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반도를 다녀오면서
성 종 화
어느해 정초의 이야기다. 눈발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송광사 앞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지리산 방면으로 갈려고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려 하는데 차 윈 도어에 부딪쳐 오는 눈발이 점점 굵은 솜 덩어리로 변하면서 시야를 가린다. 우리가 탄 승용차가 마악 고개를 넘어서 커브 길을 도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야!」「아니?!」우리들의 시야에 갑자기 들어온 기이한 상황을 보면서 차안에 있던 일행 네 사람이 동시에 놀라 차를 도로 가편으로 정차를 시켰다.
길 한가운데에 중간 부위가 부러져 처진 전선주 끝 부분에 쥐며느리 벌레모양의 다마스 차 한 대가 앞 유리창이 꿰어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다. 매달린 채로 차바퀴는 돌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일어난 사고 같았다. 앞서 가던 짚 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길가의 시멘트 전선주를 들이받은 모양이다. 그 충격으로 전선주의 중간부위가 부러지면서 길 가운데로 꺾기는 순간 뒤따르던 다마스 차량이 미처 피하지를 못하고 그 전선주의 끝부분에 앞 유리창이 부딪치면서 꿰였고, 전선주의 철근이 순간 반동으로 위로 들려져서 다마스 차량을 공중으로 달아 올려버린 것 같았다.
다행히 많이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전선주를 들이받은 짚 차에서 가까스로 문을 열고 사람이 나오고, 매달려있는 다마스 차에서는 사람이 벌써 내려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길가에 서 있었다.
눈발은 점점 커져서 마치 작은 솜뭉치 같아졌다, 어느 사이에 도로에는 제법 많은 양의 눈이 쌓이고 있었다. 지금 이런 날씨에 지리산 방향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 휴가 길이여서 굳이 지리산으로 꼭 가야만 할 사정도 아니었다. 차를 돌려서 고흥반도를 보고 남쪽으로 가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고흥반도에는 파란 바다와 활짝 갠 하늘과 따뜻한 남국이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방향을 바꾸어 차를 달렸다.
고흥반도에는 몇 해 전 내가 통영에서 근무를 할 때, 어느 주말 혼자서 다녀온 일이 있다. 굴 가공 공장을 하고 있다는 군대생활을 같이한 친구로부터 한번 다녀가라는 말을 들어두었다가 어느 주말 문득 생각이 나서 나섰던 것이다.
고흥반도는 서양화가 천경자의 고향이다. 그녀가 쓴 지금은 책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수필집에서 봄의 고흥반도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없는 남국으로 생각되었다. 그 친구가 일러 준대로 고흥반도 남단 녹동 어딘가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사 말고 그 친구가 굴 가공제품을 싣고 서울방면으로 출장을 가고 없어서 허행을 하게 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전화라도 해 놓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되었지만, 어쩔 수도 없는 일. 평소에 준비성 없이 한번씩 엉뚱한 짓을 하는 나를 탓한들 어쩌겠는가. 나는 아직 채 봄이 오지 아니한 선창 가 어느 비린내 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서양화가의 고운 물감과 섬세한 붓끝으로 그린 아름다운 그녀의 고향의 봄을 나는 그날 느끼지를 못하고 허행을 한 셈이다.
우리는 남쪽으로 트인 길을 따라서 이정표를 보아가면서 차를 몰았다. 일행 네 사람은 이런 여행길에는 각자의 분담된 소임이 있다. 한 친구는 운전을,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은 친구는 여행 중 잡다한 심부름을, 그리고 뒷좌석의 상석은 내가 앉는다. 내 임무는 여행 기획담당이다. 내 옆 안 뒷좌석의 친구는 식사 담당자다. 다른 세 사람의 임무 보다 내가 여행 기획을 하면서 잘못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경비 보충부담을 해야 한다. 대우와 부담이 동시에 지워진 우리들대로의 공평한 여행분담 불문율 약정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었다. 남쪽으로 향하면 거기에는 파란 바다와 활짝 갠 하늘과 따뜻한 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의 천지 속으로 차를 계속하여 몰아야 했다. 우리는 달리는 차 앞 유리창을 덮쳐오는 눈 덩이를 어떻게 지체 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계속하여 운행을 할 사정이 못되었다.
할 수없이 고흥 읍 입구까지 가까스로 와 어느 찻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찻집 안은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난로에 통나무 토막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다. 차를 시켜 먹으면서, 눈 내리는 시골 찻집에서의 차 맛이 찻집 아가씨와 지나가는 농담이 섞여서 한 맛이 더 있었다. 마침 우리뿐인 찻집에서 한 식 경 지나고 조수석의 친구가 밖에 나가더니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놀라 모두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 그 사이에 눈이 얼마나 왔는지 우리가 타고 온 차량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글쎄 국화꽃으로 장식을 한 장의차 모양을 하고 있었다. 10센티 이상은 족히 쌓인 것 같았다.
그 날 파란 바다고 활짝 갠 하늘이고 봄소식이고 다 어디로 가고 시골 여인숙 방에서 취사담당이 해 주는 식사에 소주를 겻 드려서 좋은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날씨 탓은 어디로 가고 여행 기획을 잘 못 세웠다는 중의(衆意)에 의하여 여관비 부담이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나는 두 번이나 고흥반도 여행에서 별 재미를 못 보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고흥반도의 봄은 여류 서양화가가 고운 물감과 섬세한 붓끝으로 그린 그림처럼 아름다운 남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꼭 한 번 더 고흥반도로 봄맞이를 가 볼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성종화 수필가·시인
- 일본 오사카(大坂) 출생(1938). 진주에서 성장
- 진주고 졸업(1957)
- 개천예술제 한글시 백일장 차하(1954) 및 장원(1955). 전국학도호국단 문예작품
현상모집 수필 1등 당선(1955).《학원》《학생계》등에 詩 다수 입선
- '한대림', '시부락' 동인(1955~1958). 설창수 시인 주관 '영문(嶺文)' 동인(1956~)
- 《시와 수필》수필 신인상(2007)
- 남강문우회 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청다문학, 신서정문학 회원
- 시집『고라니 맑은 눈은』
- 시문집『잃어버린 나』
- 수필집『늦깎이가 주운 이삭들』
- 검찰청 근무(1967~1983) 후 법무사 개업(1984년부터~)
- 대광법무사 합동법인 대표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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