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앞에서
- 송종찬
사랑하는 연인이 남기고 간 모닥불 주위에 앉아 대성리 근처 하얗게 쇠버린 나무들을 뒤적입니다.
나의 사라짐도 저렇듯 작은 사랑을 환히 밝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름한 야전상의를 걸치고 외로움을 달래던 강가에 서니 강물은 십 년 전 기침소리처럼 흘러갑니다.
마음속 희미한 불씨 위에 그날의 반파된 꿈들을 쓸어넣습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끝없는 논쟁에 막차를 놓치고 강당에 들어가 잠을 자던 밤.
타닥타닥 불꽃을 내며 다시 불길이 커지고 멀리 산의 손금이 드러납니다.
이렇듯 찍히고 썩은 나무 등치 같은 날들이 하늘을 가르는 힘이 될 수 있다니
문득문득 발을 걸어왔던 아픔들이 땔감처럼 스며들어 텅 빈 마음을 비춥니다.
솔방울을 줍고 꺾인 가지를 찾아 피워야 할 모닥불, 그리하여 낯모르는 이가 내 곁을 지나다
한줌 불꽃을 향해 젖은 손을 내밀며 다정하게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슨 순교자처럼 막걸리를 토하던 대성리 근처 아 밤은 깊고
시집 '그리운 막차' 중에서
송종찬 시인
196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하여 전주에서 성장함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언론학을 공부함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 외 9편을 발표
1999년 첫시집 <그리운 막차>
2007년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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