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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조경선의 시 "도화헌미술관에서"

by 고흥을 찾아서 2012. 2. 8.

 

 

도화헌 미술관에서

- 조 경 선

 

남쪽 바닷가로 흐르는 느티나무 아래로 날이 저문다

소록도 멀구슬나무 숲속에서 흰 발로 걸어다니는 여자와

손등도 마음도 치자로 물들어가는 여자를 만나는 그 자리

모질지 못해서인지 자주 삶에서 미끄러지는 나는

그 여자가 심은 열무잎에 현미밥을 싸서 먹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한번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서로에게 쌈을 건네주며

오랜 그리움을 삼킨다

기한이 다 되어 떠나가는 것은 그대로 떠나가도록

뭉클했던 여름 캠프가 끝난 자리에서 젖은 옷은

시린 쪽빛으로 물들여 말려놓고 고이 접어 두었다

지금은 촘촘히 가을이 물드는 시간

마음과 몸의 기력이 언제까지일까를 생각하며

올 가을에는 양파껍질을 삶아

실크스카프처럼 빛나보는 게 어때요

 

조경선 시인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제10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수상

현재 고흥고교 교사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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