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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전성태의 산문 "가난한 날의 소풍"

by 고흥을 찾아서 2011. 7. 26.

가난한 날의 소풍

전성태

간만에 남매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냉면집에 둘러앉아서 옛이야기에 빠졌다. 큰형과 작은형은 오십대에 들어섰고, 누나와 나는 사십대다. 형들과는 십여 년 차이가 나서 어린 시절 기억들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얘기를 풀어놓고 보니 세대가 한참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건 아마 우리가 그만큼 숨 가쁜 시절을 건너왔다는 소리일 것이다. 일테면 두 형은 60년대를, 누이와 나는 70년대를 얘기하는 셈이었다. 

 먼저 큰형이 말문을 연 용돈 조달 방법이 우스웠다. 용돈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라 어떡하든 형은 손수 용돈을 만들어서 군것질을 해야 했는데, 어른들 몰래 6원씩 하는 달걀을 훔쳐다가 가게에서 과자와 바꿔 먹었다고 한다. 그 재미에 빠져 뒤에는 둥우리의 암탉한테 손을 벌리고 앉았다가 달걀이 빠지기 무섭게 받아서 가게로 달려가곤 하였다. 아이가 따끈따끈한 달걀을 내놓자 주인이 부모님께 알려서 그 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용돈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화제가 소풍 이야기로 옮겨갔다. 누나는 소풍날 받은 용돈을 동네 고개를 넘기 전에 구멍가게에서 다 까먹어서 정작 소풍 가서는 울고는 하였다고 했다. 그런 누나가 한번은 원 없이 용돈을 쓴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푸성귀 판 돈 삼백 원을 맡기며 약방의 외상값 갚으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것을 또 홀랑 까먹었다. 원 없이 돈을 썼지만 너무 큰돈이라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기가 겁이 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남자들보다 손이 크고 담대한 누나의 성정에 오랜 내력이 있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때 손에 쥐고 간 용돈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봄에는 40원, 가을에는 50원이었다. 바닷가로 소풍 가서 장사꾼에게 단팥맛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 먹고는 돈이 다 떨어졌다. 나도 누이처럼 울었다. 외사촌들을 따라 온 외할머니가 찾아와서 아이스크림을 안겨 주어 눈물을 거둘 수 있었다. 마을 친구 중에 나보다 더 용돈을 못 가져간 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모래사장에서 돈을 주어서 귀갓길에 환타며 빵을 한 아름 안고 가는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작은형이 도회지로 나가서 자취하며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서울에서 취직한 큰형이 내려와 튀김을 한 접시나 사주었다고 한다. 그때 작은형은 튀김을 꾸역꾸역 넘기면서도 차라리 돈으로 받았으면 싶었다고 한다. “그때는 용돈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때 받은 용돈만 유독 기억하는 것은 형들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형들이 직장을 잡아 아랫자리 동생들은 그나마 형들에게 용돈을 받고 자랐던 것이다. 

 남매들이 그런 얘기들을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조용히 말씀이 없으셨다. 당신은 더 궁핍했을 어린 시절을 헤매시는지, 아니면 자식들의 어린 기억에 미안해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식들은 옛이야기에 한껏 유쾌했다. 문득 나는 우리의 얘기와 정오의 한때가 아버지와 아들로 유전되는 세월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날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이야기 들려주는 남자, 전성태 님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늑대>,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과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가 있으며,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