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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_ 시인 허만하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6.

 

 

 

"언어를 지도삼아 낯선 풍경을 순례"


1. 길의 겹침

 

다도해는 아름다웠다. 섬 사이로 모습의 일부를 드러내는 바다는 잔잔하였다. 고함을 지르면 목소리가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떠있는 섬은 바다에 그늘을 담그고 조용히 자기 그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에 붙어 있는 조개같이 섬 자락에 집들이 발을 붙이고 조그마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만나는 일이 공연히 반가운 길이었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섬 내나로도(內羅老島) 끝은 벼랑이었다. 이 벼랑 위에 귀양살이 왔던 이건명이 사사의 형을 받아(경종 2년) 독배를 들었던 자리가 있었다. 이 나지막한 벼랑 위에서 내려다 본 넓은 갯벌은 신선한 초록색이었다. 마침 썰물로 물이 빠지고 파래로 덮여 있는 넓은 해변이 거리낌 없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언덕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싱싱한 초록색 파래 밭 끝에 자리한 조그마한 야산(물이 들면 섬이 될지 모른다)의 붉은 흙빛 위로 우리가 건너 왔던 제1 나로교가 멀리 2월의 하늘에 나지막하게 떠 있는 경관이었다. 선연한 홍색을 머금고 있던 그 흙빛을 나는 한동안 응시했다.

 

먼 옛날 시의 길에서 만난 적이 있는 남도의 그 빛깔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사람들은 다시 길을 만든다. 나는 당연한 것처럼 제2 나로교를 건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윤동주). 별을 바라보며 한 젊은이는 운명처럼 시의 길 위에 섰던 것이다. 해방 후 길거리 고물가게에서 샀던 학생용 현미경을 사들고 집으로 뛰었던 골목길. 운동장 가장자리에 솔밭이 있고 그 안에 고인돌이 있던 교정에서 젊은 물리선생 손가락 끝을 따라 여름하늘 별자리를 가슴에 담고 돌아가던 중2의 밤길. 포충망을 들고 황악산 직지사를 다녀오던 가을의 길.

 

서너 명 친구들과 만든 프린트판 ‘팔공과학’ 창간호를 들고 흥분했던 화학 실험실의 복도. 화약냄새 자욱하던 전선의 참호 안에서 떠오르던 이런 길이 시의 길을 만나는 것을 보았던 것은 6ㆍ25 한국전쟁(고 3때)의 폐허를 휩쓸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 나는 맑은 물 냄새를 찾는 한 마리 은어처럼 정신의 가치를 찾아 헤매면서 목마름처럼 책을 읽었다.

 

두 길의 만남은 교차가 아니라 한 방향을 향하는 겹침으로 나타났다. 이 길 위에서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 구체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보는 또 하나의 현미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과학적 원리와 시는 내 안에서 동행했다. 이질적인 두 가치를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조정하면서 나는 내 정신의 반경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시가 가지는 다양성의 지평이 중요하다는 각성 아래 현대 영미 시와 다른 언어권의 시의 세계에 관심을 베풀면서 우리시의 체질을 비추어 보기도 했다. 나는 세계에 대한 나의 접근을‘복안(複眼)의 인식’이라 생각했다. 풍경이란 형이상학적 사유로 읽어야 할 한 권의 시집이라 생각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나는 벌써 내 미래의 길 위에서 가슴 설레고 있다.

 

2. 꽃이 피는 이유

 

야생의 복수초 군락은 외(外)나로도에 들어서서 길이 S자로 굽이치는 마지막 고갯마루 가까운 산비탈에 숨어 있었다. 우리가 머루 덩굴이 늘어져 있는 숲 속의 쌓인 가랑잎 틈새에서 샛노란 꽃잎을 한껏 펼치고 있는 복수초를 찾아내고 사진에 담을 때 셔터를 누르려는 손처럼 이곳을 안내하던 친절한 노인 목소리도 가늘게 떠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반가움 때문인 것 같았다. 각설탕같이 버적거리는 얼음을 비집고 피어 있던 복수초 꽃잎의 맑은 힘을 우리가 처음 보았던 것은 만 일년 전 제주도의 한라수목원에서였다. 그 꽃을 고흥반도 끝 외진 섬에서 다시 만나 보는 일은 지긋한 감동이었다.

 

“장미가 피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핀다.”라고 그의 시의 한 구절에서 말했던 것은 독일의 종교시인 질레지우스다. 창조에는 이유가 없다. 시는 꽃처럼 피는 창조다. 창조는 이유 또는 목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시는 작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비탈진 숲 속에 피어있던 야생의 복수초 군락은 아름다웠다. 한겨울에 피는 꽃이라 얼음새꽃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복수초.

 

3. 연두빛 목숨의 향기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날(1월4일) 찾아 보았던 물금의 낙동강 유역 풍경은 광활했다. 이 충적평야 언저리 둑길에서 푸른 미나리꽝과 쇄빙기 톱을 본 것은 뜻밖이었다. 논둑에 피워 둔 화톳불로 추위와 싸우며 농부들은 톱으로 두꺼운 얼음장을 자르고 거의 허벅지 중간까지 차 오른 물 속에서 겨울 미나리를 한 줄기씩 챙기며 다발로 엮고 있었다.

 

여물 쓸 듯 듬성듬성 썰린 초록색 미나리 토막을 고인 물에 마구 뿌리면 조각뿐인 몸 토막에서 실 뿌리가 나고 계절을 가려 메밀꽃보다 작은 흰 꽃을 피우며 향긋한 향기를 온 몸으로 만들어낸다고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시를 생각했다. 시는 논리가 아닌 향기다. 언어로 만들어내는 향기다. 미나리는 잘린 몸으로 시시각각 시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죽음을 거부하는 생명의 힘이다. 내가 나로도 갯벌에서 보았던 파래는 뿌리도 줄기도 없는 눈 먼 엽상채의 목숨이었다. 그 싱싱한 초록색은 어떤 향기를 머금고 있었을까. 릴케는 생명과 죽음을 같은 차원에서 수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섬세한 시인이 생명의 지평을 극한까지 확대하기 위한 수사라는 사실을 근년에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위대한 시인이다. 시의 영토에는 한계가 없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이야기지만 추사는 아끼는 그의 글씨와 그림을 한 자 남짓한 길이로 자른 대나무통 안에 말아 넣고 밀초로 굳게 봉한 것을 배에 싣고 멀리 나아가 바다에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펄럭이는 그의 옷소매에서 시를 읽었다.

 

그것은 자기 작품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자기가 창조한 서체에 대한 높은 긍지가 낳은 외로운 행위라고 나는 해석한다. 당대의 몰이해에 직면한 그는 미지의 기슭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감성을 신뢰했던 것이다. 그런 가열한 한때를 추사가 가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외로움은 추사만의 것이 아니라 시의 속성이기도 하다.

 

4. 새로운 현실 만들기

 

섬진강 어귀에서 물길을 따라 구례에 이르는 길은 아직 때묻지 않는 정갈함을 지니고 있다. 철따라 변하는 강물 물빛을 조용히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이 길은 만들어 준다. 나는 지리산 시암재를 거쳐 정령치를 지날 때면 괴나리 괴나리 봇짐을 매고 어른 뒤를 따르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을 그려보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어린 아이 때부터 아버지(명창 송우룡)를 따라 명산대천을 찾아 노래 공부를 하던 어린 송만갑의 모습이다. 송만갑은 구례에서 태어났다. 나는 송만갑이 걸었던 길에 시인의 길을 비추어 본 것이다. 열세 살 무렵 이미 명창이란 명성을 얻었던 그는 집안에 내려오는 소리의 법통을 깨고 혼자서 만들어 낸 새로운 노래를 고집했기 때문에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의 후손인 아버지는 송씨 가문 노래의 전통을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 했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두 길의 갈등은 심했다.

 

새로운 소리를 얻기 위하여 집을 버린 송만갑의 길은 그 개인의 길이 아니라 모든 독창적인 예술가의 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길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추사의 대나무 대롱과는 또 다른 상징이다. 이 두 상징은 서로 다르지만 영광의 고독이란 지하수 물길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지리산 둘레 길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지리산 북동 자락을 가로지르는 운봉길은 언제나 조용한 고원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이 길에서 우리 겨레의 상징과 만나는 또 하나의 상징을 볼 수 있었다. 마른 풀잎을 물고 날개를 젓고 있는 한 마리 산새를 보았을 때 떠오른 먼 나라의 상징이다. 그 상징은 그 자리에서 우리의 상징과 동심원을 이루며 하나로 겹치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한다.“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모든 길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을 찾아내고 그 개성에 깊이를 만들어 주는 것도 시의 힘이다.

 

사람이 없는 겨울 바다 모래사장에 내려섰던 것은 내나로도 덕흥리에서였다. 유난히 돌담이 많던 비탈진 마을을 지나 솔밭을 벗어나자 물결 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솔바람 소리가 묻어 있지 않은 순수한 모래 쓸림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구에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바다를 생각했다.

 

시의 탄생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것이 번득이는 일순의 계시인지 풀잎에 맺히는 이슬 같은 증류작용의 결과인지는 알 길 없으나 시는 말을 재료로 하는 끊임없는 새로운 현실 만들기다. 그 영구운동은 한번도 본적 없는 지평선 너머 세계에 대한 꿈을 동력으로 삼는다고 결의처럼 생각했던 것은 귀로에 우회했던 순천만 갈밭에서 살아 남아 있는 원시 앞에 섰을 때였다.

 

시인 허만하

 

ㅇ 1932년 대구 출생
ㅇ 1957년 경북대 의대 졸업, 시 ‘果實(과실)’ 등으로 월간 ‘문학예술’추천 완료 등단
ㅇ 1962년~현재 ‘현대시’ 동인
ㅇ 1997년 부산 고신대 의대 교수 정년퇴임
ㅇ 시집‘해조’‘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일본어 시집 ‘銅店驛(동점역)’ 산문집 ‘청마풍경’ ‘낙타는 십리 밖 물냄새를 맡는다’

    ‘길과 풍경과 시’ 등
ㅇ 박용래문학상(1999) 한국시인협회상(2000) 등 수상

 

※ 출처 : 한국일보(20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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