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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산문 - 연애편지_전성태

by 고흥을 찾아서 2010. 6. 28.

연애편지_전성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나는 고향집 근처 절에서 지냈다. 스님이라고는 비구니 한 분뿐인 절은 자그마한 암자와 다를 바 없었다. 스님은 식사는 제공할 수 있지만 땔감은 대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산사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단조로웠다. 나는 아침 공양이 끝나면 도끼와 낫을 챙겨서 산으로 올랐다. 점심때까지 고사목을 베고 등걸을 뽑고 솔방울을 모아 두었다가 오후에는 지게로 져 날랐다. 그리고 저녁 공양 때까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군불을 지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으면 몸이 노곤해져서 졸음이 몰려왔다.


 사내 하나가 절을 찾아온 것은 절 생활을 스무 날 남짓했을 무렵이었다. 사내는 삼십대 중반으로 키가 훤칠했다. 인근 소도시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영어 교사라고 했는데 그 도시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기도 했다. 그는 한 달쯤 머물기를 원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나는 이 동거인이 불편했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탐탁지 않았다. 고등학생 주제에 산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품새가 기특하기보다 꼴사납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며칠을 보냈다. 좁은 방이지만 서로 공간이 분할되고 겨우 안정을 찾아갔다. 우리에게는 음악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으며 그저 서로의 숨소리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먼저 그가 항상 먼저 잠자리에 드는 게 나는 불만이었다. 불을 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리고 그는 참으로 신장이 길었다. 절에서 내준 이부자리가 짧아서 그가 누우면 무릎 아래로 발이 한 자는 드러났다. 밤마다 나는 요를 끌어다가 덮어 주어야 했다. 그러자니 그가 먼저 잠자리에 눕는 행위가 내게 수발을 들게 하려고 그러는 것만 같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불만스러웠던 것은 땔감 문제였다. 처음 며칠 동안 그는 나를 따라 산에 올라 땔감 장만을 거들었다. 체격과 달리 일솜씨는 형편없었다. 그러더니 그가 나무하는 일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미안해하는 구석은커녕 그저 흥미 없다는 태도였다. 나는 왜 공평하게 노동을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어른이고 선생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숫제 방을 덥히는 일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비로소 나는 그의 무심한 태도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는 삶을 포기해 버린 사람 같았다. 욕망이 없는 사람한테 왜 욕망이 없냐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툴툴거리며 혼자 나무를 해다가 불을 지폈다. 애초에 우려했던 대로 결국 나는 상전을 모신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자기 책상에 긴 그늘을 드리우고 종일 뭔가를 열심히 썼다. 그는 책상에 물건을 늘어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설 사람처럼 절에 나타날 때 가져온 가방에다가 빨랫감까지 집어넣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엇을 쓰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덧 기한이 차서 절을 떠날 날이 왔다. 소득도 없이 방학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착잡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 선생이 점심을 사겠노라 했다. 그는 항구로 데려가서 삼겹살을 사 주었다. 우리는 따로 온 손님처럼 식사를 했다. 나는 밥을 두 공기나 비웠고, 그는 소주를 한 병 비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와 이런 식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튿날 절을 나서는 내게 그는 편지 묶음을 들려 주었다. 제대하는 군인의 사물처럼 편지는 두툼했다. 날마다 그가 골몰해서 써 낸 것이 이 편지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편지를 전해야 할 사람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여자였다. 이걸 가져가면 그 사람이 자장면쯤은 사 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애초부터 부칠 마음은 없었던지 주소도 없는 봉투는 봉해지지 않은 채였다. 이미 나는 그의 편지를 하찮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중 하나를 꺼내 읽으면서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숙!” 하고 불러 놓고 시작하는 편지는 구구절절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여자는 비록 떠났지만 이 편지를 받고 나면 분명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글이 이쯤은 돼야지. 나는 뭉클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선생에게 질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고, 그들의 사랑을 연결해 줘야겠다는 사명감마저 생겼다.


 소도시로 와서 나는 여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자는 한동안 당황해서 말을 못 잇더니 만날 장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공중전화가 있는 어느 주택가 슈퍼마켓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머잖아 여주인공이 나타났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처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자를 대동하고 있었다. 내게서 편지를 받아 간 사람은 그 늙은 아주머니였다. 감시자처럼 표정이 냉연했다. 그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섰다.


 내 사명은 그렇게 쓸쓸하게 끝났지만 나는 새로운 각오로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작가소개

이야기 들려주는 남자, 전성태 님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늑대>,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과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가 있으며,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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