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길이가 겨우 1km 남짓이다. 차로 1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에 버스를 타지도 못해 일주일을 넘게 걷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시간 편견과 멸시로 격리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다.
작은 사슴 모양을 닮았다는 그 이름도 어여쁜 소록도. 소록도는 전남 고흥 녹동항으로부터 몇 백 미터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실은 그 소록도가 남도의 한 외진 끄트머리에 붙어있는지, 다리가 놓여 왕래가 수월해졌는지 모를 만큼 나조차도 무심했다.
‘천형(天刑)의 땅’으로 차별받던 소록도는 지난 2007년 소록대교의 완공 소식이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 보도된 적이 있다. 편견과 슬픔에 잠겨있던 세상에 없는 고립된 섬의 얼룩진 역사를 돌이켰던 소록다리는 그저 섬과 뭍을 잇는 다리만은 아닐 것이다.
보성 숙소에서 간단하게 빵 몇 조각에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흥으로 출발했다. 국도의 길은 반듯하게 잘 뚫려 있었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량도 드물어 금세 도착했다. 햇살은 온화했고 바닷물 위로 윤슬진 물빛이 반짝였다. 이렇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섬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걸까.
국립소록도병원에 1917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였으니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치료의 목적으로 격리시켰다고 하지만 실제는 강제적인 감금이었다. 소록도는 사람이 세 번 죽는 섬이란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 한센병 환자로 태어나 한 번, 죽어서 부검되어 또 한 번, 화장으로 마지막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자유가 될 수 있었다. 유전과 전염이 된다는 이유로 가족조차도 멀리 떨어져 한 달에 한번 면회했던 시절의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다.
비린 바다 향일까, 아니면 옆 솔숲에서 나는 향일까. 걷는 내내 좋은 향기가 났지만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역사와 그들의 절규가 남긴 짧은 글들을 읽다보면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광복이 되고서도 그곳의 부당함과 개선을 원했던 환자 83명이 학살되는 대참사가 있었던, 파도를 배경으로 세워진 애환의 추모비에 빼곡하게 적힌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한참을 미동초차 할 수 없었다.
유독 감춰지고 이슈화되지 않았던 소록도의 사건들은 다만 일제시대 그들만의 만행이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시절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한센병에 대한 편견은 문둥이라 놀리며 경계하던 우리들의 편견과 시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소록도에는 1936년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조성된 6천 평 규모의 중앙공원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나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고된 노동의 대가로 탄생된 공원이다. 지금은 훌쩍 자란 여러 종의 나무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후세에 전하리라.
섬에는 한센병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물품, 그들이 지었던 시를 읽을 수 있고, 오스트리아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40여 년 간 봉사를 하고 돌아간 두 간호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의 친필도 볼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나가며 늦었겠지만 그들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뭉클함이 밀려왔는데 참 죄스러웠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가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시 ‘소록도 가는 길’의 붉은 황톳길은 이제 없겠지만 여전히 치유와 진상규명, 그리고 적절한 보상의 길은 숙제로 남아있다.
소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공간적 배경은 소록도이다. 5·16 쿠데타 이후 찾아든 한 대령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의 제목이 왜 나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이었을까. 이청준은 말한다. 사랑과 신뢰가 없는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든 항상 기득권 당신들의 천국이다. 오로지 사랑과 신뢰만이 우리들의 천국을 만든다고….
최영실 여행수필가
출처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
‘천형(天刑)의 땅’으로 차별받던 소록도는 지난 2007년 소록대교의 완공 소식이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 보도된 적이 있다. 편견과 슬픔에 잠겨있던 세상에 없는 고립된 섬의 얼룩진 역사를 돌이켰던 소록다리는 그저 섬과 뭍을 잇는 다리만은 아닐 것이다.
보성 숙소에서 간단하게 빵 몇 조각에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흥으로 출발했다. 국도의 길은 반듯하게 잘 뚫려 있었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량도 드물어 금세 도착했다. 햇살은 온화했고 바닷물 위로 윤슬진 물빛이 반짝였다. 이렇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섬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걸까.
국립소록도병원에 1917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였으니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치료의 목적으로 격리시켰다고 하지만 실제는 강제적인 감금이었다. 소록도는 사람이 세 번 죽는 섬이란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 한센병 환자로 태어나 한 번, 죽어서 부검되어 또 한 번, 화장으로 마지막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자유가 될 수 있었다. 유전과 전염이 된다는 이유로 가족조차도 멀리 떨어져 한 달에 한번 면회했던 시절의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다.
비린 바다 향일까, 아니면 옆 솔숲에서 나는 향일까. 걷는 내내 좋은 향기가 났지만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역사와 그들의 절규가 남긴 짧은 글들을 읽다보면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광복이 되고서도 그곳의 부당함과 개선을 원했던 환자 83명이 학살되는 대참사가 있었던, 파도를 배경으로 세워진 애환의 추모비에 빼곡하게 적힌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한참을 미동초차 할 수 없었다.
유독 감춰지고 이슈화되지 않았던 소록도의 사건들은 다만 일제시대 그들만의 만행이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시절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한센병에 대한 편견은 문둥이라 놀리며 경계하던 우리들의 편견과 시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소록도에는 1936년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조성된 6천 평 규모의 중앙공원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나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고된 노동의 대가로 탄생된 공원이다. 지금은 훌쩍 자란 여러 종의 나무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후세에 전하리라.
섬에는 한센병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물품, 그들이 지었던 시를 읽을 수 있고, 오스트리아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40여 년 간 봉사를 하고 돌아간 두 간호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의 친필도 볼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나가며 늦었겠지만 그들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뭉클함이 밀려왔는데 참 죄스러웠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가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시 ‘소록도 가는 길’의 붉은 황톳길은 이제 없겠지만 여전히 치유와 진상규명, 그리고 적절한 보상의 길은 숙제로 남아있다.
소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공간적 배경은 소록도이다. 5·16 쿠데타 이후 찾아든 한 대령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의 제목이 왜 나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이었을까. 이청준은 말한다. 사랑과 신뢰가 없는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든 항상 기득권 당신들의 천국이다. 오로지 사랑과 신뢰만이 우리들의 천국을 만든다고….
최영실 여행수필가
출처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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