(金德儉)
교리(校理) 옥주(玉柱)의 후손으로, 장단도호부사(長湍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과역 석촌
김언량(金彦良)
상걸의 아들로,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광협(金光鋏)
하서(夏瑞)의 둘째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풍양 송정
김언공(金彦恭)
상걸(商傑)의 둘째아들로, 순천도호부사(順天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덕방(金德邦)
유협(有浹)의 아들로, 용양위좌부장(龍槐衛左部將)을 역임하였다. 포두 미후
김경립(金慶立)
군수 태숙(太淑)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풍양 한서
김천일(金千鎰)
승지 언량(彦良)의 둘째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김몽룡(金夢龍)
광협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포두 중흥
김몽개(金夢凱)
광협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점암 용두
김몽표(金夢彪)
광협의 아들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김희달(金希達)
수욱(秀頊)의 증손으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김영달(金英達)
부사 언공(彦恭)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평세(金平世)
준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고흥 고소
김여효(金汝孝)
경립(慶立)의 아들로,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를 역임하였다. 풍양 한동
김복달(金福達)
김녕
부사 언공(彦恭)의 3자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원효(金元孝)
현감 여효(汝孝)의 아우로서, 삼수군수(三水郡守)를 역임하였다. 풍양 한동
김종의(金宗義)
주부 천일(千鎰)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과역 가산
김호익(金好益)
사복시(司僕寺) 기남(起南)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과역 석촌
김경신(金景信)
방제(邦濟)의 아들로, 진도군수(珍島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치운(金致雲)
통정(通政) 언세(彦世)의 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고흥 등암
김효원(金孝源)
현감 몽개(夢凱)의 아들로,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을 역임하였다. 점암 용두
김세명(金世鳴)
효원(孝源)의 장자로서,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김사상(金泗祥)
준의 후손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지정(金之精)
판관(判官) 호익(好益)의 손자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과역 석촌
김인형(金仁亨)
유남(有男)의 손자로, 미전진첨사(美錢鎭僉使)를 역임하였다. 남양 대곡
김우정(金禹鼎)
영돈령(領敦寧) 준(遵)의 후손으로, 미조항첨사(彌助項僉使),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역임하였다. 남양 대곡
김대여(金大呂)
첨사 우정(禹鼎)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김상현(金尙鉉)
영돈령 준의 후손으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곡성현감(谷城縣監),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역임하였다. 두원 신흥
김양규(金洋奎)
현감 여효(汝孝)의 8세손으로, 무과급제하였다. 풍양 한동
김종식(金種植)
영돈령 준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 전라우도수군우후(全羅右道水軍虞侯)를 역임하였다.  
김사형(金泗亨)
김해
찰방 관(瓘)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김붕만(金鵬萬)
참봉 세걸(世傑)의 손자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두원 예회
김상휘(金尙輝)
김해
사과(司果) 사일(泗溢)의 증손으로, 수성도찰방(輸城道察訪)를 역임하였다.  
김흥엽(金興燁)
안동
성견(性堅)의 5세손으로, 미전진첨사(彌錢鎭僉使)를 역임하였다.  
노대방(盧大邦)
광산
판윤(判尹) 한경(漢經)의 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노윤발(盧潤發)
대방(大邦)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포두 외초
도맹삼(都孟三)
성주
한림(翰林) 언등(彦橙)의 5세손으로, 판관(判官)을 역임하고 임난때 공을 세웠다. 포두 상포
류충신(柳忠信)
고흥
주부(主簿) 문(汶)의 아들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고흥 호동
류 용(柳 溶)
충신의 아들로, 영산현감(靈山縣監)을 역임했다.  
류 계(柳 溪)
충정공(忠正公) 탁(濯)의 후손으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두원 금성
류 연(柳 淵)
진사(進士) 자성(自誠)의 손자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했다.  
류득수(柳得水)
진사(進士) 자성(自誠)의 증손으로,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류경원(柳敬元)
참의(參議) 척(滌)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했다.  
류경장(柳敬長)
경원(敬元)의 아우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했다.  
류복룡(柳福龍)
순(淳)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류 위(柳 渭)
주부(主簿) 문의 손자로, 거제현감(巨濟縣監)을 역임했다.  
류득남(柳得男)
군수 기의 아들로, 회령판관(會寧判官)을 역임했다.  
류연룡(柳淵龍)
참봉(參奉) 순(淳)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류운봉(柳雲鳳)
윤(潤)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류시인(柳時仁)
고흥
귀남(貴男)의 둘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류 유(柳 濡)
참봉(參奉) 승룡(昇龍)의 아들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류 호(柳 濠)
영룡(瀛龍)의 아들로, 월송진만호(越松鎭萬戶)를 역임하였다.  
류우신(柳雨新)
경룡(慶龍)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류중기(柳重起)
부사과(副司果) 시빈(時彬)의 아들로,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류동기(柳東起)
부장(部將) 하(河)의 아들로, 남해현감(南海縣監) 부령도호부사(富寧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류 탄(柳 灘)
주부(主簿) 수(洙)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류해로(柳海魯)
한기(漢起)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류 기(柳 淇)
주부(主簿) 문(汶)의 손자로, 홍원현감(洪原縣監),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역임하였다. 고흥 호동
백낙성(白樂聖)
수원
인걸(仁傑)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박은춘(朴殷春)
밀양
참의(參議) 중동(仲同)의 손자로, 인동부사(仁同府使), 임난공신 숭양사(崇陽祠)에 배향되였다. 두원 두곡
박기남(朴奇男)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남해현령(南海縣令)을 역임하였다.  
박응사(朴應士)
공효공(恭孝公) 중손(仲孫)의 후손으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두원 두곡
박계남(朴繼男)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영해현감(寧海縣監)을 역임하였다.  
박지인(朴之仁)
부장(部將) 응사(應士)의 아들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박춘화(朴春華)
유산(惟山)의 아들로,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다.  
박이형(朴而亨)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이문(朴而文)
밀양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박이원(朴而沅)
참의 문원(*元)의 후손으로, 좌부장(左部將)을 역임하였다.  
박정식(朴貞植)
건(楗)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박종수(朴琮秀)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박경모(朴敬謨)
은춘(殷春)의 후손으로, 개운포만호(開雲浦萬戶)를 역임하였다. 두원 두곡
박홍세(朴弘世)
창원
유원(由元)의 후손으로, 임난공신 좌찬성(左贊成)을 증하였고,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였다. 동강마륜
박홍기(朴弘器)
지련(枝連)의 아들로, 적량진만호(赤梁鎭萬戶)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박응오(朴應鰲)
대련(大連)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대서 축동
박태수(朴*壽)
유원(由元)의 증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었다.  
박충남(朴忠男)
태수(*壽)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평안도순무사(平安道巡撫使)를 역임하였다.  
박 순(朴 恂)
주부(主簿) 정엽(正燁)의 둘째아들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마도진만호(馬島鎭萬戶)를 역임하였다.  
박진걸(朴震傑)
주부(主簿) 의엽(宜燁)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박진욱(朴震郁)
주부(主簿) 선(昐)의 셋째아들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정영(朴挺榮)
진원
진원군(珍原君) 위남(蔿南) 희중(熙中)의 9세손으로, 사천현감(泗川縣監)을 역임하였다.  
박겸형(朴謙亨)
광전(光前)의 후손으로, 의금부사(義禁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유번(朴由蕃)
현(鉉)의 후손으로,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역임하였다.  
박맹동(朴孟同)
밀양
눌생(訥生)의 후손으로, 칠원현감(漆原縣監)을 역임하였다.  
박득현(朴得賢)
밀양
문원(*元)의 후손으로, 아산현감(牙山縣監)을 역임하였다.  
박희성(朴希聖)
건(楗)의 후손으로, 웅천현감(熊川縣監)을 역임하였다.  
박언석(朴彦碩)
유원(由元)의 손자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박 황(朴 惶)
창원
의엽(宜燁)의 아들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동강 마륜
손진구(孫鎭球)
밀양
광리군(廣理君) 극훈(兢訓)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선선립(宣善立)
보성
이조 판서(吏曹判書) 형(炯)의 후손으로, 장수도찰방(長水道察訪),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송중유(宋仲儒)
여산
간(侃)의 둘째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동강 대강
송사문(宋思文)
간(侃)의 손자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송예정(宋禮貞)
사안(思安)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송유정(宋有貞)
사안의 아들로,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를 역임하였다.  
송옥손(宋玉孫)
사평(思平)의 아들로, 안음(安陰)·지례현감(智禮縣監)을 역임하였다.  
송희손(宋熙孫)
간(侃)의 현손으로, 사정(司正)을 역임하였다.  
송흥룡(宋興龍)
군수 곤강(昆岡)의 아들로, 울진군수(蔚津郡守)를 역임하였다.  
송익린(宋益璘)
사정(司正) 희손(熙孫)의 아들로, 좌부장(左部將)을 역임하였다.  
송옥형(宋玉衡)
유정(有貞)의 아들로, 옥구(沃溝)·광양현감(光陽縣監)을 역임하였다.  
송필형(宋弼衡)
예정(禮貞)의 아들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해운판관(海運判官)을 역임하였다.  
송순의(宋純義)
현감(縣監) 옥손(玉孫)의 중자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송순례(宋純禮)
여산
간(侃)의 현손으로, 아산군수(牙山郡守), 오위도총부도사(五衛都摠府都事) 경력(經歷),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대서 상남
송안형(宋安衡)
참봉(參奉) 호(豪)의 아들로, 위원군수(渭原郡守)를 역임하였다.  
송 성(宋 晟)
간(侃)의 5세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동강 신정
송 섬(宋 暹)
군수 안형(安衡)의 아들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송 훈(宋 薰)
주부(主簿) 수형(粹衡)의 둘째 아들로, 울산병사(蔚山兵使)를 역임하였다.  
송 괄(宋 适)
예정(禮貞)의 손자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송 적(宋 迪)
예정의 손자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 해(宋 邂)
예정의 손자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송 석(宋 碩)
익린(益璘)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정기(宋廷麒)
첨정(僉正) 괄(适)의 아들로, 남포현감(南浦縣監)을 역임하였다.  
송지례(宋之禮)
간(侃)의 현손으로, 내금위(內禁衛)를 역임하였다.  
송한련(宋漢連)
충강공 간(侃)의 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송 전(宋 筌)
순형(純衡)의 장자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두원 송정
송 건(宋 建)
현령(縣令) 필형(弼衡)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동강 마륜
송응벽(宋應壁)
현감 순의(純義)의 아들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승주 별양
송응민(宋應珉)
응벽(應壁)의 아들로, 부장(部將), 별도장(別都將)을 역임하였고,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송응기(宋應璣)
여산
응벽(應壁)의 막내 아우로,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역임하였고,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포두 후동
송홍득(宋弘得)
간(侃)의 후손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송홍열(宋弘烈)
간(侃)의 5세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단성현감(丹城縣監),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점암 봉남
송홍윤(宋弘允)
현감(縣監) 백유(伯儒)의 현손으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오서(宋五瑞)
간의 5세손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하였다.  
송대립(宋大立)
관(寬)의 아들로, 훈련원정(訓鍊院正) 임난공신으로 대첩단(大捷壇) 재동서원(齋洞書院) 등에 배향되였다. 동강 대강
송희립(宋希立)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중제(中弟)로, 훈련원정(訓鍊院正) 임난공신으로 세충사(世忠祠)에 배향되였다. 도화
송홍연(宋弘淵)
순례(純禮)의 장손으로, 충좌위좌부장(忠佐衛左部將) 임난공신으로 재동서원(齋洞書院)에 배향되였다.  
송 확(宋 確)
익린(益璘)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홍원(宋弘源)
천상(天祥)의 둘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홍장(宋弘瀁)
천상(天祥)의 세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정립(宋挺立)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제수되였다. 동강 대강
송지한(宋之翰)
병사(兵使) 훈(薰)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계량(宋繼良)
첨정(僉正) 해(邂)의 둘째아들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동강 관덕
송계창(宋繼昌)
첨정(僉正) 해(邂)의 셋째아들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동강 마륜
송득운(宋得雲)
판관(判官) 성(晟)의 아들로, 적량만호(赤梁萬戶)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동강 신정
송상후(宋商後)
여산
대수(大壽)의 아들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송상보(宋商輔)
간(侃)의 후손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고흥 남계
송 백(宋 栢)
간(侃)의 6세손으로, 좌부장(左部將), 주부(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남양 부도
송지강(宋之綱)
부사(府使) 두남(斗南)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송흥운(宋興雲)
간(侃)의 후손이고, 감찰(監察) 섬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동강 원등
송의달(宋義達)
오서(五瑞)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세발(宋世潑)
굉(宏)의 아들로, 우부장(右部將)으로 금곡사(金谷祠)에 배향되였다. 점암 신안
송상충(宋尙忠)
주부(主簿) 석(碩)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지준(宋之準)
첨정(僉正) 영(*)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 격(宋 格)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아들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상신(宋尙信)
첨정(僉正) 확(確)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 익(宋 滸)
주부(主簿) 격(格)의 아우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송운기(宋雲起)
첨정(僉正) 경(逕)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두원 반산
송 득(宋 得)
생원(生員) 분(芬)의 셋째아들로, 옥구만호(沃溝萬戶)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송진부(宋眞夫)
간(侃)의 7세손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경상도병사(慶尙道兵使)를 역임하였다.  
송진업(宋震業)
흥운(興運)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송우철(宋友哲)
여산
오서(五瑞)의 손자로, 무과급제하였다.  
송춘세(宋春世)
두남(斗南)의 아들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송 눌(宋 訥)
대립(大立)의 아들로, 군기감주부(軍器監主簿)를 역임하였다.  
송계업(宋繼業)
판관(判官) 계훈(繼勳)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송 겸(宋 謙)
대립(大立)의 아들로, 태천현감(泰川縣監), 황주판관( 黃州判官)를 역임하였다.  
송 심(宋 諶)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아들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로 증직, 재동사(齋洞祠)에 배향되었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동강 대강
송세융(宋世隆)
성암(省庵) 린(律)의 손자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송경룡(宋慶龍)
어영장(御營將) 홍연(弘淵)의 아들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송시현(宋時賢)
홍장(弘瀁)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 수(宋 穗)
수사(水使) 희립(希立)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시필(宋時弼)
판관(判官) 홍장(弘瀁)의 셋째아들로,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송후창(宋後昌)
만호(萬戶) 득(得)의 아들로, 첨중추(僉中樞)를 역임하였다.  
송유지(宋惟智)
만호(萬戶) 흥룡(興龍)의 아들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송상립(宋尙立)
간(侃)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시명(宋時明)
중유(仲儒)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송시민(宋時敏)
판관(判官) 홍장(弘瀁)의 넷째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송문우(宋文祐)
여산
심(諶)의 아들로,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하였다.  
송필흥(宋必興)
판관(判官) 홍원(弘源)의 손자로, 용양위부사정(龍槐衛副司正) 미관진병마첨절제사(彌串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송필원(宋必遠)
첨사(僉使) 필흥(必興)의 아우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지원(宋之元)
후립(後立)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문욱(宋文郁)
남운(南運)의 아들로,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였다.  
송지문(宋之文)
후립(後立)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익상(宋益商)
응남(應南)의 손자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송의정(宋義廷)
산(珊)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두원 풍류
송 헌(宋 櫶)
시현(時賢)의 아들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송석기(宋碩基)
홍운(弘運)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홍업(宋弘業)
현감(縣監) 상보(商輔)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문형(宋文亨)
심(諶)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송양하(宋樑夏)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증손으로,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를 역임하였다.  
송명천(宋命天)
중유(仲儒)의 8세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동근(宋東根)
린(律)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송윤환(宋允煥)
군수 득운(得運)의 6세손으로, 비변장(備邊將)을 역임하였다.  
송정보(宋廷輔)
여산
회(*)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송인서(宋璘瑞)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7세손으로, 가덕진첨사(加德鎭僉使)를 역임하였다.  
송대호(宋大浩)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8세손으로, 오위장(五衛將), 첨중추(僉中樞)를 역임하였다.  
송세호(宋世浩)
계유(季儒)의 후손으로, 첨중추(僉中樞),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송의호(宋義浩)
내계(來啓)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판관(判官)을 제수하였다.  
송주환(宋柱煥)
내계(來啓)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주찬(宋柱贊)
수귀(壽龜)의 현손으로, 용양위사과(龍槐衛司果)를 역임하였다.  
송주봉(宋柱奉)
순례(純禮)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응상(宋應祥)
남양
현령(縣令) 보(輔)의 아들로, 축산첨사(丑山僉使),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송 인(宋 仁)
참봉(參奉) 승주(承周)의 아들로,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송 의(宋 義)
승주(承周)의 아들로,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송 거(宋 巨)
행정(杏亭) 인(寅)의 후손으로, 강진현감(康津縣監)을 역임하였다.  
송 례(宋 禮)
승주(承周)의 아들로, 사도첨사(蛇渡僉使)를 역임하였다.  
송 지(宋 智)
승주(承周)의 아들로, 훈련원판사(訓鍊院判事) 임난공신으로 좌승지(左承旨)에 제수되었다. 동강 관덕
송 기(宋 琦)
행정(杏亭) 인(寅)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 구(宋 球)
응상(應祥)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대서 장선
송 념(宋 恬)
남양
승주(承周)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송 충(宋 忠)
승주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송덕일(宋德馹)
내금위(內禁衛) 인(仁)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 정려(旌閭) 및 운곡사(雲谷祠)에 배향되였다. 동강 당곡
송덕준(宋德駿)
참의(參議) 제(悌)의 아들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송덕린(宋德麟)
승지(承旨) 지(智)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동강 관덕
송덕기(宋德驥)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아우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송덕화(宋德*)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아우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송 결(宋 *)
판관(判官) 충(忠)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동강 세곡
송인신(宋仁信)
판관(判官) 덕준(德俊)의 종제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송위남(宋緯南)
판관(判官) 덕준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송후경(宋後璟)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손자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송세빈(宋世彬)
사직(司直) 염(恬)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송동수(宋東秀)
결(*)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송석필(宋碩弼)
의병장 결(*)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송시한(宋時漢)
섭(涉)의 후손으로, 무과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송 선(宋 瑄)
첨정(僉正) 응상(應祥)의 아들로,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다. 대서 안동
송 영(宋 瑛)
남양
첨정(僉正) 응상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대서 신기
송시복(宋時福)
판관(判官) 구(球)의 후손으로, 무과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신명원(申明遠)
고령
참의(參議) 붕(鵬)의 아들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신명달(申明達)
붕의 아들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동강 마륜
신명후(申明逅)
명원(明遠)의 아우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신용해(申容海)
명원(明遠)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신홍해(申弘海)
용해(容海)의 아우로, 현감(縣監), 호판(戶判)에 증하였다.  
신광해(申光海)
명달(明達)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동강 마륜
신수재(申秀材)
참의(參議) 궁건(宮楗)의 아들로, 통영우후(統營虞侯)를 역임하였다. 두원 대전
신군안(申君安)
현감(縣監) 수재(秀材)의 아들로, 의병장으로 정유재란때 보화도에서 순절하였다. 두원 대전
신영해(申榮海)
판관(判官) 광해(光海)의 아우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신여량(申汝樑)
호판(戶判) 홍해(弘海)의 아들로,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전라병사(全羅兵使) 나주 충장사(忠莊祠) 금산 대첩단(大捷壇)에 배향되고 부조묘(不*廟)에 모셨다. 동강 마륜
신여극(申汝極)
용해(容海)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나주 충장사(忠莊祠) 금산 대첩단(大捷壇)에 배향되였다. 고흥 남계
신여기(申汝杞)
홍해의 아들로, 판결사(判決事)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동강
신여정(申汝楨)
병조판서(兵曹判書) 여량(汝樑)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으로 나주 충장사 금산대첩단에 배향되였다. 동강 당곡
신여식(申汝拭)
판관(判官) 광해(光海)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동강 마륜
신원방(申元方)
고령
참의(參議) 붕의 손자로, 남원부사(南原府使)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과역 월악
신여국(申汝堰)
부정(副正) 명후(明逅)의 손자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신홍일(申弘馹)
군안(君安)의 아들로, 덕포첨사(德浦僉使) 정유재란때 공을 세웠다.  
신덕성(申德暉)
병조판서(兵曹判書) 여량(汝樑)의 아들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역임하였다. 동감 마륜
신동철(申東哲)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난포만호(蘭浦萬戶)를 역임하였다.  
신상형(申尙亨)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난포만호(蘭浦萬戶)를 역임하였다.  
신상강(申尙綱)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신석구(申錫求)
여정(汝楨)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신규모(申奎模)
직장(直長) 여정(汝楨)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우태설(禹泰說)
단양
문희공(文僖公) 탁(倬)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윤 단(尹 檀)
칠원
자량(子良)의 후손으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역임하였다.  
이영명(李永明)
흥양
총(*)의 아들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풍양 보천
이세훈(李世薰)
부사(府使) 맹무(孟茂)의 손자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이흥배(李興培)
진욱(震郁)의 아들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충위위부사과(忠衛尉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이 원(李 願)
경주
승지(承旨) 정필(廷弼)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동강 오월
이승락(李承洛)
병조판서(兵曹判書) 원(願)의 손자로,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이승극(李承克)
경주
병조판서(兵曹判書) 원(願)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이상하(李尙夏)
참판(參判) 방직(邦稷)의 손자로, 익위사위(翊衛司衛)를 역임하였다.  
이홍영(李洪榮)
항복(恒福)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이석우(李錫雨)
정혁(廷爀)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이경우(李景雨)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핵(*)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이복의(李復義)
성주
정녕(正寧)의 7세손으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하였다.  
이 위(李 *)
복의(復義)의 아들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역임하였다.  
이계남(李繼男)
우봉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 정(靖)의 후손으로, 무과급제 선전관(宣傳官), 중위장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이응홍(李應弘)
합천
선전관(宣傳官) 공(恭)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였다.  
이우만(李愚萬)
양성
상서(尙書) 명두(命斗)의 후손으로, 무과합격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임 영(林 英)
부안
충장공(忠莊公) 언(彦)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 감찰(監察),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포두 장자
임개국(林盖國)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효력부위(效力副尉)를 역임하였다.  
임재무(林再茂)
춘(椿)의 후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하동부사(河東府使)를 역임하였다.  
임숙무(林淑茂)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임방언(林邦彦)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무과급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장 담(張 淡)
인동
장령(掌令) 선(璿)의 후손으로, 전라병사(全羅兵使) 임난때 순절공신이였다. 대서 평촌
장우문(張宇文)
인동
현감(縣監) 홍(洪)의 아들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장경익(張景翼)
명주(命周)의 증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장천장(張天章)
창녕
참의(參議) 의지(彛之)의 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동강 덕암
장시헌(張時憲)
천장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장운망(張雲望)
승지(承旨) 시헌(時憲)의 손자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장 수(張 *)
인동
현령(縣令) 흥일(興一)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장 즙(張 즙)
참판(參判) 연(淵)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장한원(張漢元)
참의(參議) 찬(讚)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전복홍(田福弘)
담양
세희(世僖)의 증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전우기(田雨淇)
녹생(祿生)의 후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전시우(田時雨)
양덕현감(陽德縣監)을 역임하였다.  
정유조(丁有祖)
영광
부정(副正) 자행(自行)의 아들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정형조(丁亨祖)
자행의 아들로, 교동현감(喬洞縣監) 경기수사(京畿水使)를 역임하였다. 도화 고당
정귀수(丁龜壽)
첨정(僉正) 유조(有祖)의 아들로, 갑산도호부사(甲山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정 준(丁 俊)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정귀세(丁龜歲)
첨정(僉正) 유조(有祖)의 아들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정 혼(丁 混)
영광
만호(萬戶) 귀세(龜歲)의 아들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정몽수(丁夢壽)
철석(鐵碩)의 증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정 급(丁 汲)
찰방(察訪) 준(俊)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정운열(丁雲說)
현감(縣監) 식(湜)의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정운창(丁運昌)
판관(判官) 한(漢)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정명한(丁鳴漢)
현감(縣監) 명세의 아우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정홍익(丁弘益)
극인(克仁)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정 근(丁 近)
참봉(參奉) 명옥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정 엽(丁 燁)
군수(郡守) 홍록(弘祿)의 아들로,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정희열(丁希說)
판관(判官) 몽수(夢壽)의 아들로,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정 흘(丁 屹)
명선(鳴善)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정시두(丁時斗)
부정(副正) 상준(尙俊)의 아들로,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 마도진만호(馬島鎭萬戶)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정 돈(丁 燉)
홍립(弘立)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정 열(丁 烈)
주부(主簿) 돈(燉)의 아우로,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정억복(丁億福)
진사(進士) 서건(瑞健)의 아들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정상준(丁尙俊)
직장(直長) 응진(應軫)의 손자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역임하였다. 대서 월등
정홍록(丁弘祿)
영광
영광군수(靈光郡守) 연(淵)의 아들로, 임진왜란때 부자가 함께 순절하였다. 포두 안동
정 걸(丁 傑)
숭조의 아들로, 서북만호(西北萬戶),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전라병사(全羅兵使), 경상병사(慶尙兵使) 등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포두 안동
정 식(丁 湜)
수사(水使) 형조(亨祖)의 손자로, 현감(縣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도화 고당
정명세(丁鳴世)
판관(判官) 명선(鳴善)의 아우로, 임진왜란때 순절하였다. 두원 상대
정두형(鄭斗炯)
진주
충장공(忠莊公) 정분(鄭*)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하였다.  
정두하(鄭斗河)
정분(鄭*) 후손으로, 무과급제 하였다.  
정세흥(鄭世興)
판윤(判尹) 득(得)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정운형(鄭運亨)
문정공(文靖公) 해(諧)의 후손으로, 흥양현감(興陽縣監)을 역임하였다.  
정민현(鄭旻鉉)
경주
승복(承復)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조인순(趙仁淳)
함안
상서(尙書) 승숙(承肅)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조응규(趙膺奎)
어계(漁溪) 여(旅)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진무성(陳武晟)
여양
대사간(大司諫)의 후손으로,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워 귀성부사(龜城府使)에 제수되고 무열사(武烈祠)에 배향되었다. 두원 신송
진후평(陳後平)
무성(武晟)의 아들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하였다.
진원국(陳元國)
무성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진후번(陳後蕃)
무성의 아들로, 훈련원주부 연일현감(延日縣監)을 역임하였다.
진후식(陳後寔)
판관(判官) 후평(後平)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진상한(陳相漢)
여양
무성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진달성(陳達聖)
무성의 후손으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최대성(崔大成)
경주
문정공(文正公) 해(瀣)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최천보(崔天寶)
참봉(參奉) 파(坡)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두원 예회
최홍준(崔弘峻)
판관(判官) 열(烈)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두원 예회
최현수(崔賢秀)
초계
문절공(文節公) 산두(山斗)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한인석(韓仁錫)
청주
문간공(文簡公) 상경(尙敬)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황산수(黃山壽)
장수
동중추(同中樞) 신욱(信郁)의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황몽신(黃夢臣)
판관(判官) 산수(山壽)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