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사 벚꽃잎'
황학주
어둠 속에서 여인을 본 날이었다
놀랍게도
이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빗소리를 바짝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낮술에 취해 비스듬히 베어진 남자가
물 묻은 가지를 짚은 채 여인 옆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 동안
산벚꽃 잎이 날아왔다
빗소리 깔린 길
멀리 데려간 단 한 발자국만큼의 인연을
생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다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 사랑이 결정되기라도 하면
숙명이 책상다리를 하고 노랑 병아리 같은 것을 깔고 앉은
그런 전철이 있는 것 같다
서서히 기울며 지워지는
어둠은 그 날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잎도 져 내리었다
한참 후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입구 쪽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젖은 꽃잎이 날아 내리며 입구를 간신히 비추어 주었다
시집 『노랑꼬리 연』(서정시학,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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