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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김광선의 시, '항구(港口) 에서'

by 고흥을 찾아서 2013. 3. 8.

 

항구(港口)에서

                                                                                 김광선

 

낡은 배 한 척, 붉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네. 바다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바람결에 날리고 한때는 갈갈거리며 여름바다 푸른 물결 헤쳐 나갔을, 저 낡아버린 배 한 척 정박해 있네. 지금은 낡아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네 얼굴!

 

내 부력(浮力)이 네게 무거운 짐이었을 때, 지구의 등처럼 휘어져 힘겨웠던 때 있었네. 그래도 바람과 파도 싱그럽던 여름, 푸른 바다 속살 가르며 한가로이 떠갔던 때 내게 있었네. 끝없이 바다에 떠있어야만 했던 힘겨웠던 부력!

 

바다가 키워 낸 그 검은 빛 반짝이던 해태 포자, 그것이 우리들을 먹여 살리던 그런 때 있었네. 지금은 낡아, 추억 속에 비린내 만 솔솔 풍기며 노을진 항구에서 붉은 바다를 혼자서 바라보는, 슬픈 역사 속에 낡아 버린 저 외로운 배 한 척!

 

낯선 항구를 떠다니며 수없이 뿌린 허튼 사랑, 이제 노을진 항구에 닻을 내리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들과 손에 잡히지 않던 욕망들! 하나둘 죄다 버리고 아, 낡아버린 한 척의 배, 쓸쓸한 항구에서 붉은 바다만 바라보고 있네.

 

 

김광선 : 1961 전남 목포출생,

            (3 ~17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고흥 나로도 거주)

            현재 대전에서 고바우곱창집 운영 중임

           

            2003년 제3회 창비신인상 공모에 당선하여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회원

            시집 겨울삽화(갈무리 2000),  

                   붉은 도마(실천문학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