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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정조의 '모본단 옷감 한 벌'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7.

모본단 옷감 한 벌

 정 조

 

세상을 뜨려고 그랬던지 고향 할아버지가 자꾸만 손주 녀석들과 같이 살고 싶다고 채근하는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내왔다.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압록강변의 함경도 삼수군에서 일하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해 바다를 접한 전남 고흥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양단 간이 이만저만 멀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 식구들에게 생이별을 가져다주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맏이면서 초등학교 3학년인 내 밑에도 동생들이 줄줄이 둘이나 딸려 있어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헤어져 아이들을 거두어야 했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두 조각 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분부를 거역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해 겨울 우리는 아버지만 이북에 남겨놓고 환고향을 했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할아버진 마당을 쓸다말고 인사불성이 되더니 그만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이것저것 뒷수습을 마치고 나서 다시 겨울이 되자 우리 모자들은 다시 북쪽의 아버지 곁으로 되돌아갔다.어머니가 만 일년간의 공방살이를 끝내고 남편 곁으로 바투 다가서보니 벌써 거기엔 사단事端이 붙어 있었다. 술도 어느새 많이 늘어 무절제 했을 뿐만 아니라 전에 없이 외박도 슬쩍슬쩍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살던 마을은 산간 오지이긴 했으나 일제가 이 곳에 수력발전 등 기반 시설을 하고 잇는 까닭에 토목 건축 공사 등이 간단없이 벌어져 많은 기업체의 회사원들과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밤낮없이 언제나 왁시글덕시글 들끓었으므로 이 마을이 아주 경기 좋고 활기찬 소도읍으로 변모해 가면서 술집 밥집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갔다.나이 설흔 넷이던 남편의 홀로살이 일 년간 그 정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어떻게 해서 숨겨놓은 정부와의 사이를 차단할 것인가?


흔히 보아온 대로 북녀北女들의 오기처럼 당당히 남편과 겨루어 끝까지 승패를 내곤 깨질 것인가 아니면 치욕적인 사내의 외도를 모른체 하며 긴긴 세월을 참고 견딜 것인가.

 

한 달쯤 지나고 나서 어머니는 어렵사리 왜식 술집인 '송도관'에서 '하루에春江'라는 일본 이름을 지닌 남편의 여자를 찾아냈다. 그리곤 어머니는 어느날 하루에를 불러내어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밥집에 데리고 갔다. 두 여인을 조용하고 구석진 방으로 안내하던 쥔 여자가 "아이고 두 분 다 너무 곱습메에"하고 탄복하자 어머니는 "우린 형제 간이거든요" 하고 되받으면서 정부情夫의 아내에 이끌리어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하루에 심중을 다독거렸다.

 

점심이 끝나자 어머니는 지니고 있던 보자기를 풀면서 술집 여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서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 년 동안 우리 쥔 양반의 고생이 막심했을 거예요.또 그간에 술 한잔이라도 하고나면 가족이 곁에 없으니 어디에다 정을 붙이고 지냈겠어요. 그러기에 '하루에' 당신과 남편이 그간 알고 지낸 것에 대해 나로선 불만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나를 대신해 그이를 돌봐 준 것이 고맙기만 해요. 우리 앞으로 이런 만남을 인연 삼아 더 다정하게 형제간처럼 지냅시다. 너나 없이 객지에서 모두 외로운 사람들 아녜요?"

 

보자기에는 그 시절만 해도 손에 넣기 어려운 연분홍색 모본단 치마 조고리 한 감이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빠알갈게 보조개를 홍당무로 물들였다가 나중엔 눈 언저리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하루에의 손에 그 옷감을 쥐어주면서 한마디 더 당부했다. 이 일 남편에게 비밀로 하자고.

 

일주일쯤 뒤, 남편의 양복  저고리를 다리미질 하다가 어머니는 부스럭거리는 종이 쪽지 하나를 찾아냈다. 하루에가 그곳을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건네준 편지였다.
"정 선생님, 며칠 전 부인을 만났습니다.무척 고맙게 대해 주더군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더구나 놀란 것은 부인이 아주 미인 이시던데요. 제가 깨끗이 물러나야지요. 그간 감사했어요. 혜산진으로 가렵니다.안녕히 계세요." 밥집 안쥔이 동네에 소문을 왜자하게 퍼뜨리고 다녔다.


"친정 동생이라기에 그런 줄만 알았지요. 너무나 다정해 보였으니께. 그걸 누가 자기서방 뺏으려 든 여자라고 생각이나 했겠수?"

 

정 조

전남 고흥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1959).

저서로는 희곡집 <마지막 기수>(1965), <영웅행진곡>(2000),

시집 <말 여덟 마리를 모는 마부의 꿈>(1988),

수필집 <어느 애처가의 환상여행>(1995)등이 있다.

전남 문학상 수상
제4회 순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