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집가는 날
- 조헌용
날이 어두워지면서 판장 한쪽에 피워놓은 화톳불은 더 높고 환하게 타올랐다.
아침에 작업 나간 배들이 들어올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쯤이나 더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화톳불 주위에 우세두세 모여들어 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판장 어느 곳에 조개를 부리느냐에 따라서 값의 차이가 엄청났다.
그런 까닭에 배 들어올 시간이면 판장에서는 늘 자리다툼이었다.
자리다툼을 끝낸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 둘 몸을 녹이고 있을 때 영남호 선장이 피조개가 담긴 소쿠리 하나를 들고 화톳불 곁으로 투벅투벅 걸어왔다. 누군가 자리를 내어주었다.
「춥소잉. 얼른 이리 가까이서 불 좀 쬐시오잉. 근
디 어찌 이리 일찍 들어온다요.」
「기계가 작살이 났어라. 참네, 오늘 잡은 게 이거이 전부요잉. 나가 이거 낼 텐께 누가 막걸리나 몇 병 받아오시오.」
몇 사람이 추렴하여 막걸리 몇 병을 받아왔다. 금세 화톳불 주위는 술판이 벌어졌다.
벌겋게 익은 숯에 올려진 피조개가 입을 다 벌리기도 전에 사람들의 손에 잡혀 입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렇게 술이 몇 순배 돌면 그 자리에는 이야기꽃이 피어나게 마련이다. 물론 술이 없다고 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술을 마시고 하는 이야기가 따로 있기는 했었다.
「성수 아제, 새 장가 든다는 소식 들었소잉. 새 장가를 드는 거야 무슨 상관이요마는, 아따 다 늙어서 그냥 살믄 쓰지 결혼식은 무슨 결혼식이요잉. 안 그라요.」
길상호네가 말을 마치고 동의를 구하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수님도, 좋은 일인디 그런 자리 있음 좋지 뭐 그라요잉. 글고 그거이 성수가 허려던 게 아니고요, 아이들이 역부러 결혼식을 올린다고 날도 잡고 식장도 잡았다고 안 흐요잉.」
「글고 보믄 승원이랑 저쪽 집, 가들이 참말로 효자들구만요.」
「효자도 좋지만 요즘같이 아임에픈가 뭔가 땜시 어려워 죽겄구만 헌 사람들 결혼허는 디 부주일을 할란게 그거이 걱정이여 나가 안이라요잉.」
「맞소잉. 그 놈의 아임엠에픈가 아이엠지랄인가, 돈 좀 있는 것들은 나라 안팎으로 어찌나 유센지. 내 참 드러버서잉.」
길용호네가 옆에 있는 기름네 들으라고 돈 있는 것들 어쩌고저쩌고하자 기름네가 바로 뒵들이라도 하려는 듯 길용호네를 노려보았다.
수협에서 면세(免稅) 기름이 나오기 전에는 기름집이 이 마을 모든 배들의 기름을 대주면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다가 면세 기름이 들어오면서 기름집은 장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논 돈으로 일수놀이를 시작했다.
기름집은 다른 집보다 유난히 이자가 높았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돈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자가 높으면서도 담보까지 잡으라고 했고 돈을 제 날짜에 갚지 않으면 담보를 처분하기도 했다.
가끔 그런 일이 동네의 말썽이 되었다. 길용호네도 언젠가 돈을 빌려쓰고 일이 커진 것을 간신히 막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길용호네는 늘 기름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니기미, 어쩌서 돈 있는 것들이 유세여, 유세가. 없는 것들이 잘못이지잉. 아이엠에프가 뭐가 잘못이여, 잘못이. 한파, 한파하는디 내가 볼 때는 그것이 난로구만잉. 한파라구 흐믄 김영삼 한파라고 혀야지, 니기미 돈 빌려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지랄들이여잉. 지들이 잘못허서 돈 빌려야 허는 처지는 생각 않고 왜 맨날 뭐라고만 허는 것이여, 나 참, 어이 더러버서잉. 난로네 그려, 아. 이. 엠. 에. 프. 난. 로.」
「난롤 수도 있겄소잉. 근디 그 놈의 난로는 무슨 놈의 기름을 때간디 기름값이 그리 억척스리 많이 든다요. 어디 없는 연놈들은 기름값 무서버서 살겄소잉…… 어이구 저기 배들이 들어오는 갑다, 일어날라요.」
「이런 쌍년이, 내가 니 돈을 거저 뺏기를 혔야, 왜 맨날 나만 보믄 못 잡으먹어서 안달이여잉, 쌍년……」
「참으시오들잉. 뭐 별일도 아닌 일로 이리 언성을 높이시요잉. 그나저나 초혼도 아니고 재혼인디 부주는 얼마나 허야 쓴다요잉.」
그대로 두었다가는 또 무슨 일이 나겠다 싶어 길상호네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게 말이요. 한 이만 원이나 허믄 안 쓰겄소잉. 근디 요새 성수는 어찌 이리 안 보인다요잉.」
「아따, 이 사람아. 요즘 좋아서 잠도 안 올틴디 여그 나오겄는감. 지금 잠도 안 오고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할 것이구만잉.」
방바닥을 뒹굴뒹굴 할 것이라던 성수는 방파제에 있었다. 도무지 설렘보다는 무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지우겠다고 바람이나 쐬러 나온 길이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멀리서 얼비치던 까치놀도 사라지고 시나브로 어스름이 몰려들도록 이렇게 방파제 끄트머리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담배가 다 떨어지고 더 이상 묵새길 다른 아무런 거리가 남아 있지 않아 뒤뚱발이 걸음으로 투벅투벅 돌아오면서야 성수는 지금 자신이 죽은 마누라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홀아비 짝불알 만지는 식으로 따진다면야 잘못이랄 것도 없건만 성수는 체머리를 흔들며 죽은 마누라의 그림자를 지우려 마음을 다잡았다.
중학교를 막 들어간 승원이가 군대를 다녀왔으니 벌써 여남은 해가 지난 일이었다. 처음 한두 해는 마누라 잃은 슬픔에, 서너 해부터는 외아들 바로 키울 욕심에 새 장가 들라는 주위의 중신을 마다하고 살아왔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눈앞에 아른거리기만 하던 마누라의 얼굴도 서서히 잊혀지고 끝내는 아무리 되작여보아도 희미한 그림자 하나 떠오르지 않더니 요즘 들어 이상스레 또렷해지는 건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더구나 올제〔來日〕는 아들 때문에 들지 않았던 새 장가를 아들 때문에 드는 날이었다. 아들 승원이가 성수의 새 장가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그는 펄쩍 뛰면서 마다했다. 이제 나이 쉰이 넘어서 무슨 낙을 보냐고 했다. 그러나 승원의 고집도 대단했다.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지 않으면 자신도 장가를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즈음 승원은 벌써부터 사귀던 아가씨와 혼담이 오고 가고 있던 터였다. 언제부터 일을 꾸며왔는지 성수의 각시 될 사람은 그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옥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 동무의 어미였다. 아들 손에 끌려 각시 될 사람을 만난 것이 지난 봄의 일이었다. 그 푸른 봄날, 문득, 아주 잠깐 동안 죽은 마누라의 얼굴이 떠오르기는 했었다. 그리고 다시 어둠처럼 멀어지기만 했던 그림자였다. 옥분과 겨우 정들고 마음 도슬러 날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마누라의 얼굴이 그 봄날처럼, 그러나 더욱 또렷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별쭝맞은 일이었다. 하기는 나이 쉰 넘어 새 장가 들면서, 남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부터 별쭝맞은 일이긴 했다. 남세스럽다면서 그냥 두 살림 합쳐 살면 그만이라고 했지만 새 아들 될 놈이 제 어미를 그냥 내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가까운 친척끼리 모여서 두더지 혼인이나 하자며 날을 받은 일이 이렇게 버르집혀서 여러 사람들 앞에까지 서게 되었다.
할 만큼은 해왔던 날들이었다. 다시 새 장가를 든다고 해도 죽은 마누라에게나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아쉬울 무엇이 남아, 새 장가를 하루 앞두고 죽은 마누라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인지, 성수는 가던 걸음을 돌려 방파제 입구에 서 있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오메, 오메, 한참 찾았구만 우리 낭군이 예 있소잉. 술동무도 없이 혼자서 무슨 술이요 술이.」
혼자 앉아 마신 소주가 어느새 두 병이 가까워 올 즈음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온 옥분이 성수 옆에 무람없이 앉으며 말머리를 열었다.
「아따아, 안주도 없이 술을 이로코롬 많이 자셨소. ……아짐, 여그 잔 하나허고 개지(키조개)나 한 사라 주시오잉. 두꺼비도 한 마리 잡아주고요.」
처음 만나 서먹했던 날을 빼고는 성수보다는 오히려 그네가 한결 적극적이었다. 아들을 통해서이기는 했지만 연락도 그네가 먼저 해왔고 성수가 이미 그네에게 정들고도 마음을 부접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에 함께 살림을 차리자고 일의 메지를 놓은 것도 그네였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성수와 옥분은 저녁을 먹을 즈음 만나던 다른 날들과는 달리 점심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아 있는 이른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찬바람이 몹시도 심하게 불던 날이었다. 시장 입구에서 약속 시간이 반시간이나 지나도록 기다렸지만 그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옷깃을 귀밑까지 끌어올려보았지만 달려드는 추위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성수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혹시 길이 어긋난 것은 아닌지 뒤뚱발이 걸음으로 시장 입구를 이리저리 걸어다녔지만 그네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냥 불을 쬐기가 미안해 싸디싼 귤을 한 봉지 사들고 불을 쬐고 있을 때 저만치에서 그네가 다가왔다. 늘 곱다시 차려 입던 모습이 아닌 몸빼바지에 눈비음도 없이 다가온 그네를 성수는 알아보지 못했다.
많이 기다렸지라. 갑작스레 무슨 놈의 손님들이 그리도 겁나게 들이닥치는지 늦었딴게요.
그제야 그네를 알아본 성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알은체를 했다.
아니구만요, 일하다 오는 갑소잉.
예…… 오메, 오메, 그나저나 몸이 다 얼어버렸소잉. 후딱 가십다. 언릉
따라오시오잉.
그네를 따라간 곳은 시장의 구석진 좌판이었다. 바람막이 하나 없어 몰려드는 칼바람이 휙휙 쇠 긁는 소리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지운네 누구여?
누구긴 누구당가, 지운네 요새 데이뜨한다더만 그 사람이구만, 안 그런가?
맞소잉, 내 신랑 될 사람이요, 어떠요, 잘생겼지라.
아따, 거 지운네는 좋컸네잉.
성수를 보고 여기저기서 묻는 소리에 성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따, 저 양반 얼굴 빨개지는 걸 봉께 그만들 허야 쓰겄네잉.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성수가 어쩔 줄을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네의 손이 성수를 이끌었다.
추운디 글고만 섰지 말고 이리 와서 불이나 좀 쬐시오잉, 글고 우리 인자부터는 비싼 데까정 역부러 찾아가서 뭐 묵지 말고 그냥 아무디서나 한 숟갈씩 해결합시다잉.
그네는 화톳불에 올려놓았던 도시락을 꺼내오면서 말했다. 양은 도시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네가 자신의 생선 좌판에 앉으며 성수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옆에서 야채를 팔던 이가 다가와 도시락을 내밀었다.
이거 드쇼잉, 나가 우리 지운네 낭군한테 쓰비스허는 것인께. 처음이요잉, 나가 이 자리서 십 년이 넘게 장사를 혔지만 우리 지운네가 남정네를 다 데리고 온 것은이.
장학댁은 어처헐려고 벤또를 이리 디미는가잉. 이 양반이야 짜장면이나 하나 시켜주믄 쓴께 장학댁이나 많이 묵소.
우리야 옆에허고 나눠 먹으믄 쓴게 걱정 말고 맛나게나 먹으랑께, 남정네가 든든히 먹으야지 안 그려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오목조목 모여들어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성수는 그렇게 옥분의 주위 사람들에게 새 신랑으로 자리잡았고 그날에야 겨우 성수의 입에서 새 살림 차리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은 마누라의 얼굴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마누라 잃은 바다가 너무나도 지긋지긋해 막일로 살아오던 성수가 다시 뱃일을 하자고 마음먹으면서였다. 승원이만 아니었다면 성수는 진작에 바다가 뵈지 않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터였다. 그런 성수가 다시 바다에서 뱃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바다보다 더한 벌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옥분이가 자신이 그동안 벌어놓은 돈과 성수가 받은 보상금을 합쳐 배 하나 장만하자는 말을 비손하듯 되풀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성수가 배질을 다시 하리라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배벌이가 좋다지만 요즈음 아이엠에픈가 뭔가 때문에 기름값이 두 배나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원래가 이 배들이 근저해어망(近著海魚網)이라 불법이던 터에 새만금 간척 보상 지급 뒤에는 더욱 감시가 심해져 일하기도 힘들다, 차라리 다른 장사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며 말 휘갑만을 늘어놓았었다. 그러나 옥분도 이미 알아볼 대로 알아본 뒤였다. 기름값이 올라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건 먼바다에서 일하는 커다란 배들이지 이렇게 가까운 앞바다에서 조개나 잡는 배들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리고 불법이라고 해도 허가만 있으면 바다가 막히는 날까지는 그냥 눈감아주기로 되어 있다고 들었다, 또 다른 장사를 하기에는 우리 둘이 가지고 있는 돈이 너무 적다며 성수를 설득했다. 둘이 가지고 있던 돈을 합치면 새 배는 아니더라도 서너 해는 끄떡없을 배를 장만하기에는 맞춤했다. 마누라를 잃은 뒤로 그 좋아하던 생선도 여간해서는 잘 먹지 않을 만큼 바다를 싫어해왔던 성수였지만 이제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되는 거였다. 아이들 모두 커서 제 살 길이야 가고 있다지만 가장이라는 자리가 고집으로만 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렇게 배를 알아보고 다니면서 자주 죽은 마누라가 떠올랐다.
「날씨가 제법 싸늘한디 예까정 뭐 한다고 나왔는가, 나오기를.」
「지야 당신이 예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지만, 참말로오, 당신이야 뭐한다고 여그서 술이요잉, 술이. ……죽은 승원이엄마 생각나지라?」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가 계면쩍어서 지청구를 준다는 것이 오히려 동티만 붙은 꼴이 되었다. 성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게 저려왔다.
「………」
「괜찮어라, 왜 생각이 안 나겄소잉. ……사실은 지가 당신한테 미안혀서 이런 말 안 흐요. 이게 아닌디 싶음시롱 죽은 지 스무 해 다 돼가는 지운이애비가 요 며칠 어찌나 생각나던지 당신한테 참말로 미안헙디다잉. 고생만 고생만 바가지로 시켜놓고 간 사람이 뭐가 잘난 게 있다고 그리운 것인지, 서러운 것인지 그렇게도 보고 잡어서 사진을 꺼내놓고 실컷 울었소잉.」
보고픈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던 사람과 아버지의 말만 듣고 살림을 차렸었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착실하고 일 잘하는 남편에게 그네를 일찍 시집보냈다. 열아홉에 시집 들어서 지운이 다섯 살 되고 둘째 지숙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무슨 병인지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었다. 남편의 이름이 김오복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였다면 복복(福福)이 하나가 되었으니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으고 오래오래 잘살아야 했다. 그러나 남편과 산 지 다섯 해도 되지 않아 남편이 앓아 누우면서 병수발에 아이들 수발이 모두 그네의 몫이었다. 시름시름 앓으며 사람 구실도 못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했더니 죽고 나서는 남편 없는 게 그리 서러울 수가 없었다. 못난 사람이라고 욕도 많이 했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에 가슴이 아픈 날들이었다.
「……그러고 난께, 가슴이 팍 트인시롱 괜찮아집디다잉. 어찌요, 당신도 그 사람 생각나지라. 마음속에 담아두려고만 하지 말고 쐬주도 마셨응께 술김이랍시고 팍 털어버리시오잉.」
두 사람이 앉아 데면데면한 채로 소주 한 병을 비우고서야 불쑥 옥분이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을 꺼내놓고 울었다는 말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면서 성수는 그네의 두름성 있는 말들이 고마웠다.
「고맙네잉. 글고 보믄 자네가 나보다 언제나 훨 낫구만잉. 도무지 가슴이 답답허더구만 자네가 그리 말혀주니 내 딸보 같은 맘이 조금은 시원허이. 인자는 자네나 나나 죽은 사람들은 잊고 맛나게 살아보믄 쓰것구먼.」
「승원아빠! 스무 해 가까이 혼자 살아온 년이 인자사 무슨 덕을 보겄다고 요로코롬 갑작스레 당신한테 시집갈라고 허는지 아시오.」
「………」
「지가 말이요잉, 시장서 혼자 장사허는 년이라고 넘들이 우습게도 많이 보고 중매도 많이 들왔지라. 근디 인자사 당신을 만날라고 그랬는가 다들 우습게만 보입디다요. 우리 지운이헌테서 당신이 죽은 승원엄마 사진 한 장 없이 혼자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요잉, 그때 가슴이 왜 그리도 울렁거렸는지 몰랐소. 얼마나 사랑혔으면 얼마나 보고 잡었으면 외려 사진을 모다 불살렀으까, 그런 생각이 든께 당신을 꼭 한 번 보고 잡읍디다잉. 내 얘기가 우습지라……」
애옥살림이었던 터라 사진을 찍을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제사상에 올릴 사진 한 장 남겨두지 않고 마누라 사진을 모두 태우긴 했다. 사진을 보면 물에 빠져 찾지 못한 마누라를 나흘이 지나서 찾았을 때, 물에 퉁퉁 불어 있던 모습이 성수의 머릿속을 바투 헤집었다. 눈도 없고 코도 없던 모습, 머리카락만 숭숭 남은 얼굴이 마누라의 것이라고 성수는 믿고 싶지 않았었다. 같이 작업을 나가 혼자만 살아 돌아온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갑자기 거센 파도에 다른 배들과 떨어지면서 성수의 배만 파도가 쉬어간다는 은하해수(銀河海水)에 닻을 내렸었다. 겨울이 지났다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선실에서 잠이 들었다. 몸을 흔드는 손에 일어났을 때는 넘어진 석유 난로에서 옮겨 붙은 불이 배를 한참이나 잡아먹은 뒤였다. 아무리 물을 뿌렸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사람 살리란 소리를 아무리 외쳐보아도 파도소리뿐 다른 아무런 메아리도 들을 수 없었다.
여보, 어척허믄 좋소잉. 이대로 있다간 배가 다 가라앉겄소잉.
니미 씨발넘으거잉. 니미 씨발넘으거잉. 긍께 꿈자리가 뒤숭숭허다고 오늘 같은 날은 나오지 말잔께, 썩을 놈의 여편네가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구만, 니기미.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두 사람의 갈라지고 힘없는 목소리가 바다를 향해 울부짖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벌밖에 없는 구명복을 마누라에게 입히고 성수는 널빤지 하나를 잡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디서 배가 오기를, 불길을 보고 무슨 일인가 에멜무지로라도 달려와주기를. 그러나 그 거센 파도를 헤치고 이곳까지 나타날 배는 없을 듯싶었다. 마주잡은 두 사람의 손에서 힘이 점점 풀려나갔다.
손 놓지 말어잉, 손 놓으면 죽는 것인께. 알았지…… 왜 말이 없는 것이여.
누가 올 것이네잉, 꼭 올 것이구만.
여보, 나 말이요잉. 나 죽으믄 우리 승원이 잘 키울 수 있지라, 남들한테 기죽지 않게 키울 자신 있지라잉.
이 놈의 여편네가 미쳤나. 니미, 죽긴 어찌 죽는다고 그러는 것이당가!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성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보지만 의식은 시나브로 약해졌다. 몸이 추위에 꽁꽁 얼어갔다. 두 사람의 손이 스르르 미끄러져 나가면서 가물거리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누라는 벌써 저만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어이, 어이, 정신차려잉. 정신차리랑께.
헤엄쳐 잡고 싶었지만 굳은 몸이 쉬 움직여주질 않았다. 다섯 걸음쯤 헤엄쳐 나가다가 성수는 다시 널빤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누라를 잡으려다가는 자신이 먼저 지쳐 죽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무서웠다. 햇살이 따갑게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도에 헤어졌던 마을 사람들 몇이 보였다.
살았소잉. 살았당께. 어이, 성수 괜찮은감.
성수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누라 생각에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그 사람은 어찌 됐다요.
못 찾았구만, 지금 딴 배들이 모두 찾고 있지만……
아니요잉. 아니당께요. 태호 성님, 우리 그 사람 좀 찾아주시요. 그 사람 말이요.
어이 성수, 진정하소. 지금 다들……
니기미, 진정이고 뭐고 그 사람 찾아내란 말이여, 이 씨발년놈들아 나도 죽이든지, 아니믄 그 사람 찾아내란 말이여잉……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성수의 눈이 하분하분 젖어갔었다.
「오메, 오메, 나가 괜한 말을 혔는 갑소잉. 어찌 남정네가 그리 쉽게 눈물을 보인다요. 그렇게 보고 잡으요.」
「그, 그거이 아니고, 눈에 재라도 들어갔는 갑구만잉.」
「괜찮구만요. 근디 오늘만이요잉. 지도 오늘 그 사람 사진 태웠응께, 승원아빠도 낼부터는 승원엄마 생각하기 없기요잉. 아니요, 인자 나가 승원엄만게 나를 생각허믄 쓰겄구만요. 안 그렇소잉. 긍께 지 술 한 잔 받으시오잉. 글고 지가 승원아빠 바닷것 안 묵는 거 알면서도 개지를 시켰소잉. 인자 잊으라고요잉. 새로 시작하자구요잉. 약속허지요.」
「알겄구만, 알겄어잉…… 카, 좋다. 거 참, 오랜만에 먹응께 참말로 맛있네잉. 카, 좋다. 됐네잉. 넘사스럽게, 나가 먹으믄 쓴디, 됐당께…… 왜 그런디야.」
젓가락으로 키조개를 집어 성수의 입 안에 넣어주던 옥분이 하던 짓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승원과 지운, 지숙이 서 있었다. 둘의 모습이 얼마나 남세스럽게 보였을까, 성수는 계면쩍은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그들을 불렀다.
「흐음, 흐음, 글고만 섰지 말고 들어들 오거라잉. 이리 와서 이 아저씨 잔이나 한 잔 받으랑께잉.」
「아저씨가 어디 있다요잉. 아버지만 있구만요. 오빠, 안 그래요.」
지숙이 다가오며 성수에게 귀염을 떨었다. 스스럼없는 그런 그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성수는 아직까지는 그들과의 서먹했던 기분을 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우리 노래방 갈거나, 우리 아그들하고 이 아빠, 엄마하고 누가 더 노래 잘하나 보게잉.」
포장마차를 나온 다섯 식구가 가까운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 지운이 몰고 온 차에 올랐다. 차가 깊은 어둠을 뚫고 힘차게 달려나갔다.
방학이라 쪽문만 열어놓던 선연초등학교는 오랜만에 교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차를 타고 오거나, 혹은 걸어온 사람들이 열린 교문을 지나 햇살 말갛게 떨어지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멈칫멈칫 신발을 벗어 든 복도 입구에는 김성수 최옥분 결혼식장이라는 글 밑에 신발은 벗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써 있다. 결혼식은 평소에 3학년과 4학년을 가르치다가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에는 두 개의 교실을 하나로 합쳐 사용하는 임시 강당에서 치러지기로 했던 터였다. 성수로서는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IMF 때문에 사정이 어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내에 유명 결혼식장에서 헌 사람들이 식을 올리기에는 남세스럽기 그지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새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성수는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달래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승원을 낳았던 아내가 있었지만 그네와는 그저 샘물이 담겨 있는 양은 밥그릇을 앉은뱅이 상 위에 올려놓고 맞절 한 번으로 가시버시의 인연을 맺었었다. 애옥살림에 쪼들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수에게 결혼식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그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성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처음 있는 결혼식이 성수의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했다.
「아따, 좋긴 좋은가베요잉. 우리 성수 성님이 이렇게 헤실바실 어쩔 줄을 모르요잉. 자 인자 들어들 가십다잉. 곧 시작헌다요.」
식이 시작되면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세두세 몰려다니며 좁은 강당은 금세 북새통이 되었다.
「아따, 아따, 조용히들 하랑께요들, 글케 떠들어싸믄 신랑이 못 오잖으요잉 ……자, 글믄 인자 신랑 입장이 있겄소잉. 신랑 입장.」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행진곡보다 빠른 걸음으로 성수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단상 앞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한복을 곱다시 차려 입은 옥분이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그네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수와 마찬가지로 그네 또한 지난날에 결혼식을 하지 않은 터였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아보지만 눈물은 쉬 멈추지 않았다. 그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지운이 옥분을 향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우요잉. 웃으셔라, 좋은 날인디요.」
그제야 그네도 고개를 들어 아들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자, 글믄 인자는 신부 입장입니다잉. 여러분들이 큰 박수를 보내주야 쓰겄네요. 지금 신부가 부끄러워서 저렇게 고개만 숙이고 있은께요잉. 신부 입장.」
옥분이 아들 손을 잡고 서서히 성수가 서 있는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박수소리, 휘파람 소리가 벌떼 소리처럼 옥분의 귓속을 윙윙윙 날아다녔다. 창으로 밝은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지만 옥분에게는 모든 것들이 분홍빛으로 보였다. 아들의 말대로 울지 말아야지 했으면서도 왜 그렇게 청승맞게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지 옥분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옥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때 옆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옥분의 머리 위로 오색끈이 떨어졌다. 옥분이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요잉. 그거는 둘이 퇴장을 할 때에 터치는 거인디잉.」
「니미 아무때믄 어쩐단가잉. 우리 제수 씨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드는디 나가 조금 놀래켰구만잉. 아따, 제수 씨가 참말로 미인이구만.」
「맞소잉. 근디 아버지가 딸을 주는 거이 아니고잉, 아들이 엄니를 넘겨주네잉. 어이 성수 잘흐야 쓰겄네잉. 각시한테 잘못하믄 저 힘 좋게 생긴 아들한테 낭패를 당하겄구만.」
「몇 살인디 저리 곱디야, 영락없이 새색시구만잉. 안 그라요들.」
여기저기서 놀리는 말, 다독거리는 말들이 한 마디씩 터져나왔다. 그제야 옥분은 눈물이 흐르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씩씩한 모습으로 성수가 투벅투벅 걸어나와 옥분의 손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 있었다. 어느 사이 옥분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신을 깨달았다.
성수도 옥분도, 서로에게 깊은 사랑의 맹세를 바쳤다. 죽는 날까지 신부 최옥분만을 사랑하겠습니까? 예. 커다란 목소리가 울리고 다시, 죽는 날까지 신랑 김성수만을 사랑하겠습니까? 성수보다 한결 큰 목소리로 옥분의 예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의 맹세가 끝나고 주례사가 이어졌다.
예,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곳 면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례를 서보았지만 오늘같이 떨리고 흥분되고 기쁜 날은 처음입니다. 에, 여기 오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사람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미 인생의 여러 날들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제 지난 아픈 과거를 잊고 새로운 날들, 에, 그리고 영원히 아름다울 날들을 위해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에, 어느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에, 사실 두 사람이 이런 자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두 사람이 여러 사람을 모시고 결혼식을 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는 그런 자리를 여러분들이 지켜봐주고, 에, 또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십사, 하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나라가 어려울 때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은 더욱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에, 요즘 우리는 아이엠에프 위기를 이겨 나가기 위한 우리 국민들의 단합된 힘을 여기저기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앞날에 아이엠에프보다 더 큰 시련이 있다고 해도 헤치고 꿋꿋이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이제, 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쳐 열심히 살아간다면 아이엠에프가 아임 파이어드(I’m Fired)라고 표현되는 나는 잘렸다가 아닌 아임 파이팅(I’m Fighting)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 사람의 앞날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헤쳐나가리라고 믿으며…… 에, 이상으로 오늘의 주례를 마치며 두 사람의 앞날에 희망과 행복이 깃들이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강당을 나와 학교 급식실로 앞서거니뒤서거니 향했다. 그곳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성수도 옥분도 겨우겨우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안 그래도 좁기만 한 강당은 더욱 북적거렸고 떨리는 마음에 결혼식도 엉망이었다.
이제야 한숨이나 돌리자며 성수가 옥분에게 맥주잔을 권할 때 창가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창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운동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운동장 끝에 늘어선 나무들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햇살도 말갛게 떨어지고 있었다. 햇살을 받은 눈들이 은빛을 그리며 마음껏 하늘을 헤엄치며 날아다녔다.
「니미, 야 이 씨발넘아. 몇 번을 말허야 알아듣겄냐잉. 분명히 여우가 장가를 가는 날이랑께.」
「야이, 이 눔아. 여우가 시집가는 날은 있어도잉, 여우가 장가가는 날이 어디 있다냐잉.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랑께.」
「장가든 시집이든 분명히 여우랑께, 이 새끼야.」
「어쭈 이 새끼보소잉. 어디다가 삿대질이여잉. 삿대질이. 야, 이 씨발눔아. 여우비란 말도 못 들어봤냐잉. 긍께, 이 눔아 여우는 비고잉, 호랑이는 눈이라 이 말이여, 이 무식헌 놈아잉. 긍께 오늘은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고잉. 니미, 무식헌 놈이 아는 체는, 니미.」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주먹질을 할 듯이 종주먹을 서로의 얼굴에 들이밀며 말싸움을 벌였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까닭도 아니었다. 옥분도 어려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것도 같았다. 햇빛이 맑게 떨어지면서 눈이 내리는 날에는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는.
「오메, 오메, 그만들 허시오잉. 우리 낭군이랑, 나랑 시집들고 장가가는 날이지 호랑이믄 어떻고 여우믄 그거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요잉. 글고 그게 정 중요하믄 올해가 무인년(戊寅年)이고 나가 마흔여덟 호랑이 띤게 오늘은 아무래도 호랑이가 시집가는 날인갑소잉. 그렇게 해버립시다. 돼았지라. 긍께, 그만들 허고 이리 와서 술이나들 드시오잉. ……오메, 뭐 흐요, 후딱 사과들 허고 이리 와서 술 받으랑께요. 새색시 부끄럽소.」
옥분의 말에 싸움을 멈추고 한동안 무르춤하던 두 사람이 옥분과 성수의 자리로 다가와 함께 술을 마셨다. 여우가 장가가는 날인지 호랑이 시집가는 날인지 창 밖에는 햇살 속으로 눈송이들이 여전히 송송송 떨어지고 있다. ●
조헌용시인
1973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군산에서 성장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집으로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200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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