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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김선우의 시 '아나고의 하품'

by 고흥을 찾아서 2013. 3. 13.

 

아나고의 하품


김선우 



  언젠가 횟집에서 아나고 한 마리 회 뜨는 걸 보았을 땐 머리 쳐내고 껍질 벗겨내면 그제사 퍼득퍼득, 몸통 전체로 희디흰 슬픔의 가시 같은 게 되어 자꾸 머리를 찔러대는 걸 보았을 땐 


  머리는 점잖게 거의는 고독하게 한번 크게 입 벌려 생애 마지막 하품을 하고는 영영 입 다물어버리는 것이었는데 한 생명이 몹시도 고적해졌구나, 나는 조금 슬펐더랬다 

  소록도를 지척에 둔 녹동 앞바다, 경매로 낙찰된 한 바구니의 아나고가 껍질 벗겨져 마흔 개의 머리 차례차례 입 따악 벌려 생애 마지막 호흡 천천히 행하는 걸 보았을 땐 웬일인지 슬픔이니 고독이니 끼여들 자리도 이미 없고 


  이상스레 차분한 적멸, 같은 것이 내 마음에 공空으로만 번지는 것이었다

  원래 그들이 그러하였듯 돌아가야 할 무슨 연유라도 뜬금없이 생겼나보구나 이렇게만 생각이 들고 


 

  아낙의 무심한 칼질과 아나고의 길고 조용한 하품을 그저 지켜 보는 것이었는데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냄새가 좀 흘렀지만 모든 과정은 이를 데 없이 평화로웠다

  눈을 들면 지척에 흰 사슴과 문둥이의 섬이 보이고 내 머리에선 감청빛 뿔이 조금씩 돋아나 꼭 그만큼 손마디가 문드러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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