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헌 미술관에서
- 조 경 선
남쪽 바닷가로 흐르는 느티나무 아래로 날이 저문다
소록도 멀구슬나무 숲속에서 흰 발로 걸어다니는 여자와
손등도 마음도 치자로 물들어가는 여자를 만나는 그 자리
모질지 못해서인지 자주 삶에서 미끄러지는 나는
그 여자가 심은 열무잎에 현미밥을 싸서 먹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한번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서로에게 쌈을 건네주며
오랜 그리움을 삼킨다
기한이 다 되어 떠나가는 것은 그대로 떠나가도록
뭉클했던 여름 캠프가 끝난 자리에서 젖은 옷은
시린 쪽빛으로 물들여 말려놓고 고이 접어 두었다
지금은 촘촘히 가을이 물드는 시간
마음과 몸의 기력이 언제까지일까를 생각하며
올 가을에는 양파껍질을 삶아
실크스카프처럼 빛나보는 게 어때요
조경선 시인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제10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수상
현재 고흥고교 교사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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