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사자와 그 공적 상신(相臣), 문과(文科), 무과(武科) 등 출사자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무과(武科)
성 명 |
본관 |
약 사 (略 史) |
거주지 |
고세일(高世日) |
제주 |
문영(文英)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기영입(奇榮立) |
행주 |
승지(承旨) 축(軸)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김상걸(金商傑) |
김녕 |
영돈녕(領敦寧) 준(遵)의 후손으로, 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을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덕검(金德儉) |
〃 |
교리(校理) 옥주(玉柱)의 후손으로, 장단도호부사(長湍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 과역 석촌 |
김언량(金彦良) |
〃 |
상걸의 아들로,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광협(金光鋏) |
〃 |
하서(夏瑞)의 둘째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풍양 송정 |
김언공(金彦恭) |
〃 |
상걸(商傑)의 둘째아들로, 순천도호부사(順天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덕방(金德邦) |
〃 |
유협(有浹)의 아들로, 용양위좌부장(龍槐衛左部將)을 역임하였다. | 포두 미후 |
김경립(金慶立) |
〃 |
군수 태숙(太淑)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풍양 한서 |
김천일(金千鎰) |
〃 |
승지 언량(彦良)의 둘째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김몽룡(金夢龍) |
〃 |
광협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포두 중흥 |
김몽개(金夢凱) |
〃 |
광협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점암 용두 |
김몽표(金夢彪) |
〃 |
광협의 아들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 〃 |
김희달(金希達) |
〃 |
수욱(秀頊)의 증손으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 〃 |
김영달(金英達) |
〃 |
부사 언공(彦恭)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평세(金平世) |
〃 |
준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고흥 고소 |
김여효(金汝孝) |
〃 |
경립(慶立)의 아들로,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를 역임하였다. | 풍양 한동 |
김복달(金福達) |
김녕 |
부사 언공(彦恭)의 3자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원효(金元孝) |
〃 |
현감 여효(汝孝)의 아우로서, 삼수군수(三水郡守)를 역임하였다. | 풍양 한동 |
김종의(金宗義) |
〃 |
주부 천일(千鎰)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과역 가산 |
김호익(金好益) |
〃 |
사복시(司僕寺) 기남(起南)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과역 석촌 |
김경신(金景信) |
〃 |
방제(邦濟)의 아들로, 진도군수(珍島郡守)를 역임하였다. | |
김치운(金致雲) |
〃 |
통정(通政) 언세(彦世)의 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고흥 등암 |
김효원(金孝源) |
〃 |
현감 몽개(夢凱)의 아들로,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을 역임하였다. | 점암 용두 |
김세명(金世鳴) |
〃 |
효원(孝源)의 장자로서,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 〃 |
김사상(金泗祥) |
〃 |
준의 후손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역임하였다. | |
김지정(金之精) |
〃 |
판관(判官) 호익(好益)의 손자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과역 석촌 |
김인형(金仁亨) |
〃 |
유남(有男)의 손자로, 미전진첨사(美錢鎭僉使)를 역임하였다. | 남양 대곡 |
김우정(金禹鼎) |
〃 |
영돈령(領敦寧) 준(遵)의 후손으로, 미조항첨사(彌助項僉使),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역임하였다. | 남양 대곡 |
김대여(金大呂) |
〃 |
첨사 우정(禹鼎)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
김상현(金尙鉉) |
〃 |
영돈령 준의 후손으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곡성현감(谷城縣監),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역임하였다. | 두원 신흥 |
김양규(金洋奎) |
〃 |
현감 여효(汝孝)의 8세손으로, 무과급제하였다. | 풍양 한동 |
김종식(金種植) |
〃 |
영돈령 준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 전라우도수군우후(全羅右道水軍虞侯)를 역임하였다. | |
김사형(金泗亨) |
김해 |
찰방 관(瓘)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 |
김붕만(金鵬萬) |
〃 |
참봉 세걸(世傑)의 손자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 두원 예회 |
김상휘(金尙輝) |
김해 |
사과(司果) 사일(泗溢)의 증손으로, 수성도찰방(輸城道察訪)를 역임하였다. | |
김흥엽(金興燁) |
안동 |
성견(性堅)의 5세손으로, 미전진첨사(彌錢鎭僉使)를 역임하였다. | |
노대방(盧大邦) |
광산 |
판윤(判尹) 한경(漢經)의 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노윤발(盧潤發) |
〃 |
대방(大邦)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 포두 외초 |
도맹삼(都孟三) |
성주 |
한림(翰林) 언등(彦橙)의 5세손으로, 판관(判官)을 역임하고 임난때 공을 세웠다. | 포두 상포 |
류충신(柳忠信) |
고흥 |
주부(主簿) 문(汶)의 아들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 고흥 호동 |
류 용(柳 溶) |
〃 |
충신의 아들로, 영산현감(靈山縣監)을 역임했다. | |
류 계(柳 溪) |
〃 |
충정공(忠正公) 탁(濯)의 후손으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한 임난공신이다. | 두원 금성 |
류 연(柳 淵) |
〃 |
진사(進士) 자성(自誠)의 손자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했다. | |
류득수(柳得水) |
〃 |
진사(進士) 자성(自誠)의 증손으로,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류경원(柳敬元) |
〃 |
참의(參議) 척(滌)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했다. | |
류경장(柳敬長) |
〃 |
경원(敬元)의 아우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했다. | |
류복룡(柳福龍) |
〃 |
순(淳)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 |
류 위(柳 渭) |
〃 |
주부(主簿) 문의 손자로, 거제현감(巨濟縣監)을 역임했다. | |
류득남(柳得男) |
〃 |
군수 기의 아들로, 회령판관(會寧判官)을 역임했다. | |
류연룡(柳淵龍) |
〃 |
참봉(參奉) 순(淳)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 |
류운봉(柳雲鳳) |
〃 |
윤(潤)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류시인(柳時仁) |
고흥 |
귀남(貴男)의 둘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류 유(柳 濡) |
〃 |
참봉(參奉) 승룡(昇龍)의 아들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 |
류 호(柳 濠) |
〃 |
영룡(瀛龍)의 아들로, 월송진만호(越松鎭萬戶)를 역임하였다. | |
류우신(柳雨新) |
〃 |
경룡(慶龍)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류중기(柳重起) |
〃 |
부사과(副司果) 시빈(時彬)의 아들로,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 |
류동기(柳東起) |
〃 |
부장(部將) 하(河)의 아들로, 남해현감(南海縣監) 부령도호부사(富寧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 |
류 탄(柳 灘) |
〃 |
주부(主簿) 수(洙)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류해로(柳海魯) |
〃 |
한기(漢起)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류 기(柳 淇) |
〃 |
주부(主簿) 문(汶)의 손자로, 홍원현감(洪原縣監),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역임하였다. | 고흥 호동 |
백낙성(白樂聖) |
수원 |
인걸(仁傑)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박은춘(朴殷春) |
밀양 |
참의(參議) 중동(仲同)의 손자로, 인동부사(仁同府使), 임난공신 숭양사(崇陽祠)에 배향되였다. | 두원 두곡 |
박기남(朴奇男) |
〃 |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남해현령(南海縣令)을 역임하였다. | |
박응사(朴應士) |
〃 |
공효공(恭孝公) 중손(仲孫)의 후손으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 두원 두곡 |
박계남(朴繼男) |
〃 |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영해현감(寧海縣監)을 역임하였다. | |
박지인(朴之仁) |
〃 |
부장(部將) 응사(應士)의 아들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 |
박춘화(朴春華) |
〃 |
유산(惟山)의 아들로,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다. | |
박이형(朴而亨) |
〃 |
참의(參議) 문원(*元)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 |
박이문(朴而文) |
밀양 |
문원(*元)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박이원(朴而沅) |
〃 |
참의 문원(*元)의 후손으로, 좌부장(左部將)을 역임하였다. | |
박정식(朴貞植) |
〃 |
건(楗)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박종수(朴琮秀) |
〃 |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박경모(朴敬謨) |
〃 |
은춘(殷春)의 후손으로, 개운포만호(開雲浦萬戶)를 역임하였다. | 두원 두곡 |
박홍세(朴弘世) |
창원 |
유원(由元)의 후손으로, 임난공신 좌찬성(左贊成)을 증하였고,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였다. | 동강마륜 |
박홍기(朴弘器) |
〃 |
지련(枝連)의 아들로, 적량진만호(赤梁鎭萬戶)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 |
박응오(朴應鰲) |
〃 |
대련(大連)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대서 축동 |
박태수(朴*壽) |
〃 |
유원(由元)의 증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었다. | |
박충남(朴忠男) |
〃 |
태수(*壽)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평안도순무사(平安道巡撫使)를 역임하였다. | |
박 순(朴 恂) |
〃 |
주부(主簿) 정엽(正燁)의 둘째아들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마도진만호(馬島鎭萬戶)를 역임하였다. | |
박진걸(朴震傑) |
〃 |
주부(主簿) 의엽(宜燁)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
박진욱(朴震郁) |
〃 |
주부(主簿) 선(昐)의 셋째아들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 |
박정영(朴挺榮) |
진원 |
진원군(珍原君) 위남(蔿南) 희중(熙中)의 9세손으로, 사천현감(泗川縣監)을 역임하였다. | |
박겸형(朴謙亨) |
〃 |
광전(光前)의 후손으로, 의금부사(義禁府使)를 역임하였다. | |
박유번(朴由蕃) |
〃 |
현(鉉)의 후손으로,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역임하였다. | |
박맹동(朴孟同) |
밀양 |
눌생(訥生)의 후손으로, 칠원현감(漆原縣監)을 역임하였다. | |
박득현(朴得賢) |
밀양 |
문원(*元)의 후손으로, 아산현감(牙山縣監)을 역임하였다. | |
박희성(朴希聖) |
〃 |
건(楗)의 후손으로, 웅천현감(熊川縣監)을 역임하였다. | |
박언석(朴彦碩) |
〃 |
유원(由元)의 손자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 |
박 황(朴 惶) |
창원 |
의엽(宜燁)의 아들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 동강 마륜 |
손진구(孫鎭球) |
밀양 |
광리군(廣理君) 극훈(兢訓)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선선립(宣善立) |
보성 |
이조 판서(吏曹判書) 형(炯)의 후손으로, 장수도찰방(長水道察訪),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
송중유(宋仲儒) |
여산 |
간(侃)의 둘째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동강 대강 |
송사문(宋思文) |
〃 |
간(侃)의 손자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 |
송예정(宋禮貞) |
〃 |
사안(思安)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 |
송유정(宋有貞) |
〃 |
사안의 아들로,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를 역임하였다. | |
송옥손(宋玉孫) |
〃 |
사평(思平)의 아들로, 안음(安陰)·지례현감(智禮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희손(宋熙孫) |
〃 |
간(侃)의 현손으로, 사정(司正)을 역임하였다. | |
송흥룡(宋興龍) |
〃 |
군수 곤강(昆岡)의 아들로, 울진군수(蔚津郡守)를 역임하였다. | |
송익린(宋益璘) |
〃 |
사정(司正) 희손(熙孫)의 아들로, 좌부장(左部將)을 역임하였다. | |
송옥형(宋玉衡) |
〃 |
유정(有貞)의 아들로, 옥구(沃溝)·광양현감(光陽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필형(宋弼衡) |
〃 |
예정(禮貞)의 아들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해운판관(海運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순의(宋純義) |
〃 |
현감(縣監) 옥손(玉孫)의 중자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순례(宋純禮) |
여산 |
간(侃)의 현손으로, 아산군수(牙山郡守), 오위도총부도사(五衛都摠府都事) 경력(經歷),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대서 상남 |
송안형(宋安衡) |
〃 |
참봉(參奉) 호(豪)의 아들로, 위원군수(渭原郡守)를 역임하였다. | |
송 성(宋 晟) |
〃 |
간(侃)의 5세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동강 신정 |
송 섬(宋 暹) |
〃 |
군수 안형(安衡)의 아들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 |
송 훈(宋 薰) |
〃 |
주부(主簿) 수형(粹衡)의 둘째 아들로, 울산병사(蔚山兵使)를 역임하였다. | |
송 괄(宋 适) |
〃 |
예정(禮貞)의 손자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 적(宋 迪) |
〃 |
예정의 손자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 해(宋 邂) |
〃 |
예정의 손자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 석(宋 碩) |
〃 |
익린(益璘)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정기(宋廷麒) |
〃 |
첨정(僉正) 괄(适)의 아들로, 남포현감(南浦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지례(宋之禮) |
〃 |
간(侃)의 현손으로, 내금위(內禁衛)를 역임하였다. | |
송한련(宋漢連) |
〃 |
충강공 간(侃)의 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
송 전(宋 筌) |
〃 |
순형(純衡)의 장자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 두원 송정 |
송 건(宋 建) |
〃 |
현령(縣令) 필형(弼衡)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동강 마륜 |
송응벽(宋應壁) |
〃 |
현감 순의(純義)의 아들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 승주 별양 |
송응민(宋應珉) |
〃 |
응벽(應壁)의 아들로, 부장(部將), 별도장(別都將)을 역임하였고,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
송응기(宋應璣) |
여산 |
응벽(應壁)의 막내 아우로,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역임하였고,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포두 후동 |
송홍득(宋弘得) |
〃 |
간(侃)의 후손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
송홍열(宋弘烈) |
〃 |
간(侃)의 5세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단성현감(丹城縣監),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 점암 봉남 |
송홍윤(宋弘允) |
〃 |
현감(縣監) 백유(伯儒)의 현손으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오서(宋五瑞) |
〃 |
간의 5세손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하였다. | |
송대립(宋大立) |
〃 |
관(寬)의 아들로, 훈련원정(訓鍊院正) 임난공신으로 대첩단(大捷壇) 재동서원(齋洞書院) 등에 배향되였다. | 동강 대강 |
송희립(宋希立) |
〃 |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중제(中弟)로, 훈련원정(訓鍊院正) 임난공신으로 세충사(世忠祠)에 배향되였다. | 도화 |
송홍연(宋弘淵) |
〃 |
순례(純禮)의 장손으로, 충좌위좌부장(忠佐衛左部將) 임난공신으로 재동서원(齋洞書院)에 배향되였다. | |
송 확(宋 確) |
〃 |
익린(益璘)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홍원(宋弘源) |
〃 |
천상(天祥)의 둘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홍장(宋弘瀁) |
〃 |
천상(天祥)의 세째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정립(宋挺立) |
〃 |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제수되였다. | 동강 대강 |
송지한(宋之翰) |
〃 |
병사(兵使) 훈(薰)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계량(宋繼良) |
〃 |
첨정(僉正) 해(邂)의 둘째아들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 동강 관덕 |
송계창(宋繼昌) |
〃 |
첨정(僉正) 해(邂)의 셋째아들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에 기록되었다. | 동강 마륜 |
송득운(宋得雲) |
〃 |
판관(判官) 성(晟)의 아들로, 적량만호(赤梁萬戶)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동강 신정 |
송상후(宋商後) |
여산 |
대수(大壽)의 아들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상보(宋商輔) |
〃 |
간(侃)의 후손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고흥 남계 |
송 백(宋 栢) |
〃 |
간(侃)의 6세손으로, 좌부장(左部將), 주부(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남양 부도 |
송지강(宋之綱) |
〃 |
부사(府使) 두남(斗南)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송흥운(宋興雲) |
〃 |
간(侃)의 후손이고, 감찰(監察) 섬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 동강 원등 |
송의달(宋義達) |
〃 |
오서(五瑞)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세발(宋世潑) |
〃 |
굉(宏)의 아들로, 우부장(右部將)으로 금곡사(金谷祠)에 배향되였다. | 점암 신안 |
송상충(宋尙忠) |
〃 |
주부(主簿) 석(碩)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지준(宋之準) |
〃 |
첨정(僉正) 영(*)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 격(宋 格) |
〃 |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아들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상신(宋尙信) |
〃 |
첨정(僉正) 확(確)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 익(宋 滸) |
〃 |
주부(主簿) 격(格)의 아우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송운기(宋雲起) |
〃 |
첨정(僉正) 경(逕)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두원 반산 |
송 득(宋 得) |
〃 |
생원(生員) 분(芬)의 셋째아들로, 옥구만호(沃溝萬戶)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진부(宋眞夫) |
〃 |
간(侃)의 7세손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경상도병사(慶尙道兵使)를 역임하였다. | |
송진업(宋震業) |
〃 |
흥운(興運)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 |
송우철(宋友哲) |
여산 |
오서(五瑞)의 손자로, 무과급제하였다. | |
송춘세(宋春世) |
〃 |
두남(斗南)의 아들로, 훈련원부장(訓鍊院部將)을 역임하였다. | |
송 눌(宋 訥) |
〃 |
대립(大立)의 아들로, 군기감주부(軍器監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계업(宋繼業) |
〃 |
판관(判官) 계훈(繼勳)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송 겸(宋 謙) |
〃 |
대립(大立)의 아들로, 태천현감(泰川縣監), 황주판관( 黃州判官)를 역임하였다. | |
송 심(宋 諶) |
〃 |
참의(參議) 대립(大立)의 아들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로 증직, 재동사(齋洞祠)에 배향되었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동강 대강 |
송세융(宋世隆) |
〃 |
성암(省庵) 린(律)의 손자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경룡(宋慶龍) |
〃 |
어영장(御營將) 홍연(弘淵)의 아들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시현(宋時賢) |
〃 |
홍장(弘瀁)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 수(宋 穗) |
〃 |
수사(水使) 희립(希立)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시필(宋時弼) |
〃 |
판관(判官) 홍장(弘瀁)의 셋째아들로,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후창(宋後昌) |
〃 |
만호(萬戶) 득(得)의 아들로, 첨중추(僉中樞)를 역임하였다. | |
송유지(宋惟智) |
〃 |
만호(萬戶) 흥룡(興龍)의 아들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 |
송상립(宋尙立) |
〃 |
간(侃)의 후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시명(宋時明) |
〃 |
중유(仲儒)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시민(宋時敏) |
〃 |
판관(判官) 홍장(弘瀁)의 넷째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문우(宋文祐) |
여산 |
심(諶)의 아들로,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하였다. | |
송필흥(宋必興) |
〃 |
판관(判官) 홍원(弘源)의 손자로, 용양위부사정(龍槐衛副司正) 미관진병마첨절제사(彌串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 |
송필원(宋必遠) |
〃 |
첨사(僉使) 필흥(必興)의 아우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지원(宋之元) |
〃 |
후립(後立)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문욱(宋文郁) |
〃 |
남운(南運)의 아들로,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였다. | |
송지문(宋之文) |
〃 |
후립(後立)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익상(宋益商) |
〃 |
응남(應南)의 손자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 |
송의정(宋義廷) |
〃 |
산(珊)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두원 풍류 |
송 헌(宋 櫶) |
〃 |
시현(時賢)의 아들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을 역임하였다. | |
송석기(宋碩基) |
〃 |
홍운(弘運)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홍업(宋弘業) |
〃 |
현감(縣監) 상보(商輔)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문형(宋文亨) |
〃 |
심(諶)의 아들로, 무과급제하였다. | |
송양하(宋樑夏) |
〃 |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증손으로,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를 역임하였다. | |
송명천(宋命天) |
〃 |
중유(仲儒)의 8세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동근(宋東根) |
〃 |
린(律)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송윤환(宋允煥) |
〃 |
군수 득운(得運)의 6세손으로, 비변장(備邊將)을 역임하였다. | |
송정보(宋廷輔) |
여산 |
회(*)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송인서(宋璘瑞) |
〃 |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7세손으로, 가덕진첨사(加德鎭僉使)를 역임하였다. | |
송대호(宋大浩) |
〃 |
군수(郡守) 득운(得運)의 8세손으로, 오위장(五衛將), 첨중추(僉中樞)를 역임하였다. | |
송세호(宋世浩) |
〃 |
계유(季儒)의 후손으로, 첨중추(僉中樞),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 |
송의호(宋義浩) |
〃 |
내계(來啓)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판관(判官)을 제수하였다. | |
송주환(宋柱煥) |
〃 |
내계(來啓)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주찬(宋柱贊) |
〃 |
수귀(壽龜)의 현손으로, 용양위사과(龍槐衛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주봉(宋柱奉) |
〃 |
순례(純禮)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응상(宋應祥) |
남양 |
현령(縣令) 보(輔)의 아들로, 축산첨사(丑山僉使),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송 인(宋 仁) |
〃 |
참봉(參奉) 승주(承周)의 아들로,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 |
송 의(宋 義) |
〃 |
승주(承周)의 아들로,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 |
송 거(宋 巨) |
〃 |
행정(杏亭) 인(寅)의 후손으로, 강진현감(康津縣監)을 역임하였다. | |
송 례(宋 禮) |
〃 |
승주(承周)의 아들로, 사도첨사(蛇渡僉使)를 역임하였다. | |
송 지(宋 智) |
〃 |
승주(承周)의 아들로, 훈련원판사(訓鍊院判事) 임난공신으로 좌승지(左承旨)에 제수되었다. | 동강 관덕 |
송 기(宋 琦) |
〃 |
행정(杏亭) 인(寅)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 구(宋 球) |
〃 |
응상(應祥)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대서 장선 |
송 념(宋 恬) |
남양 |
승주(承周)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 |
송 충(宋 忠) |
〃 |
승주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덕일(宋德馹) |
〃 |
내금위(內禁衛) 인(仁)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 정려(旌閭) 및 운곡사(雲谷祠)에 배향되였다. | 동강 당곡 |
송덕준(宋德駿) |
〃 |
참의(參議) 제(悌)의 아들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덕린(宋德麟) |
〃 |
승지(承旨) 지(智)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동강 관덕 |
송덕기(宋德驥) |
〃 |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아우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덕화(宋德*) |
〃 |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아우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 |
송 결(宋 *) |
〃 |
판관(判官) 충(忠)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동강 세곡 |
송인신(宋仁信) |
〃 |
판관(判官) 덕준(德俊)의 종제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였다. | |
송위남(宋緯南) |
〃 |
판관(判官) 덕준의 아들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
송후경(宋後璟) |
〃 |
병사(兵使) 덕일(德馹)의 손자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
송세빈(宋世彬) |
〃 |
사직(司直) 염(恬)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 |
송동수(宋東秀) |
〃 |
결(*)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 |
송석필(宋碩弼) |
〃 |
의병장 결(*)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송시한(宋時漢) |
〃 |
섭(涉)의 후손으로, 무과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송 선(宋 瑄) |
〃 |
첨정(僉正) 응상(應祥)의 아들로,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다. | 대서 안동 |
송 영(宋 瑛) |
남양 |
첨정(僉正) 응상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대서 신기 |
송시복(宋時福) |
〃 |
판관(判官) 구(球)의 후손으로, 무과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신명원(申明遠) |
고령 |
참의(參議) 붕(鵬)의 아들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 |
신명달(申明達) |
〃 |
붕의 아들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 동강 마륜 |
신명후(申明逅) |
〃 |
명원(明遠)의 아우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 |
신용해(申容海) |
〃 |
명원(明遠)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 |
신홍해(申弘海) |
〃 |
용해(容海)의 아우로, 현감(縣監), 호판(戶判)에 증하였다. | |
신광해(申光海) |
〃 |
명달(明達)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동강 마륜 |
신수재(申秀材) |
〃 |
참의(參議) 궁건(宮楗)의 아들로, 통영우후(統營虞侯)를 역임하였다. | 두원 대전 |
신군안(申君安) |
〃 |
현감(縣監) 수재(秀材)의 아들로, 의병장으로 정유재란때 보화도에서 순절하였다. | 두원 대전 |
신영해(申榮海) |
〃 |
판관(判官) 광해(光海)의 아우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신여량(申汝樑) |
〃 |
호판(戶判) 홍해(弘海)의 아들로,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전라병사(全羅兵使) 나주 충장사(忠莊祠) 금산 대첩단(大捷壇)에 배향되고 부조묘(不*廟)에 모셨다. | 동강 마륜 |
신여극(申汝極) |
〃 |
용해(容海)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나주 충장사(忠莊祠) 금산 대첩단(大捷壇)에 배향되였다. | 고흥 남계 |
신여기(申汝杞) |
〃 |
홍해의 아들로, 판결사(判決事)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동강 |
신여정(申汝楨) |
〃 |
병조판서(兵曹判書) 여량(汝樑)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으로 나주 충장사 금산대첩단에 배향되였다. | 동강 당곡 |
신여식(申汝拭) |
〃 |
판관(判官) 광해(光海)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동강 마륜 |
신원방(申元方) |
고령 |
참의(參議) 붕의 손자로, 남원부사(南原府使)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과역 월악 |
신여국(申汝堰) |
〃 |
부정(副正) 명후(明逅)의 손자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신홍일(申弘馹) |
〃 |
군안(君安)의 아들로, 덕포첨사(德浦僉使) 정유재란때 공을 세웠다. | |
신덕성(申德暉) |
〃 |
병조판서(兵曹判書) 여량(汝樑)의 아들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역임하였다. | 동감 마륜 |
신동철(申東哲) |
〃 |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난포만호(蘭浦萬戶)를 역임하였다. | |
신상형(申尙亨) |
〃 |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난포만호(蘭浦萬戶)를 역임하였다. | |
신상강(申尙綱) |
〃 |
첨사(僉使) 홍일(弘馹)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신석구(申錫求) |
〃 |
여정(汝楨)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신규모(申奎模) |
〃 |
직장(直長) 여정(汝楨)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우태설(禹泰說) |
단양 |
문희공(文僖公) 탁(倬)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윤 단(尹 檀) |
칠원 |
자량(子良)의 후손으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역임하였다. | |
이영명(李永明) |
흥양 |
총(*)의 아들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풍양 보천 |
이세훈(李世薰) |
〃 |
부사(府使) 맹무(孟茂)의 손자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
이흥배(李興培) |
〃 |
진욱(震郁)의 아들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충위위부사과(忠衛尉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이 원(李 願) |
경주 |
승지(承旨) 정필(廷弼)의 아들로, 선전관(宣傳官)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동강 오월 |
이승락(李承洛) |
〃 |
병조판서(兵曹判書) 원(願)의 손자로,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이승극(李承克) |
경주 |
병조판서(兵曹判書) 원(願)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이상하(李尙夏) |
〃 |
참판(參判) 방직(邦稷)의 손자로, 익위사위(翊衛司衛)를 역임하였다. | |
이홍영(李洪榮) |
〃 |
항복(恒福)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이석우(李錫雨) |
〃 |
정혁(廷爀)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이경우(李景雨) |
〃 |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핵(*)의 후손으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이복의(李復義) |
성주 |
정녕(正寧)의 7세손으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하였다. | |
이 위(李 *) |
〃 |
복의(復義)의 아들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역임하였다. | |
이계남(李繼男) |
우봉 |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 정(靖)의 후손으로, 무과급제 선전관(宣傳官), 중위장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이응홍(李應弘) |
합천 |
선전관(宣傳官) 공(恭)의 아들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였다. | |
이우만(李愚萬) |
양성 |
상서(尙書) 명두(命斗)의 후손으로, 무과합격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임 영(林 英) |
부안 |
충장공(忠莊公) 언(彦)의 후손으로,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 감찰(監察),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포두 장자 |
임개국(林盖國) |
〃 |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효력부위(效力副尉)를 역임하였다. | |
임재무(林再茂) |
〃 |
춘(椿)의 후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하동부사(河東府使)를 역임하였다. | |
임숙무(林淑茂) |
〃 |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임방언(林邦彦) |
〃 |
서하(西河) 춘(椿)의 후손으로, 무과급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 |
장 담(張 淡) |
인동 |
장령(掌令) 선(璿)의 후손으로, 전라병사(全羅兵使) 임난때 순절공신이였다. | 대서 평촌 |
장우문(張宇文) |
인동 |
현감(縣監) 홍(洪)의 아들로,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 |
장경익(張景翼) |
〃 |
명주(命周)의 증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장천장(張天章) |
창녕 |
참의(參議) 의지(彛之)의 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동강 덕암 |
장시헌(張時憲) |
〃 |
천장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장운망(張雲望) |
〃 |
승지(承旨) 시헌(時憲)의 손자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장 수(張 *) |
인동 |
현령(縣令) 흥일(興一)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 |
장 즙(張 즙) |
〃 |
참판(參判) 연(淵)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장한원(張漢元) |
〃 |
참의(參議) 찬(讚)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전복홍(田福弘) |
담양 |
세희(世僖)의 증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전우기(田雨淇) |
〃 |
녹생(祿生)의 후손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 |
전시우(田時雨) |
〃 |
양덕현감(陽德縣監)을 역임하였다. | |
정유조(丁有祖) |
영광 |
부정(副正) 자행(自行)의 아들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 |
정형조(丁亨祖) |
〃 |
자행의 아들로, 교동현감(喬洞縣監) 경기수사(京畿水使)를 역임하였다. | 도화 고당 |
정귀수(丁龜壽) |
〃 |
첨정(僉正) 유조(有祖)의 아들로, 갑산도호부사(甲山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 |
정 준(丁 俊) |
〃 |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 |
정귀세(丁龜歲) |
〃 |
첨정(僉正) 유조(有祖)의 아들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 |
정 혼(丁 混) |
영광 |
만호(萬戶) 귀세(龜歲)의 아들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 |
정몽수(丁夢壽) |
〃 |
철석(鐵碩)의 증손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
정 급(丁 汲) |
〃 |
찰방(察訪) 준(俊)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정운열(丁雲說) |
〃 |
현감(縣監) 식(湜)의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 |
정운창(丁運昌) |
〃 |
판관(判官) 한(漢)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정명한(丁鳴漢) |
〃 |
현감(縣監) 명세의 아우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 |
정홍익(丁弘益) |
〃 |
극인(克仁)의 후손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정 근(丁 近) |
〃 |
참봉(參奉) 명옥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 |
정 엽(丁 燁) |
〃 |
군수(郡守) 홍록(弘祿)의 아들로,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을 역임하였다. | |
정희열(丁希說) |
〃 |
판관(判官) 몽수(夢壽)의 아들로,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 |
정 흘(丁 屹) |
〃 |
명선(鳴善)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정시두(丁時斗) |
〃 |
부정(副正) 상준(尙俊)의 아들로,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 마도진만호(馬島鎭萬戶)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 |
정 돈(丁 燉) |
〃 |
홍립(弘立)의 아들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정 열(丁 烈) |
〃 |
주부(主簿) 돈(燉)의 아우로,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역임하였다. | |
정억복(丁億福) |
〃 |
진사(進士) 서건(瑞健)의 아들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 |
정상준(丁尙俊) |
〃 |
직장(直長) 응진(應軫)의 손자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역임하였다. | 대서 월등 |
정홍록(丁弘祿) |
영광 |
영광군수(靈光郡守) 연(淵)의 아들로, 임진왜란때 부자가 함께 순절하였다. | 포두 안동 |
정 걸(丁 傑) |
〃 |
숭조의 아들로, 서북만호(西北萬戶),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전라병사(全羅兵使), 경상병사(慶尙兵使) 등을 역임하였고,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포두 안동 |
정 식(丁 湜) |
〃 |
수사(水使) 형조(亨祖)의 손자로, 현감(縣監)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도화 고당 |
정명세(丁鳴世) |
〃 |
판관(判官) 명선(鳴善)의 아우로, 임진왜란때 순절하였다. | 두원 상대 |
정두형(鄭斗炯) |
진주 |
충장공(忠莊公) 정분(鄭*)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하였다. | |
정두하(鄭斗河) |
〃 |
정분(鄭*) 후손으로, 무과급제 하였다. | |
정세흥(鄭世興) |
〃 |
판윤(判尹) 득(得)의 아들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 |
정운형(鄭運亨) |
〃 |
문정공(文靖公) 해(諧)의 후손으로, 흥양현감(興陽縣監)을 역임하였다. | |
정민현(鄭旻鉉) |
경주 |
승복(承復)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조인순(趙仁淳) |
함안 |
상서(尙書) 승숙(承肅)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조응규(趙膺奎) |
〃 |
어계(漁溪) 여(旅)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진무성(陳武晟) |
여양 |
대사간(大司諫)의 후손으로,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워 귀성부사(龜城府使)에 제수되고 무열사(武烈祠)에 배향되었다. | 두원 신송 |
진후평(陳後平) |
〃 |
무성(武晟)의 아들로, 녹도만호(鹿島萬戶)를 역임하였다. | 〃 |
진원국(陳元國) |
〃 |
무성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
진후번(陳後蕃) |
〃 |
무성의 아들로, 훈련원주부 연일현감(延日縣監)을 역임하였다. | 〃 |
진후식(陳後寔) |
〃 |
판관(判官) 후평(後平)의 아우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 |
진상한(陳相漢) |
여양 |
무성의 손자로,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 〃 |
진달성(陳達聖) |
〃 |
무성의 후손으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부사과(龍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최대성(崔大成) |
경주 |
문정공(文正公) 해(瀣)의 후손으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
최천보(崔天寶) |
〃 |
참봉(參奉) 파(坡)의 손자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임난공신록에 기록되었다. | 두원 예회 |
최홍준(崔弘峻) |
〃 |
판관(判官) 열(烈)의 아들로,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 두원 예회 |
최현수(崔賢秀) |
초계 |
문절공(文節公) 산두(山斗)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한인석(韓仁錫) |
청주 |
문간공(文簡公) 상경(尙敬)의 후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
황산수(黃山壽) |
장수 |
동중추(同中樞) 신욱(信郁)의 아들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 |
황몽신(黃夢臣) |
〃 |
판관(判官) 산수(山壽)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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