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명상
김은숙
- 가장 행복한 사람은 조용한 가슴을 안고 일상의 여느 햇빛을 즐겁게 여기며 나머지는 하느님에게 맡긴 사람이다. -
-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가장 적게 고통을 입고 있는 사람이며 , 가장 비참한 사람이란 가장 적게 쾌락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위 글들은 J.V 체니의 저서 -가장 행복한 사람- 과, 루쏘의 -에밀-에서 따온 행복에 관한 구절들이다.
동서양의 구분 없이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가 다름이 아니다.
나는 행복하게 살아 온 사람이었을까?
내겐 볼펜과 종이만 손에 잡히면 ‘행복’ 이라고 낙서를 하는 버릇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보니 지난날의 수첩이며 일기장들이 여기저기서 빛바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페이지마다 부질없는 낙서를 가득 담고 있는 수첩들. 수 없이 새겨 놓은 ‘행복’이라는 낱말. ‘행복’ ‘행복’ 혹은 ‘행복 합니다.’ 어떤 곳엔 이 단어로 한 면이 시커멓게 채워진 곳도 있다.
필시 한두 시간씩 계속되는 어느 강연회장이나, 혹은 세미나 시간에 끄적거려진 것들이다.
계속되는 그 단어가 지루했던지, 아니면 미안하기라도 했던지 더러는 ‘행복합니까?’ ‘ 행복할까?’로 변화를 시도한 것도 있다. 내가 행복에 취했다거나, 행복에 목말라 하면서 적은 것들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 필체로 가장 예쁘고 편하게 써 지는 것이 이 단어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말과 몹시도 친숙했었다. 나의 행복이나 불행 따위에 관계없이 그랬다.
오래 전 초등(국민)학교 때의 학예회를 떠 올릴 수 있다. ‘행복’이라는 제목의 연극에서 주인공이 되었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이 곧 ‘행복’이었다. 하얀 보자기로 너울을 쓰고 빠빳한 종이에 은박지를 오려 붙여서 만든 관을 쓰고 행복 행세를 했었다.
두 번째 막이 오르고, 행복을 선물로 받을 사람을 찾아 다니던 나는 어느 초라한 움막집에 들어가 한 끼니의 밥을 구걸한다. 가난하지만 착한 그 움막의 주인은 자기가 먹으려던 밥을 들고 나온다. 마당에 주저앉아 밥상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 먹는 시늉을 하는 가짜 거지인 나. 연극의 사실성을 높인다며 빈 밥그릇 하나와 근처에 있는 선생님 사택에서 얻어 온 깍두기 한 보시기가 상에 얹혀져 있었다.
그것을 실제로 집어 먹어야 한다고 몇 차례나 당부한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깍두기를 집어 먹었을 때 와아 하고 터지던 학부모들의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 세 번째 막이 오르고 다시 행복 차림으로 돌아 온 나는 한 그릇 뿐인 자기의 먹을 것을 배고픈 거지에게 내어준 움막집의 주인에게 행복을 선물로 안겨 주고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단순하고 빤한 줄거리였다. 그러나 그 연극 때문에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젖어 살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야! 저기 행복이 지나간다.” 하며 좋아 했고 어른들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 우리 행복이 왔네.” 하고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 이름도 얼마 안 있어 사람들에게 희미하게 잊혀져 갔다. 나는 그때부터 행복이라는 끈을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으로 삼기라도 한 것처럼 그 이름을 이곳저곳에 써 놓는 버릇이 생겼다.
내게 있어 행복이란 ‘복되고 좋은 운수’ 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다다르기 위해 명상의 작은 배를 띄우는 이유 일지도 모른다. 수 없이 많은 ‘행복’을 그려내며 혼자 떠나곤 하던 파랑새의 나라.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원망하면서 울며 돌아오던.
그러나 다시 옷깃 여미고 먼 나라의 불빛을 그리워하곤 하던. 앙드레 지드는 말한다. “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노상에서 만난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 옛날 학예회에서 거지차림의 행복으로부터 행복을 선물로 받은 가난한 움막집의 주인만큼 순수하지도 착하지도 못하게 살아 온 나. 무심히 내가 스치고 지나쳐버린 행복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행복’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쓸 수 있게 되어서 좋다. ‘행복한 세상‘이라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낙서로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그 이름을 내 새워 좋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그 아니 좋은가.
앞으로, 말로 혹은 글씨로 그 말을 수 없이 뇌까리며 행복이라는 주술에 빠져 볼 생각이다.
김은숙 수필집 '그 여자의 이미지' '길 위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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