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풍경
정 명 수
나는 목욕하기를 좋아한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탓으로 변변한 목욕탕이 없었지만 집에는 큰 함지가 있고 들녘에 나아가면 저수지와 우물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에는 목욕을 자주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목욕탕구조도 변하여 시설이나 분위기가 좋은 목욕탕이 많다. 휴게실은 물론 운동기구도 갖추고 있어 아주 편리해졌다. 또 집안에서도 늘 사워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내 어린 시절 겨울에는 한 달에 한번정도 목욕을 했다. 장작불을 지펴서 끓인 물을 통나무 통에 담아 벌거벗은 몸뚱이를 씻던 물통이 목간통이었다. 그러니 때를 잘 씻어 낼 수가 없어 손과 발등에는 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라도 씻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몸도 가뿐했다.
여름철에는 집근처에 있는 저수지나 개울물 논 가운데 있는 두레샘물에서 또래들과 같이 목욕을 했다. 저수지의 야트막한 가장자리에서나 개울물에서 물장구치며 수영도 하고 등도 밀어 주었다.
어른들은 저수지에 빠지면 죽는다고 가지 못하게 타일렀지만 듣지 않았다.
논 가운데 넓고 깊은 두레샘물에서는 목에다 새끼줄을 걸고 교대로 앞에서 새끼줄을 잡아 당기여 물위에 뜨게 하여 수영을 배웠다. 발로 물을 가르며 물위에 가만히 서 있기와 헤엄쳐 나아가기나 배영 등은 수월하게 배웠다.
민물에서 배운 수영을 바다에 가서 다시 해 보니 부력이 있어 힘이 들지 않고 수월했다.
내가 처음으로 목욕탕에 간 것은 초등학교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Y시에 갔을 때였다. 아침 일찍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목욕탕 탈의실에 들어서니 어른이나 아이들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벌거벗은 체다.
많은 사람들 앞에 벌거벗고 보니 쑥스러워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탕 안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뜨뜻한 물 안으로 들어가니 몸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상쾌했다. 몸 전체를 따뜻한 물 안에 담가 보는 것이 태어나서 처음이니 그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아버지는 내 고추를 어루만지며 때를 밀어 주셨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하기야 아버지가 결혼하신지 13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으니 만져 보고도 싶었을 것이다. 때를 다 밀고 나시더니 등을 밀어 달라신다. 그 이후로 고교에 진학할 때까지 한번 도 목욕탕에 가본 일이 없다. 고등학교를 도시로 진학했기에 목욕탕에 자주 갈 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아무도 없는 탕속으로 들어가 맑은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본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정신은 맑아진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사르르 눈이 감기고 기를 받은 기분이다. 이때는 무아의 경지에 빠진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 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기분으로 목욕탕을 나온다.
목욕탕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같이 맞아준다. 귀한 사람도 없고 천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벌거벗은 몸뚱이다. 자기가 알아서 때를 씻어 낼 뿐이다.
곁에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등도 밀어 달라하고 그 사람의 등도 밀어준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어깨를 으슥해 보이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하다. 적어도 내 청소년 시절의 목욕탕 풍경은 그랬다.
지금은 목욕탕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돈을 받고 마사지도 해주고 때도 밀어 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 찜질방이란 곳은 친한 사람끼리 모여 하루 종일 땀을 빼고 먹고 자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이러하다 보니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확연이 구별되고 귀천이 드러나는 장소로 변하였기에 젊은 시절 목욕탕에 다니던 때가 정감 있고 그립다.
정명수 전남 고흥(도덕 회룡)출생
동국대 행정학과 졸업 국방부 부이사관(전)
수필춘추로 등단. 수필춘추문학회 회원
월간모던포엠 상임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수상 : 근정포장, 예비군포장, 서울시장상외 다수
세종문화예술대상, 육사문학상수필대상,
불교문학상대상, 릴케문학상
저서 : <이제는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노을져 가는 언덕에 올라>
대표작 : 소록도, 흔적, 보호석
'고흥관련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명수의 수필 "소록도" (0) | 2011.05.26 |
---|---|
소봉 이숙진의 수필, 유자 (0) | 2011.05.05 |
송봉현의 시 "유자차 음미" (0) | 2010.10.22 |
오순택의 시 작은별의 소원 등 3편 (0) | 2010.10.21 |
송종찬의 모닥불 앞에서 (0) | 2010.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