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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관련문학

이종호의 永遠한 옛 故鄕의 추억..

by 고흥을 찾아서 2010. 7. 21.

永遠한 옛 故鄕의 추억.. 

 이종호

 

내가 태어난 고향 고흥반도 해창만은 지금은 바다를 막아
잘 정리된 農耕地(농경지)로 변하여 穀倉(곡창)지대지만
四十五年(사십오년) 전만 해도 파도가 넘나드는 바다였다.

같은 경주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子子孫孫(자자손손)으로
모여 농사와 굴 약식으로 살아간 農漁村(농어촌) 마을이였다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같은 또래 송아지 동무들과
갯뻘속에 숨어 있는 게도 잡고 조개와 낙지도 잡았다.

어릴 때 또래 중에 힘이 센 내가 많이 잡은 또래 아이들의
고기를 빼앗아 울리기도 했다 마을 복판을 흐르는 냇가에
미꾸라지 참게 장어가 많이 서식하여 잡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냇가 빨래터에서 갓 시집온 새색시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돌담 사이로 훔쳐보기도 하고 여름 밤이면 어둠을 틈타
옷을 벗고 미역을 감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초롱불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면 담 밑에 바짝 붙어 숨어 있다 지나간 후에
다시 미역을 감곤 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안에 둑을 쌓아
논을 많들어 地主(지주)로 농사도 많이짖고 도정공장과
고기잡이를 하여 일꾼도 여러 명 부리고 한집에서 사는 식구가
15명인 대가족이였으며 고을에서 쾌 부자였다.

바다에서 잡아온 사람 만큼 한 상어를 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집앞 냇가 물에 즐비하게 놓아두면 오가는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지나갔다 잡은 상어를 팔기도 하고 상어를 토막내
큰 가마솥에 삶아 일가친척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하기도 했다.

육지와 섬을 이은 해상 교통으로 연락선이 먼 수평선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물어 물어 찾아 왔네
내 임이 계시든곳.♪♩" 유명 가수가 부르던 애절한 유행가를 부르며
부두에 정박하면 여름 방학 때 이웃집에 온 청순하고 예쁜 소녀를
가슴 설레며 막연히 기다리곤 했다.

밤새 폭우가 쏟아져 냇가 옆에 위치한 염소우리와 함께
떠내려간 염소를 찾으려고 바닷가를 배회하고 아버지가
선원들을 태우고 섬에 이삿짐을 실으려 갔는데 태풍이 불어
돌아오지 않아 온 식구가 바닷가에서 발을 둥둥 구르며 애타게
기다리던 그 時節(시절)이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주마등 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지금은 농수가 흘러간 수로로 변에 갈대 늪이 무성하여 바람이 불면
갈대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늪 속에서 울어 되는 뜸부기 울음소리가
세월의 隔世之感(격세지감)을 노래하고 물고기 붕어와 장어가
서식하여 강태공 후예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이곳에도
각종 농약 페수와 물고기의 천적인 식용 개구리가 갈대 늪에
서식하는 고기들을 마구 잡아먹어 민물고기도 수가 줄어든다고
하니 안타깝다.

가난을 퇴치하자는 새마을 운동으로 미꾸라지 참게 장어가 사는
돌 밑 서식처가 새면으로 요새화 되어 살지 못하고 무한한 꿈을
주던 바다가 농경지로 변하여 각종 농약과 생활 페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많이 잡히던 상어도 잡히지 않아 볼 수가 없다.

냇가 빨래터의 빨래하던 새색시의 수줍은 예쁜 모습도
볼 수 없고, 푸른 파도를 가르며 구성진 유행가 노래를 싣고
오가든 연락선도, 연락선을 타고온 마음 설레며 기다리던
淸純(청순)한 소녀의 모습도,잊혀지지 않은 영원한 故鄕(고향)의
옛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04,6,25, 영원히 잊지 못할 옛 故鄕의 추억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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