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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출신인물

유금호의 삶과 작품세계

by 고흥을 찾아서 201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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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는 1942년 2월 25일 전남 고흥 녹동, 남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과수원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가끔 태풍이 휘몰아 오곤하던 그곳에서 자랐다.

과수원집에서 겪은 그때의 폭풍우와 해일, 바다 위로 떠가던 돛단배들의 기억, 울타리 주변에 작은 둥우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던 뱁새며, 오목눈이, 때까치, 종달새에 대한 추억들은 의식 밑바닥에 침전되어 늘 원형적인 향수로 작용하곤 한다.
고향을 떠난 것이 열두 살.
광주서중과 광주일고를 다니는 동안 하숙집 바로 앞에 있던 헌 책방에서 눈에 뜨이는 문학 책은 가리지 않고, 거의 빌려서 읽어치웠다. 이 시기의 지독한 남독이 그 후 생애의 독서양보다 많았으리라는 느낌이고, 뒷날 문학에 대한 열망과 관계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염원에 이과 공부를 하면서, 소설에 대한 꿈으로, 한 동안 방황과 갈등을 겪다가, 졸업 직전 방향을 선회, 소설가가 되기를 결심하였다. 글만 써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계산으로, 수업료가 면제되고, 졸업 즉시 고교 교사로 발령이 되던 국립 공주사대 국문과를 선택하였다. 그 젊은 날의 선택이 훗날 선생 노릇도, 쓰는 일에도 치열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많이 하게 했다.

그곳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 소쩍새가 밤 새워 우는소리를 들으며, 대학 내의 수요문학회 회장 일을 맡아 동인들과 밤 새워 글쓰기에 매달렸다. 대학 1학년 때 4.19 와 2학년 때의 5.16. 거기에 손아래 남동생의 죽음, 어머니의 발병, 가까운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젊은 날, 살아남은 자의 쓸쓸함, 죽음,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에 대하여,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근원적 허무가 의식 한쪽에 침전되어 갔다. 이를 갈며 썼지만 낙선의 계속, 절망과 자학, 그러다가 졸업하던 1964년 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늘을 색칠하라'가 당선되었다.

교편을 잡으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를, 그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사, 동서울대 교수, 경희대, 강남대 강사 등을 지내며, 나름대로 쓴다고 썼지만, 한 순간 완전히 펜을 던져버리기도 했다. 5.18, 강의실로 되돌아오지 못한 제자들의 빈자리를 확인하면서, 바로 눈앞에서 온 몸에 석유를 붓고 산화해 가는 제자의 모습을 보면서도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무력감 앞에, 문학이라는 것에 심한 회의와 자책의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발표되던 글이 강제 중단되기도 했고, 원초적으로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쓰는 사람 자신에게마저 진정으로 구원을 줄 수 있는가의 번민의 기간이었다. 때로 쓰지 않는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85년부터는 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많은 시간 포구의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그러면서 떠올린 것이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태풍이 휩쓸고 가버린 폐허의 과수원에서 꿈쩍 않고, 바다를 쏘아보던 아버지의 입모습의 기억이었다.
- 봐라. 나무가 뿌리까지 뽑히진 않았다.
한 해 농사가 하루 밤 태풍으로 끝나버린 아침,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또한 일찍 죽은 동생의 무덤 앞에서 네가 다 못 살고 간 삶, 글을 쓰는 것으로 형이 더 살아주겠노라고 약속했던 젊은 날의 서러웠던 새벽도 떠 올렸다. 그리고 결론이었다. 글을 쓸 수밖에 없다라고.

지금은 목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주중에는 학생들과 소설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 와 컴퓨터 앞에 앉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감사와 한국 작가교수회 회장,송파문학회 회장 일을 맡고 있다.

 

 

대표 저서
소설집 '하늘을 색칠하라'(선명문화사, 1969)
소설집 '깃발'(창작문화사, 1972)
소설집 '한 마리 작은 나의 꿩'(금란출판사, 1977)
장편소설 '겨울에 내리는 비'(민성사, 1978)

비평집 '언어, 그 꿈과 절망'(동천사, 1985)
비평집 '한국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연구'(동천사, 1988)
장편소설 '高麗舞'(세계일보사, 1992)
장편소설 '소설 열하일기'(큰산, 1992)
소설집 '새를 위하여'(큰산, 1996)
소설집 '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남양문화사,1998)
장편소설 '내 사랑 풍장' (개미, 1999)
외에 연구서 '新 小說論' (우리문학사, 1996. 공저). '현대소설의 이해'(문학사상사, 1998, 공저)
'小說, 이렇게 쓰라'(평민사,1999, 공저). '작가론'(삼영사, 1999.공저)등이 있다.
공동소설집 (상사화 꽃 다 지고,2002)
소설집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개미,2002)


작품 세계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인 데뷔작 <하늘을 색칠하라>에서 소록도라는 갇혀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예술가의 꿈과 좌절, 존재에 대한 허무 인식을 다루었던 그의 작품세계는 훗날 고려시대 노예 반란을 다룬 장편소설 <高麗舞>나, 한 개인의 자유 의지를 추구한 장편소설 <소설 열하일기>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삶과 역사 속에 억압이 존재하는 한,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저항과 자유의 의지는 지하수처럼 기회를 기다리며 흐르고 있다는 인식은, 실패한 고려시대의 노예반란이나, 실사구시를 꿈꾸던 박지원의 개인을 넘어서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벽 앞에 그는 근원적 허무를 계속 확인할 수밖에 없다.

제4회 후광문학상 수상집인 소설집<새를 위하여>에는 그의 작품 세계에 내재한 인간의 이 자유 의지와 절망의 확인이 응축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시대 실패한 노예 반란을 내용으로 다룬 단편<萬積>에 대해서 '대하적 역사의 斷片을 短篇의 형식 속에 포착하는 실험과 함께 자기시대의 고통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를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김병익'의 평이 있었고, '김윤식'은 '핏줄에 대한 거부와 끝내 그 핏줄의 확인으로 치닫는 숙명의 형상화'라고 <한 마리 작은 나의 꿩>을 평한 바 있다.

'충족에 수반되는 환멸과 비애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형상화'라고 '천이두'는 한 겨울 한 마리 독수리를 뒤쫓는 한 청년의 집념과 허무감을 다룬 <敗北의 겨울>을 해석했고, 95년 우리시대 문제소설로 선정된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에 대해 '홍성암'은 '유년기의 금기에 대한 신화적 접근의 감동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절제의 미학으로 형상화'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퇴화되어 버린 날개에 대한 상징적 절망이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고 '이명재'는 <새를 위하여>를 평가하고 있는데, 이들의 비평을 통해 공통적으로 들어 나듯 그의 소설세계는 일관되게 인간의 근원적인 꿈과 절망, 그 허무에 대한 추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8년에 출간된 소설집<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에 실려 있는 <사라지는 것들, 남는 것들>은 '존재론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아픈 역사에 세워주는 상징적인 기념비'라는 '정순진,의 평이 있었고, <마루 위를 뛰어가다>는 '부정적 캐릭터의 성공적 창조를 통해 한 시대의 풍경화를 보이고 있다는 '신규호'의 해설이 있었다.

'삶과 숙명의 무게를 유년과 교직시키며, 인간 실존의 본질을 추구해간, 깊이 있는 작품으로 '장백일'은 <덫, 혹은 옻나무 피리>를 해석했고, '존재와 죽음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삶의 원초적 허무를 형상화해 내었다고 '이남호'는 <신기루를 찾아서>를 분석하고 있다.

이 소설집으로 24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겨울 출간되어 금년 봄 3쇄에 들어간 최근 장편소설<내 사랑, 風葬>은 온몸에 시너 통을 들이붓고, 불을 붙여야 했던 황폐했던 한 시기를 배경으로, 순결한 젊음 들이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사랑의 실체를 찾는 과정을 실험적 기법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죽음을 통한 삶의 치열성을 환상적이고 실험적인, 신화와의 교류를 통해 아름답게 형상화했다는 서평(대한매일)등이 있었고, 80년대를 지나온 젊은이들의 고뇌가 서정적 감수성 속에 천착되어, 한국 장편소설의 격을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아 <내 사랑 풍장>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99년 최우수예술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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