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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예술

단가 - 이산저산(김연수)

by 고흥을 찾아서 2010. 5. 10.

 

 

 


이산 저산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풍경 너른 곳, 만자천홍(萬紫千紅) 그린 병풍 앵가접무(鸚歌蝶舞) 좋은 풍류, 세월 간 줄을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일레라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네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왔다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勝花時)라 예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된들 또한 경개(景槪) 없을손가 상엽홍어이월화라 중양추색용산음과 한로상풍(寒露霜風)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잖는 황국단풍(黃菊丹楓)은 어떠허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면 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에 천산비조 끊어지고 만경인종 없어질 제 백설이 펄펄 휘날리어 월백설백(月白雪白) 천지백(天地白)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일레라 그렁저렁 세월이 가면 어느듯 또 하나 연세는 더허는디 봄은 찾아왔다고 즐기더라 봄은 갔다가 연년이 오건만 이 내 청춘은 한 번 가고 다시 올 줄을 모르는가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인생이 비록 백 년을 산대도 인수순약(人壽瞬若) 격석화(擊石火)요, 공수래 공수거를 짐작하시는 이가 몇몇인고, 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느니라 놀아도 너무 허맹이허면 늙어지면서 후회되리니, 바쁠 때 일허고 한가할 때 틈타서 좋은 승지도 구경하며 헐일을 허면서 놀아보자

 



단가 부르신 분은 동초 김연수 명창, 고수는 이정업 명인이다. 4계절의 순환속에 변화하는 자연 풍광, 그리고 인생의 유한성과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한명희 저『우리가락 우리문화』에 소개된 <사절가>를 보면 1950~60년대에 김연수 명창이 지어 부른 것이라 한다. <이산 저산>은 김연수 명창이 부른 것과 정권진 명창이 부른 것(뿌리깊은나무) 두 가지가 있다. 조상현 명창 <이산 저산>과 영화『서편제』에서 김명곤이 부른 것은 정권진 소리제이다. 김연수 명창의 <이산 저산>은 사설의 발음이 정확하고 사설에 맞는 음악표현이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감칠맛이 나고 정권진 명창의 <이산 저산>은 훨씬 담백한 쪽에 가깝다. 사설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 김연수 (金演洙, 1907∼1973)명창의 아호는 동초(東超)다. 그는 1907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14세까지 한학을 수학하였으나 뜻한 바 있어 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에서 신학문을 하였고, 이로써 새로운 세계관에 눈 뜨게 되었다.

1935년 순천에 체류중인 당대의 명창 유성준 문하에서 <수중가> 한판을 떼었고, 동년 7월 서울에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문하에 입문하여 <흥부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1936년에는 정정렬 문하에서 <적벽가>와 <춘향가>를 전수하였다. 이로서 동초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섭렵하여 판소리의 대강을 확인하였으며 여생을 판소리 연구와 전수에 바치기로 뜻을 세웠다.

1937년 조선성악연구회 이사가 되었고, 동 기관의 전속단체인 <조선 창극좌> 대표가 되면서 창극 중흥에 큰 뜻을 펴기 시작했다. 동년 3월, 일본 <빅타>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5대가의 더늠대목을 뽑아서 소리판 30장을 출간, 1940년엔 O.K사의 전속가수로서 <심청가> 전편과 <장끼타령> 한질을 출간한 것이 그의 출세작이다.

동초는 1945년 <김연수 창극단>, 1950년엔 <우리 국악단>을 만들어 그의 창극이론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동초는 흔히 말하는 <창극 판소리>의 새로운 창법을 트기 시작하여 판소리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는 많은 반발이 뒤따랐으며, 명창인 <임방울>과는 그 견해의 차로 늘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초는 새로운 시대에 창극이 부응하자면 <창극 판소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공은 막중하며, 선각사상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동초는 1957년에는 대한국악원장, 1958년에는 ITI한국본부 부위원장, 1962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로 지정 받았다. 동초가 평소에 판소리 5바탕을 심혈을 드려 정리 출판한 일은 동리 신재효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으로 판소리史에 크게 빛나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사설에 일일이 장단을 붙이고 발성까지 지도해 놓아서 후생들의 판소리 입문에 크게 돕는 일을 하였다.

동초 김연수가 판소리와 창극에 공헌한 업적은 말할 것도 없이 많다. 그 중 또 하나가 동아방송에서 1967년부터 시작한 판소리 다섯 바탕 전판을 녹음하여 140여회에 걸쳐 연속방송한 것은 그의 초인적이며 기록적인 업적으로 본다. 이 일은 판소리史에 영원히 남을 금자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