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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김동현의 할매를 땅에다 묻고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19.

할매를 땅에다 묻고 

                                                          김동현

늦가을 추위가 가슴에 비수처럼 아리면,
굵은 장작불이 얼키설키 서고
멍석이 펼치고 포장이 둘린다.
밤이 여위도록 한쪽에서 섰다판이 벌어지고,
내기 윷놀이판이 놀리면,
오양간 소란 놈은 잠을 못 이루고 간간이 울음을 울어댄다.
아기와 나와 내 아내는
불티를 뒤지고 서서
할매의 마지막 밤을 무심히 지키고 선다.

한무니 간다아 잡아라, 이 놈둘아
한무니, 한무니이-
손주들이 울어 눈물 바다를 이루었는데
어이가리, 할매요
가실 한 논벌에는 바람도 정처를 잃어 휑덩그렁.
상여는 몇 번이고 제자리에서 맴을 돈다.
이거, 노자해 가시오
내 자식 새끼들을 어찌 두고 떠날거나
나뭇가지를 한사코 붙드는데,
상여꽃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서야
늘 건너던 다리를 넘는다.
어이가리, 할매요.

걱정없는 증손주는 상여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고
코스모스를 꺾는다, 강아지풀을 꺾는다
천진히도 즐겁고

생석회 한 줌씩과 석관짝 한 판씩을
짊어지고 오르면,
며느라들아, 내 네들을 어찌 두고 떠갈거나
너무도 쉽게 봉분이 서고 떼가 오르는데
꽃상여가 한 줌 재로 날리면,
그렇게 할매는 차가운 땅으로 돌아갔소.
할매요, 이 겨울이 춥지 않을라요?
아들딸, 손주, 며느라가 수십 명이 늘어서도

외할매 고향은 전라도,
고흥반도 그 남단 한의 땅.
그 땅에 할매는
작은 족제비처럼 뻣뻣한게 누웠어라


<'작은문학' 2001. 봄. 도서출판 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