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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정호승의 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중에서"나는 네가 되고 싶다"

by 고흥을 찾아서 2012. 11. 20.

 

 

나는 네가 되고 싶다

- 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중에서

                                                                                  - 정호승

 

소록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소록도를 그냥 단순히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록도의 겉만 살펴본 넋두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고홍반도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는 사실 겉으로만 보아도 아름다운 섬임에도 틀림이 없다.

 

오솔길을 따라 섬 전체를 한바퀴 휘돌아 보면, 소나무 숲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바다는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맑고 시원하게
해준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끊임없이 반짝이는 햇살 너머로 무슨 산
그림자처럼 안개에 싸여 아련하게 떠오르는 남해의 작은 섬들은 아름답다 못해 하느님이 그린 그림 같다.

 

그러나 소록도가 아름다운 것은 그런 자연경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소록도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소록도 국립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사들, 나환자들을 위해 젊음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한껏 꽃피우고 있는 바로 그 간호사들 때문이다.

 

두 손 모두 손가락이 없는 몽당손에다 고무줄을 친친 잠아 겨우 숟가락을 끼워 밥을 먹는 남자, 손가락은 남아 있으되 갈고리손이 된 중년 여인, 이미 코와 눈썹이 문드러진 할머니, 끝내는 눈마저 멀어 버린 할아버지들을 부모 형제처럼 돌보고 있는 간호사들이 없다면 소록도는 결코 아름다운 섬이 아니다.

 

소록도의 간호사들은 '한바람회'를 만들어 스스로 환자들의 머리를 감겨 주고, 이발도 해주고, 손톱과 발톱도 깎아준다. 결린 근육도
마시지 해 주고, 몸의 군살도 긁어내주고, 각 병사지대를 나누어 맡아 빨래와 부엌 살림도 돌본다.

 

나병이 분명히 치료될 수 있는 병인 줄 몰랐던 시절의 간호사들은
환자와 직접적인 피부 접촉을 피하기 위해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입에는 마스크를 하고, 머리엔 모자까지 쓰고 신발을 신은 채 환자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의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느 환자와 마찬가지로 아무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환자를 돌본다.

 

소록도병원에 의사들이 지원해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자원하는 간호사들의 이력서는 항상 넘친다. 


 "다른 병원에 가면 봉급도 많고, 소록도에 있었다고 하면 혼인발도 안 선다"는데 그들이 굳이 지원해서 소록도병원에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그들의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간호사들이 있는 한 소록도는 진정 아름다운 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이런 아름다운 섬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소록도병원 피부과 병동 간호사실 문 앞에 이런 글이 적힌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너의 등불이 되어
  너의 별이 되어
  달이 되어
  너의 마스코트처럼
  네가 마주보는 거울처럼
  나는 네가 되고 싶다
  우린 서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데, 2009년 소록대교가 생긴 후 차량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주로 국립소록도병원 앞 중앙공원을 찾는다. 갖가지 희귀한 정원수와 수석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을 관리하던 일본인들이 한센인들을 강제 동원해 만든 것이다.

 

유서 깊은 건물과 장소에는 어김없이 추모비와 봉사자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감금시설이나 사망한 한센인을 해부하던 방 등에는 그들의 울분과 설움이 담긴 시구절들이 눈에 띈다. 한 곳 한 곳이 문화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