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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서동애의 어머니의 훈장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8.

어머니의 훈장


                                                          서동애


 오랜만에 따끈한 방바닥에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본다. 거북이 등처럼 까칠하던 어머니의 손이 한결 보드랍다. 우리모녀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가 마음을 나눈다. 그러나 불현듯 어머니를 떠올리면 난 가슴이 시리다. 어부(漁夫)였던 남편 몫까지 대신하여, 층층시하에 열 손가락 짓무르는 시집살이에도 어머니는 우리 칠남매를 키우셨다.


 초봄엔 언덕배기에 보리밭에 인분 통을 머리에 이어 날랐고, 여름엔 고구마 밭에서 진종일 홀로 김을 매셨다.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지고 몸에 쉰 냄새가 진동해도 늘 일만 하는 엄마가 때로는 밉기도 했다.      


 섬에는 가뭄이 유독자주 들어 물이 귀했다. 부지런한 엄마는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집안에 있는 빈 그릇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엄마 허락 없이는 아무 물이나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방학이나 하교 후에는 우물에서 늘 물 긷기를 하였다. 어쩌면 곡식보다 물을 더 아끼는 엄마에게 우리 형제들은 물 때문에 혼났던 추억도 많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물 사정이 나아졌지만 엄마의 물 절약 정신은 여전하다. 요즘도 친정에 가면 어릴 때의 습관으로 어머니께 여쭈워 보고 물을 쓴다.

  누구도 알지 못할 가사를 읊조리던 엄마. 군밤타령은 우리 형제가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던 엄마의 유일한 노래였다. 그것은 엄마가 유일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삶의 소리였다. 그걸 안 것은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서였다. 나이가 사람 만든다는 옛 말 그른 것 하나 없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종가 종부로 시집와 팔순이 넘도록 태어난 섬을 떠나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고개 넘어 같은 동네로 시집와 지금껏 그 집에서 산지 70년이다.

 이리저리 흩어져 자고 있는 자식들 다리를 쓰다듬으며 “어서 커라 언제 클래...”중얼거리며 천장이 흔들리도록 내쉬시던 한숨소리는, 일 년이면 한 달도 채 집에 못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리움을 안고 사셨다. 그러는 아버지는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환갑을 막 넘기고, 치매 앓으시는 할머니를 어머니께 떠넘기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년 동안 어머니는 자신을 다 버리고, 하루에도 수없이 정신 줄을 놓아 버린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이 볼 때는 하찮게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를 어느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았다. 친 모녀처럼 사시던 고부간의 사랑을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배웠다.

 옛날, 이 땅의 어머니들은 시집오면서부터 자신은 버려야 했다. 가족들을 위해 물레 자아서 실을 뽑듯 한없는 사랑을 뽑아내야 했다. 그 실로 동지섣달 긴긴 밤을 새우며 눈물 베를 짜는 것이 어머니들의 삶이었다.

 이른 새벽 별빛 내린 맑은 우물물을 길어 백옥 같은 사기대접에 떠서 장독대에 올려놓고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께 빌었고, 가족 중에 누군가 병이 나도 정화수 떠놓고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가 정화수 속 새벽달 그림자와 울컥울컥 도리질하는 먼 기억 속에서 달려온다. 이런 어머니도 자식 일에는 성난 사자와 같았다. 오빠의 사고 소식을 듣고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빌며 애지중지한 정화수 그릇이 엄마 손에서 박살이 났다. 자식하나 지켜 주지 못한 조상 필요 없다면서 울부짖은 소리는 처절했다. 엄마의 무섭고 성난 얼굴을 본 적 없는 우리는 엄마마저 잃을까봐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다. 천근같은 자식 둘을 박꽃 같은 여린 가슴에 묻고 긴 세월 동안 남은 자식 바라보며 속울음을 삼키면서, 흘린 눈물은 큰 강을 이루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의 눈물은 끝이 없다. 늙으면 눈물도 마른다는데 우리 엄마….


 이렇게 나의 어머니는 팔십 평생 누구와 입씨름 한번 하지 않고 늘 변함없는 바다같이 고향을 지키며 오늘도 후박나무 아래서 지나는 이웃에게 시원한 물을 한 사발 퍼 주는 인정으로 살아가신다. 잘 구겨지는 무명 같은 삶을 살며 하루도 편할 날 없이 마음 졸이신 나의 어머니 얼굴이며 손발에는 모두 밭이랑 같은 주름살은 가족들을 지켜온 훈장이다. 어느덧 그 곱던 얼굴에는 검버섯이 늘어가고 머리에는 서설(瑞雪)이 내렸다.


 이 땅에서 눈물 베를 짜시며 이 나라를 일궈 오신 모든 어머니께 ‘어머니의 훈장’을 드리자. 그리고 이젠 편안히 쉬도록 그 자리를 우리가 맡자. 나는 가만히 외어 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서동애 (徐東愛)

 호 :水月

 전남 고흥출생

 국어국문학사

숙명여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수료

 월간순수문학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 협회원

 동작문인협회원

 푸른아동청소년문학회원

 해송문인회회원

 예띠시낭송회원

 고은 최치원 문학상 수필본상 수상   

 저서 :오동꽃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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