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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하현식의 소록도에 가서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9.

소록도에 가서

                    하 현 식


녹동항의 매축지에서
바라다 보는 소록도는
섬이 아니었다
뿌어연 허무 한 자락을 향하여
고흥만을 건너면서
그대에게 줄 사랑과
낡은 어린 날의 추억까지도
푸른 물결 깊숙히
다 버렸다
입술이 뭉개져 속삭일 수 없고
입맞춤 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눈언저리가 짓이겨져
돌아다 볼 수 없는
어린 날의 추억이기에
그대에게 눈물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다만 몸짓으로 말하고
다만 눈빛으로만 그리워하리라
생각하던 여덟 해의 갈망이
한 자락의 허무가 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것이 오로지 팔 하나 떨어뜨리고
그것이 오로지 귀 하나
뭉그러지게 하기 위하여
쌓아온 미움의 나날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나는 지금 속세에 있고
나는 지금 세속적으로 살고 있지만
그림 같은 바다를 허리에 두른
측백나무 숲길을
하염없이 돌아 들어가서
그대의 낙원이
내게 뜨거운 슬픔이었음을
알았다
이제 가져야 할 것이 없는 그대
무소유의 극치
몸통의 마지막 한 부분까지라도
망가뜨리는 그 무소유의 몸부림이
그대 그리움의 조건이라고
소록도는 무언으로
소리치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소록도에 가서.

하현식

1938년 경남 창녕군 대지면 왕산리에서 태어나 창녕읍 송현동에서 성장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장작과에서 서정주, 박목월 시인에게 시창작 지도 등 받음

『현대시학』에 <암장>, <사족>, <종> 등이 전봉건시인에게 추천되어 등단
현 한국 시인협회 심의위원, 동서대 문학아카데미 교수

시집으로는
  「브니엘 일기」(1973년 예문관)
  「절대공간」(1975년 시문학)
  「암장」(1979년 현대시학사)
  「모딜리아니의 노을」(1986년 청하)
  「나의 항아리」(1990년 세명)
  「그리움에 대하여」(1994년 빛남)
  「그해 여름의 눈보라」(1998년 빛남)

평론집으로는
  「절망의 구조」(1982년 복지)
  「칠십년대 시론」(1984년 연문사)
  「한국시인론」(1990년 백산출판사)
 
논문으로는「한국기독교시평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