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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송은일의 딱국질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8.

송은일은 따뜻한 시선으로 여성 문제의 다양한 소재들을 활달하고 리듬감 넘치며 단단한 문체 속에 녹여 내 인간의 화해와 공존의 방식을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또한 독특한 서사를 밀도 높게 전개해 가며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풀어냄으로써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첫 창작집인 딱국질에 실린 10편의 작품들은 삶의 다층을 들추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삶의 이면을 엿보게 하거나 인간 내면의 심리적 중층을 통찰함으로써 의식 이면의 정신세계를 성찰케 하는 소설의 묘미와 진수가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송은일은 자극적이거나 심각한 이야깃거리가 아닌 소소한 삶의 구석과 인간의 내밀한 의식을 작가 자신이 세상과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뜨거우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묘파해 일상의 표층과 정신의 심층이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펼쳐지는 인간 세계의 본질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미더운 솜씨는 말의 맛깔을 잘 살린 언어적 미감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인간 정신이 분열증적 징후만 보여야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유행과도 같은 '문학적 오해'에 일침을 가한다. 송은일은 이 책을 통해 삶의 구석과 벼랑에 내몰린 이들이라도 세상을 향한 의식이 편집적인 욕망과 무의식에 지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간 정신의 심연과 중층을 추적하여 기술함으로써 심리 소설의 긍정적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줄거리

수록 작품 : 37도 2부 / 꽃집 아줌마 강선덕의 특별한 하루 / 꿈꾸는 실낙원 /

                너무 아름다운 예외 / 딸꾹질 / 랩소디 인 블루 / 써니를 위하여 /

                아내의 진홍빛 슬리퍼 / 천적 퇴치법 / 폐원에 돋는 별

37도 2부
서른일곱 살 이혼녀인 조현은 맞선으로 만나 헤어진 남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산부인과로 가지만 도망치듯 나오고 만다. 조현이 운영하는 논술학원으로 전남편이 평소처럼 찾아오지만 그녀는 몇 달 전 헤어졌다고 생각했던 유부남 김원재로부터 전화 연락이 오자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며, 이혼 후 6년간 이어왔던 전남편과의 만남에 마지막이 왔음을 문득 깨닫는다. 한편 두 달 전 조현은 단짝 동주와 ?스모킹 룬?이라는 카페에 들렀다가 동주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서 ?37도 2부의 체온을 가진 새 숙주를 찾아야 할 때?라는 말을 듣고 고약한 기분을 느낀다. 조현은 전화를 받지 않자 집으로 찾아온 김원재를 맞아들이고 습관처럼 관계를 가지려 하는 그를 거세게 밀어내며 임신 사실을 말해 버린다. 충격을 받은 김원재는 집을 나가고 이틀 밤을 못 자고 헤맨 그녀는 병원에 실려 간다. 유산이 되고 잠에서 깬 조현은 김원재로부터 온 수십 통의 메시지를 지운 뒤 병원을 나선다.

꽃집 아줌마 강선덕의 특별한 하루
동화 화원은 자폐아였던 서른한 살의 동화와 그의 모친이 꾸리는 꽃집이다. 일찍 출근한 선덕은 동화 모친으로부터 가게를 잘 돌봐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사람을 향해 웃는 일이 없고, 주위 사람의 말에 반응도 없는 동화지만 오늘은 유독 수다스럽다. 동화에게 마음을 열고 자주 말을 걸었던 선덕은 그런 동화의 태도에 마음이 흡족하다. 첫 손님을 맞은 선덕에게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 직장 부하이자 애인이었던 이정아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이정아는 어제 남편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름을 선덕의 아이들과 같은 돌림자로 짓겠다고 한다. 선덕은 상관없다는 듯 마음대로 하고 잘 살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퇴근한 선덕은 이정아의 오빠로부터 아이를 함께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협박조의 전화를 받는다. 선덕은 아이 둘을 여행 보내고 아무도 없는 텅빈 집을 나와 술병을 손에 쥔 채 술에 취해 화원으로 향한다.

너무, 아름다운 예외
김태하는 본사로 입사한 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박세진을 지켜본다. 그리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 점심 약속을 제안한다. 박세진은 줄곧 지켜봤던 김태하에게 선험적이다 싶은 친숙함을 느끼고 설레이는 기분으로 선뜻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리고 고2때 윤간당한 기억과 그러한 과거를 알고 자신을 떠났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김태하는 박세진과 함께 10년 전 박세진을 윤간한 뒤 휴학하고 머물렀던 안성의 청룡사로 향한다. 김태하는 친구의 이야기라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박세진의 사연을 모른 척하며, 박세진은 그러한 사연을 듣고도 의연한 김태하에게 점점 빠져든다. 안성에서 돌아온 후 김태하는 박세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박세진은 우연히 동생 미진의 작업실을 정리하다 10년 전 미진의 일기에서 김태하의 이름을 발견한다.

딸꾹질
인자는 네 번째 유산을 하고 친정에 내려와 지낸다. 갈치를 다듬으며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전남편에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던 딸꾹질에 다시 붙들린다. 인자의 딸꾹질은 사나흘씩 가기도 하고 이번엔 아이를 유산하고 난 뒤에야 멈추었다. 또 시작된 딸꾹질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인자는 자꾸 집 전화기의 코드가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히 여긴다. 상촌댁은 그런 인자의 빈번한 유산이 몹시 심란스러운 가운데 두어 달 전부터 전화를 걸어와 엄마의 행방을 묻는 손녀 지혜의 전화를 인자가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어느 날 상모정으로 나간 상촌댁은 전화 코드를 빼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다 골목 어귀에서 지혜를 맞닥뜨린다. 그 사이 인자는 지혜의 전화를 받고 슬리퍼를 신은 채 터미널로 내달린다. 광주로 가는 버스가 몇 대씩 지나갔지만 올라타지 못하고 대합실에 앉아만 있던 인자는 고교 동창 정희가 사 신겨 준 새 신을 내려다보다 어느새 자신의 딸꾹질이 멈추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송은일
1964년 전남 고흥 출생.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꿈꾸는 실낙원」 당선.
200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아스피린 두 알』 당선.
장편소설 『불꽃섬』, 『소울 메이트』, 『도둑의 누이』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과 창작집 『딸꾹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