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휘돌아, 벌교를 다녀와서 (1992-11-11)
임순택
소록도는 고흥반도 끝에 위치한다.
광주에서 고흥군 읍소재지까지는 92km. 고속도로를 달리자면 1시간에 주파하고도 남는
거리지만 이 쪽은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인지라 길이 심한 S자 코스이어서 광주에서
10:00에 출발, 고흥읍(출장지)에 도착한 시각이 12:10.
급하게 점심 때우고 일 마친 뒤, 녹동까지 20km를 더 달렸다.
'녹동'은 행정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고흥반도의 끄트머리 항구인데 부두에 서면 바로
코밑에 소록도가 잡힌다. 배(국립 소록도 왕복정기선)에 차를 싣고 5분이면 소록도에
접안시킬 수 있다.
"보리 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닐리
보리 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릴 때 그리워 / 피ㄹ닐리"
이것은 나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이 지은 '보리 피리'의 첫 구절로 '문둥이'의 애끓는
아픔이 소개되어 있다. 그 이름조차 어여쁜 소록도에는 일찌기 한하운이 살았거니와 아직
도 어릴적 놀던 '봄 언덕'과 '꽃 청산'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병환자 2,500명 안팎과 국립
나병원 직원 200명이 살고 있다.
나는 광주은행 녹동 지점장의 안내로 일반인의 접근이 힘든 소록도내 나병환자촌까지 들
러 볼 수 있었다. 나병환자의 보기 흉함에 선입관을 갖은 우리지만 난 왠지 측은한 생각이
동하여 그 분들을 자세히 보면서 문득,한하운님의 '전라도 길'이란 시를 속으로 읊어 보았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 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 신을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붉은 전라도 길."
고흥반도로 건너 온 소백산맥은 고흥반도의 해안선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곁 바다에 크고 작은 섬 184개를 점점이 깔아 놓았다.
해물가게에 가면 '고흥 석화, 벌교 꼬막'이라는 소리를 듣는 만큼 우리 일행은 녹동으로
다시 건너 와 석화(굴)을 먹고올 때 지나쳤던 벌교를 향해 차를 몰았다.
"벌교 가서 주먹자랑 하다가 큰 코 다친다"라는 말이 전라남도에서는 속설이 되어 있다.
보성군에는 보성읍과 벌교읍이 있는데(보성읍 가내마을이 독립신문을 펴낸 서재필이 1866년 태어 난 곳이다) 벌교가 먼저 읍이 되었고 벌교 포구에는 일제 식민지부터 돈이 흔하고 주먹깨나 쓰던 왈패들이 더러 있던 곳이다. 이 벌교 포구가 갑작스레 커진 것은 일본의 수탈정책에 힘 입은 바 크달 수 있다. 일본놈(?)들은 벌교 읍내에 터를 잡고 보성 땅에서 나는갖가지 물산과 함께 남쪽에 혹처럼 매달려 있는 고흥땅에서 농수산물을 빼갔다.
순천만을 낀 이 포구에는 통통배가 자주 들락거렸거니와 기왕에 있던 광주시와 고흥군
을 잇는 도로와 1976년에 놓인 목포시와 순천시를 잇는 국도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아 교통의 중심지가 된 탓이기도 하다.
벌교 얘기는 여기서 중지하고,
실은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 벌교에서 조금 떨어진 '율어'라는 곳이다.
율어(栗於).
작가 조정래가 10권에 달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 무대로 삼았던 벌교,
그 중에서도 '해방구 율어'를 내 눈으로 확인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벌교읍을 지나 석거리재를 오르면 왼쪽에 큰 저수지가 있고 그곳에서 좌회전하여 저수지를 끼고, 오르다 보면 천연의 성곽(에워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해방구'. 그것은 빨치산 좌익세력이 장악한 지역을 뜻한다. 작가 조정래가 해방구에 대해 보인 관심과 애정은 두드러진다. 그곳은 단순히 좌익에 의해 장악된 곳이 아니라 'Utopia'로 그려져 있다.
높은 산줄기가 에워싼 한 가운데에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집들이 그 당시 과연 해방구다운 면면을 보여 주고도 남았다.율어면은 크게 상도와 하도로 구분되는 '얼치고개'가 있는데 일명 '38선고개'로 불릴 정도로 좌,우익 대립이 심했던 곳이다.
상도 칠음리에는 지금도 '김용규'라는 인물이 살고 있다는데 '태백산맥'에서는 '김태규'로
등장한다. 이 사람은 지금 껏 미전향수로 복역하다가 얼마 전에 출소한 철저한 좌익사상으로 무장된 그 당시 좌익의 우두머리였다 한다. 아뭏든 골치 아픈 이데올로기는 접어 두고라도 주릿재 고개에서 내려다 본 '율어'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fortress) 그대로 였고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의 위치에 선 듯한 착각에 빠져, 경이로운 눈길로 내려다 보았다.
결국, 2단도 모자라 1단 기어로 주릿재 고개를 넘어, 벌교를 뒤로 하고 주안댐을 거쳐 광
주로 돌아 오니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둠이 시내를 뒤엎고 있었다.
<추신> 다음에는 소설 목민심서에 나오는 '다산초당'(강진 소재)에 한 번 다녀 올 생각입니다. 그 때도 기행문을 올려야 제 직성이 풀릴겁니다만, 여러 분이 지루하시지는 않을는지.
경상도 문둥(文童)이가 광주에서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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