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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예술

책 - 천하무적 박치기왕(김일선수 관련 내용)

by 고흥을 찾아서 2010. 5. 14.

 

                                  김선희 글/이강훈 그림/웅진 주니어/168쪽

 

 

초등학생 시절, 동네에 '성구'라는 친구가 살았다.

아이는 또래보다 몸이 마르고 약했다.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살았고 누런 코를 흘렸다.

방과 후 집에 돌아갈 때도 어깨를 늘어뜨린 채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덩치가 조그만 아이마저 성구를 '야, 빼빼!(야윈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라며 놀렸다. 성구는 그 아이를 곁눈질로 흘낏 쳐다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싸워봐야 이기지도 못할 것'이라며 체념한 듯 보였다.

그런 성구가 완전히 달라지는 날이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황금박쥐'라는 만화 영화를 방영하는 날이었다. 황금박쥐는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 정의의 용사다.

황금박쥐가 끝나면 성구는 붉은 보자기의 양쪽 귀를 묶어 목에 살짝 매고 등 뒤로 보자기를 늘어뜨렸다. 한 손에는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었다. 황금박쥐로 변신한 것이다. 황금박쥐인 성구는 어둑해진 동네 골목을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녔다. "다그닥 다그닥…." 성구는 입으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리다 가끔 막대기를 허공에 휘둘렀다. 흠뻑 땀을 흘린 성구는 길모퉁이에 앉아 환하게 웃곤 했다. 성구는 황금박쥐처럼 강해지고 싶었던 걸까?

'천하무적 박치기왕'에도 그런 아이가 나온다.

옥수초등학교 5학년 10반 김인식이다. 인식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다. 아버지는 작은 트럭을 운전하는데, 매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밥상을 엎어버리기 일쑤다.

조그만 트집을 잡아 인식이 누나와 인식이를 때리기도 한다. 생선 장수인 엄마도 아버지 앞에선 무기력하다. 인식이는 아버지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렵고 힘든 일상이지만 인식이는 가슴에 큰 꿈을 품고 산다. 바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 김일의 제자가 되는 것. 패배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가도 박치기 한 방으로 단숨에 역전승을 거두는 챔피언 김일처럼 되고 싶었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때린 거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사과도 받고 싶었다. 인식이는 레슬링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고 방에서 이불을 펴놓고 레슬링 연습도 열심히 했다. 레슬링을 할 때 인식이는 마냥 즐거웠다.

기회는 왔다. 장충체육관에서 김일과 일본 안토니오 이노키의 세계적인 대결이 열린 것. 인식이는 김일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인식이가 장충체육관을 찾는 일은 어려웠고, 도중에 전파사 텔레비전에서 김일이 패하는 것을 본다. 자신의 우상이 진 것을 본 인식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를 흠뻑 맞고 장충체육관을 찾았지만 텅 비어 있다.

저자는 허탈감에 빠진 인식이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은 없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을수록 강해진다. 아버지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 가슴이 열 번 뛰다가 다섯 번만 뛰면, 넌 그만큼 강해진 거다. 나중에 아버지 발걸음 소리를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 않으면, 그때 넌 아버지를 넘어선 거다"

책에서는 알밤 까기 명수 여건부, 당수의 대가 천규덕, 신비로운 타이거 마스크 등 과거 70년대 프로 레슬링계를 주름잡았던 반가운 이름도 나온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와 함께 옛날 프로 레슬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