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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오순택의 시 작은별의 소원 등 3편

by 고흥을 찾아서 2010. 10. 21.

 *작가를 찾아서

 

자연의 소리로 시를 짓는 오순택 씨

 

서울의 밤 하늘엔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순이가 쳐다보면

장독대 뒤에 숨어버리고

철이가 쳐다보면

대문 뒤에 숨어버립니다.

 

어느 고요한 저녁

수줍은 듯 눈을 깜박이는

소녀 같은 작은 별 하나

나의 창가에 내려와

나직이 이야기했습니다.

 

<공장의 굴뚝이 토해내는 시커먼 연기랑 자동차의 소음 때문에 하늘 나라엔 별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어요.

별들을 고운 마음으로 사랑해 주세요>

 

푸른 눈을 가진

작은 별의 소원을

나의 일기장에

연필로 꾹꾹 눌러

적어 놓았습니다.

 

서울의 밤 하늘엔

별이 숨어버립니다.

 

-작은 별의 소원

 

서울 생활의 빠른 물결 속에 늘 헐떡일 때마다 가만히 고향 하늘을 떠올리곤 한다.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얼마나 이쁘던지. 그리고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들은 얼마나 깨끗하고 고왔던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이런 생각을 작가는 <작은 별의 소원>의 동시를 통해 나 같은 사람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전부터 <오순택>이라는 이름 속에서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아이를 만난 듯한 기쁨이 있었다. 이름에서뿐만 아니라 시집들을 읽으면서 수많은 곤충들과 새들, 꽃들을 애정있게 바라보는 시의 주인공은 어떤 삶이었을까. 또한 어떤곳에서 자랐을까 내내 궁금했다.

 

시인의 고향은 조그마한 산골. 집앞엔 논과 밭, 실개천이 흐르고 뒷산에 오르면 멀리 바다가 보이는 전남 고흥땅이다. 오래전부터 고향 이야기를 써온 작가는 <내 고향은 시(詩)의 마을>이라고 할 만큼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매미 소리, 숲 속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 내 시에는 솔 숲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져 있지요.”시인은 동시라는 그릇에 어린 시절을 끊임없이 담아 내려 한다.

 

온 마을이

고요하다.

 

집도

나무도

누워있는 길도

고요 속에 묻혔다.

 

간혹 먼지를 풀풀 날리며

큰 길로 버스가 지나갈 뿐

 

경운기가 쉬고 있는 밭 언덕엔

삐비꽃이 하얗게 피었다.

 

엄마도 밭에 나가고

철이는 학교에 가고

 

참새떼만

감꽃이 지듯

뒤란에 내려 앉는다.

 

-우리마을 4

 

안가 봐도 마을의 풍경이 그려진다. 간혹 버스가 지나가고 경운기가 쉬고 엄마도, 철이도 없는 빈 집에 참새때만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듯하면서 참으로 쓸쓸한 풍경이다. 하지만 나무며, 새들이며, 꽃들이 빈 집, 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작가가 자란 마을에서 만난 꽃들과 새들, 곤충들은 그의 시 속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메밀꽃, 자운영꽃,애기똥풀 그리고 고추잠자리, 귀뚜라미, 소금쟁이, 달팽이, 무당벌레,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들. 물총새, 동박새, 까치, 소쩍새들.

 

지금은 어린 시절의 공간이 아니지만 풀꽃이 그립고 들새들이 보고프면 가끔 교외로 나가 동심에 젖는다는 작가는 동시를 모두 자연에서 캐내고 있다.

 

아마도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인간 본래의 마음을 작가도 가졌을 것이다.이는 <늘 풀벌레 소리를 먹고 익은 이슬을 바구니에 담는 그런 마음으로 동시를 쓰고 싶습니다.>라는 작가의 소망처럼.

1966년 전봉건 선생의 추천으로 시문학을 통해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글을 써서 한번도 상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이었지요.”

 

시인으로 길을 걷기 시작한 게 젊디젊은 청년 시절이었던 이십대 중반이었다. 시인으로 출발했지만  시 속에는 동심을 담은 고향마을 얘기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했다. 아마 동시를 쓸 수 있는 고운 심상이 작가의 마음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은 다 커 버렸지만 세 딸 그린이, 다운이, 은강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동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인 이준관 시인은 이 작가를 말하기를 <사색적인 긴 얼굴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시골 팽나무에 앉아 우는 까치와 많이 닮았고 그의 동시의 분위기도 까치의 이미지와 닮은 데가 많다> 라며 <까치 시인>으로 명명한 바있다. 그렇다. 시골 논둑 어디에서나 만날 듯한 동네 아저씨 같지만 그 푸르게 웃는 웃음만큼은 소년처럼 맑다. 그런 아이와 같은 심성이 그의 시 속에 그대로 묻어 있다.

 

쬐고맣고 귀여운 게

쬐고맣고 귀여운

손가락 사이에 기대서면

꼬옥 물새같이 콕, 콕, 콕

현이 마음 적어 놓는다.

-몽당연필(부분)

 

벌레 똥 같은

까아만 꽃씨 한 개는

흙 속에

꼬옥 꼬옥

몸 숨기고

초록

연한

새싹 하나

찾아낸다.

 

-꽃씨(부분)

 

<조그만 것일수록 아름답고 조그만 것일수록 소중하고 조그만 것일수록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을 동시를 쓰면서 알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열쇠, 못, 성냥개비, 우표, 귀이개, 단추, 나사 등 조그만 것을 통하여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지극히 작은 일이나 평범한 것조차도 사건이나 기적으로 체험하게끔 한다. 모든 감각 기관을 동원한 인간과 사물의 교감, 또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은 이 시인만이 가지는 발견이다. 이는 자칫 어른의 눈을 의심할 수도 있고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문학은 온 가족이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착해라, 순수해라만 강요하지 말고 어른이 먼저 아이가 되어야 하고 어른도 동시를 읽으면서 동심을 가져야합니다.”

 

전원을 아름답게만 보고 전원 속의 인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교감하는 작가의 시적 태도는 작품 속에서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하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더 그려 보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고단한 삶으로서 동시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의 어깨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오십을 훌쩍 넘긴 내 아버지 같은 분하고 광화문 골목을 나란히 걸으며 오랜만에 옛동무를 만난 듯했다. 그건 작가의 눈 속에서 고향의 바다가 일렁거리고 별들이 가만히 내려와 앉아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궁글리고 아물린 짧은 시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이다.

 

<계몽문화(1996년 7.8월호)  글:최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