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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장소

다큐멘터리영화 - 섬이 되다(소록도)

by 고흥을 찾아서 2010. 5. 11.

 

 

 

 

 

제목 : 섬이 되다
감독 : 임은희
정보 : 2007 / documentary / beta / 66분 / color


  소록도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섬이 되다>는 독특하게도 서울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빠른 속도로 편집된 화려한 서울의 모습 사이로 한센씨병과 소록도에 대한 감독의 질문에 대답하는 행인의 인터뷰가 담긴다. 사람들은 한센씨병과 소록도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하다. ‘전염되는 병이 아닐까요’, ‘유전도 되겠죠’,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요’, 등의 대답이 이어지면, 영화는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녹동섬으로 가서 현지인들에게 소록도 사람들에 대해 묻는다. 녹동섬으로 나오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소록도 사람을 음식점이나 이발소에 들여보낼 수는 없다고, 그들의 외모가 어딘가 꺼림칙하다고 사람들은 털어놓는다. 소록도에 도착해서도, 영화는 섬의 풍경으로만 천천히 다가갈 뿐 한동안 주민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섬이 되다>는 느린 흐름의 관찰이 주가 되는 영화다. 영화는 소록도의 산과 동물과 나무들을 비추며, 현지인과의 인터뷰도 감독이 잡아낸 소록도의 풍경 위로 인터뷰어의 목소리가 얹히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주로 섬의 풍경을 활용한 이미지를 통해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나 궁금해질 때쯤 카메라는 한센씨 병 환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뒤에서, 혹은 멀리에서 그들을 비추며 증언을 담기 시작하는데, 소록도 주민이 회상하는 과거는 소록도에 한센씨 병 환자가 모이게 된 계기, 일제에 의해 주민들이 강제로 소록도에 모이게 된 때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전쟁 물자를 바치기 위해 고되게 일해야 했고, 반항하는 사람은 일제에 의해 모진 고문을 받거나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려면 정관수술을 해야 했는데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혹 아이를 가지기라도 하면 낙태한 태아를 유리병에 넣었다는 일제의 온갖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화면에 드러나는 일제시대의 시설들은 잔혹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보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관객 역시 이들의 이야기에 적응될 때쯤에야 카메라는 가까이 다가간다. 영화가 소록도 주민에게 애써 천천히 접근한 이유는 한센씨 병 환자의 외모에 대해 가지는 편견이나 두려움 혹은 충격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기 위한 감독의 선택으로 보인다. 카메라가 비추는 소록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은 일그러져있고 손가락이 제대로 있는 사람이 없다. 만약 영화가 단도직입적으로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관객에게 크든 적든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고, 한센씨병 환자의 외모를 이런 충격을 주기 위해 영화가 이용한 결과를 낳은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센씨병 환자에 대한 편견이 어떤 불행을 가져왔는가를 말하는 것이 영화의 목표임을 생각해볼때, 천천한 접근을 선택한 감독의 판단은 현명한 대처로 보인다.

  그리고 영화가 느린 속도로 섬 주민을 소개한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느리고 어두운 죽음의 분위기를 잡아내기 위함이다. 언뜻 보이는 주민의 집들은 모두 낡았고 현대적인 시설은 많이 보이지 않으며, 영화에는 섬의 큰길에 카메라를 놓고 지나가는 행인을 저속 촬영한 씬이 하나 나오는데, 카메라에 촬영된 행인의 대부분이 전동 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다. 이런 장면은 섬의 정체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서술한다. 영화에는 천천한 흐름 속에 몇 번의 전환이 있다. 영화에는 감독이 소록도 주민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감독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감독이 영화에 개입하지 않고 한발자국 물러서 관조적으로 섬을 관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감독의 개입을 느낄 수 있는 건 이런 몇 번의 전환에서이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에는 서울에서 시작했다가, 그 다음에는 녹동섬으로 이동했다가, 소록도로 들어가지만 주민을 가까이 보여주진 않고, 소록도의 과거를 말한 후에야 주민에게 다가가는 식으로, 영화는 전환을 통해서 감독의 의도를 설명한다. 이런 전환 중에는 유쾌한 장면도 몇 있다. 중간에 넉살좋은 할머니가 감독에게 ‘너는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했냐’고 묻고 ‘너도 참 큰일이다’라고 말하며 웃는 장면은 그들이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할아버지이자 할머니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그리고 환자가 아닌 소록도 주민들, 예를 들어 간호사나 자원봉사자를 보여주며 섬이 앞에서 묘사된 것만큼 폐쇄적인 곳은 아님을 설명하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소록도는 활기차지 않아 보인다. 해방 후 일제가 떠난 후에도 섬 주민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해방 직후, 주민들의 반항을 두려워한 병원과 관공서 사람들이 주민 중 80여명의 사람을 골라내 학살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도 섬 주민들은 사회의 핍박을 받고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지 못하고 섬에 외롭게 갇혀 살았고 지금도 외롭게 살고 있다. 지금은 정부의 보조를 받고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섬 밖으로 나가려면 쉽지 않다고 주민들은 털어놓는다. 영화에서 주민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외롭다’와 ‘가족이 보고 싶다’이다. 섬 주민 대부분이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이며 죽은 후에도 누구도 유골을 찾아가지 않는다. 감독이 어느 할아버지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자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할아버지가 대답하는 부분에서, 고립된 삶이 이들의 마음 속 깊이 얼마나 많은 한을 새겨놓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바늘귀에 실을 꿰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제가 대신 해드릴까요, 라고 감독의 묻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할아버지는 한사코 자신의 손으로 실을 꿰려 한다. 영화 처음에는 이 장면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이 장면에서 전해오는 감정이 영화 전체를 관통해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감정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를 위주로 한 차분한 접근을 통해 소록도를 몇 십 년 동안 지배해온 죽음의 분위기를 관객 앞으로 끌어낸 영화를 지켜보면서 관객의 감정 역시 변화한 것이다. <섬이 되다> 의 마지막에는 한센씨 병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센씨 병은 전염되는 확률이 가장 낮은 3종 전염병이며, 1942년에 개발된 약을 단 한 정만 투여해도 전염성이 사라지고, 일반인이 전염될 확률은 거의 없으며, 유전이나 임신에 의한 전염 역시 없다고 한다. 우리의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생긴 무서운 벽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소록도에 몰아넣고 평생 불행하도록 만들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의 화려한 모습 뒤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