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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시 - 고흥(황학주)

by 고흥을 찾아서 2010. 5. 11.

                고흥

                                                                황학주

이 길을 지날 때면
솨르르 눈 밑에 기슭이 번진다
여름이 가는지
귀 안에 물이 든 것 같은 소리,
만져보기도 전 어디에서 꽃그늘은 다 잠겨
해안선이 조용해진다 조용해진 문장들,
이라고 쓰고 나면 언제나 야심했다 싶은 주소지
노란 불빛에 헌 양재기 부딪는 소리가 외따로 쓸려간다

신발을 들고 돌아서면 발 디딜 데 없이 고요한,
더 필요한 것이 모두 젖은 해안선
지나쳐온 고요를 함부로 밟을 수 없는
몸의 습성은 장례지의 바람을 닮았다
유년의 바람을 묻어놓은 바다의 다락방으로
되돌아가는 하루였을까 조가비 하나,
희고 파리한 그런 말일까

황금빛 해변이 가장 길어지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나 쉽게 찾을 수 없는 고흥
내 잠이 들어가 살게 될...... 뭉게뭉게 피는 바다의
황홀하게 저린 말이 찾아오는 동안
솨르르솨르르 긴 물결이 빠지고
갈 곳 없는 마음으로 마음 얻지 못한 모든 노래는
바닷새처럼 가버렸는지
서편 하늘은 가느다래가는 새의 발끝을 하나
조가비처럼 닦고 있다

나, 휘어진 바닷길을 그제야 따라붙는다
배기고 아픈 날들이 가장 잘 업히는
저녁 多島
가장이 없어 고요한 저녁 多島에.

 

시집 『노랑꼬리 연』(서정시학, 201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