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
서 동 애
어느 계절 보다 유난히 겨울에 지는 노을은 새색시 다홍치마처럼 곱다. 바다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자라면서 노을도 사계절 다르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 내 고향 나로도의 이 고은 노을도 죽도록 싫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 일곱 남매는 나이 순서대로 맡아서 하는 일이 분배되었다. 내가 했던 일도 나이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 동생보기, 청소하기, 작은방에 군불 지피기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동생보기와 집안 청소인데 무엇보다 동생보기는 더 싫었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도 못하고 삔치기도 할 수 없었고, 뜨고 지는 해가 하루 종일 마루를 비추어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먼지가 그대로 보이니 엄마의 꾸중은 날마다 이어지니 남향인 우리집이 정말 미웠다.
처음에는 해가 바다에 떨어져 어둠이 찾아 올 때 까지 걸레를 들고 마루를 닦았다. 그러다 차츰 꾀가 생겨 아예 해가 지며 닦으니 한결 수월 했다. 늘 빨리 넘어가지 않은 해를 원망으로 바라보았으니 붉게 타는 노을이 곱게 보이질 않았다.
늘 흰쌀밥한번 실컷 먹어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던 그때를 망각하고 지금은 어떤가. 흰쌀밥을 원없이 먹을 수 있어도 밥맛, 입맛이 없다며 투정을 한다. 식량이 모자라 보리 고개에는 쑥으로 연명하고 겨울이며 개간한 산밭에서 가꾼 고구마가 얼마나 든든한 존재였던가.
그런 세상이 바뀌고 있다. 참살이 시대를 맞아 일부러 보리밥집을 찾아다니고 가난한 이들이 먹었던 고구마가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먹을 것이 넘치니 소식(小食)을 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골라서 먹을 수 있으니 세월이 참 좋아졌다.
우리 집에서 제일 어른이신 할머니의 밥그릇을 넘보다 엄마한테 걱정 듣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할머니 밥에는 쌀이 많이 섞였으니 어린 마음에 행여 밥을 남기지 않을까 눈치를 보다 내 몫의 밥을 도리어 오빠들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밥을 빼기지 않으려고 우는 오빠들은 더 약을 올리며 재미를 붙였다. 그 귀한 쌀밥을 지금은 함부로 대하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딱 맞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밥한 톨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어쩌다 찬밥을 개밥 그릇에 쏟을 때면 죄를 받을 것 같은 생각에 깜짝 놀란다.
이렇게 물질만능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물론이고 이제는 세계의 유명브랜드도 돈만 있으며 안방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공통된 병들이라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늘 목이 마른 상태다. 너나없이 풍요로운 물질이 원인이며 더 좋은 것을 추구 하다 보니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사는 것 같아도 정식적으로는 늘 궁핍하다.
조금만 더하다가 욕심에 우리는 결코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사람은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한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라고 했다 하나가 필요 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 마저도 잃을 수 있다.
얼마 전 여고 동창 모임에 가려고 옷장 가득 걸린 옷을 정작 입으려니 마땅찮다. 몇 번이나 입고 벗기를 하다 약속 시간을 삼십분이나 늦었다. 늦은 이유를 말하니 의외로 친구들은 그래그래 하면 맞장구를 쳤다.
옷이 없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다른 걱정도 고민도 할 필요 없고 옷이 많으며 어떤 걸입을지 고민을 해야 한다며 검소하기로 소문난 P의 말에 너도 그러느냐고 반문을 하니 P는 나도 여자라며 웃었다.
요즘 웬만한 집에는 다들 옷 방이 따로 있어 연예인 못지않게 많은 옷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하루가 다르게 디자인이 새로운 옷들이 밀물처럼 쏟아진다. 그러니 주부들은 큰맘 먹고 장만한 옷을 유행을 따르다 보며 이삼년도 못 입는다. 이렇게 떠밀러 사람이 옷 홍수에 묻혀 산다고 해도 틀림이 없으니 꼭 필요한 옷만 구입하는 쇼핑의 지혜도 필요하다.
곁에 있는 소중 것들을 볼 줄 모르던 철없던 섬 소녀의 지혜에 눈을 뜨게 한 고향 노을이 내 안태단지가 묻힌 언덕을 아름답게 물 드린다.
서동애 (徐東愛) 호 :水月
전남 고흥출생
월간순수문학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 협회원
동작문인협회원
푸른아동청소년문학회원
해송문인회회원
예띠시낭송회원
고은 최치원 문학상 수필본상 수상
현 독서지도사 실버넷 뉴스 기자
저서 :오동꽃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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