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꽃
-박호민
팔영산 백운동 오르는 산길. 삼십년 묵은 살구나무 하나가 다시금 환한 꽃등불을 밝혔다. 그 옆의 어린 나무도 시샘을 하듯 제 꽃을 뽐내고 있었지만, 길잡이로 앞서 가던 늙은 농부 하는 말, 보기에는 다 같은 꽃이지만 달라, 맛이 다르지. 보기에 그럴 듯하다고 그게 어디 다 꽃인가. 이상해. 오래 묵을수록 어떤 신령한 빛깔이 나오거든. 저건 올해의 꽃이 아니야. 삼십년을 준비한 뒤에야 비로소 피어오른 거지.
요즘은 저런 신령스런 꽃 보기가 힘들어. 그때까지 질긋하게 참고 가는 놈들이 드물거든. 세상이 너무도 가벼워졌어. 하긴, 오래 묵으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새 것이 그렇게도 좋은가. 나무도, 술도, 약초도, 사람도 오래 묵은 것, 헌 것이 좋은 법인데.
자네도 시 한 편을 쓰는 데는 하룻밤이면 되겠지만, 거기에는 자네 나이 만큼의 무게가 담겨있지 않던가? 모든 것은 결국 세월 속에서 피어나지. 자기 세월을 먹고 피어난 저 살구꽃을 봐 ──. 바로 시 아니던가.
-2010. 4.
박호민
전남 고흥 출생
1989년 민족문학 등에 시를 발표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야외수채화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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