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이야기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김병규
고향 같은 남쪽바다를 찾아가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그리던 소록도, 어린 사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에서 찻길 4시간의 먼길이고 뱃길로 5분 지척의 거리다. 대한민국 최남단 고흥반도의 끝자락 녹동항에 도착했다. 감청색 바닷물이 선착장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이루고 훈훈한 남녘바람에 실려 살갗에 스쳤다. 파란 숲으로 덮인 소록도가 물 가운데 둥실 떠서 한눈에 들어왔다. 달리다 힘껏 뛰면 건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가까운 거리에 다리를 건설 않고 현대 공법이 외면한 것은 다 까닭이 있으려니 싶다. 다리 대신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유람선에서 내리자 소록도 선착장에 주의사항이 기록된 게시판이 앞을 막았다. 인적이 뜸하고 들고나는 물결만 울렁울렁 가느다란 미성(微聲)을 흘리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오직 한사람이 지키고있는 안내소에서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는 섬 소록도"라는 안내전단을 얻었다. 오직 전단의 안내에 따라 길을 나섰다.
말끔히 닦여있는 도로 양쪽에는 우람한 노송군락이 정겨운 고향의 느티나무처럼 반기고 서있었다. 이름 모를 잡목들도 싱싱하고 푸른 색깔로 소나무와 어울려 청정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관광객이나 외래 객은 철저하게 출입이 제한되고 다만 중앙공원과 소록도해수욕장만 출입이 허용되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 구라탑(救癩塔)이 애환의 기념물로 서있었다. 국제 워크 캠프 남녀 대학생 133명이 근로봉사 활동을 기념하고 나병이 근절되기를 기념하면서 세운 탑이다. 현대 의학은 능히 나병을 무찌르고 정복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있어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탑이다. 공원 안의 독립문나무와 유한양행나무는 찾아간 나그네의 눈을 경탄케 하였다. 나무를 엮어 정 육면체로 큰 집채만큼 키우고 그 중앙부에 출입문을 만들어 흡사 독립문처럼 만들었고, 싯가 5억 원의 유한양행나무는 돈의 가치에 앞서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 솔송이라 이르는 특이한 소나무, 절망의 나병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성모마리아 상, 이 모두 환자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루어 놓은 걸작품들이었다. 공원에서 특별히 눈을 끄는 것은 나병을 앓던 한하운(본명 한태영) 시인의 시비 '보리피리'였다.
보리피리
보리피리불면 봄 언덕
고향 그리우면 피ㅡ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ㅡ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 )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ㅡ ㄹ 닐니리,
이 시비에서 나병환자들의 애환어린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는 듯 가슴이 찡하게 젖어왔다.
공원 모퉁이에 감금실(監禁室)이 보였다. 1916년 일제에 의해서 세워진 소록도병원 초대원장 아라가와 우개루가 설치하여 환자들을 핍박하던 곳이다. 법 절차 없이 원장이 징계 감속권을 행사하고 임의로 구금 감식(減食)하며 부당한 처우와 박해로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악의 전당이었다. 지금은 기념물로 남아 당시의 만행을 전해주고 있다.
악행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소록도는 그 숱한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는 섬으로, 150만평의 땅에 890명의 인구가 희망의 새 천지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 환자를 돌보는 소수의 봉사자들 외에는 땅의 주인은 갱생의 희망을 일구어 가는 환자들이다, 평화로운 해안선 쾌적하고 아름다운 금모래 해수욕장은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섬의 주인들은 농사를 짓는다. 쌀, 보리, 마늘, 생강, 특히 유자는 그 특유한 맛이 특산물로 지정되었다. 특이한 것은 어족자원이 풍부한데도 어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록도에는 박애정신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사람들이 있다. 마리안느 수녀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61년부터 42년의 긴 세월 나환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오직 진료와 치료에만 전념하여 소록도의 성녀(聖女)로 추앙 받고있다. 그의 박애정신이 알려져 호암재단의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고 상금 전액을 소록도병원에 기탁하였다. 소록도에는 마리안느 수녀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원봉사자 사랑의 실천자가 있어 갱생의 섬, 희망을 가꾸는 섬으로 활기를 띄고있다.
나는 소록도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환자도 좋고, 사랑의 실천자도 좋고, 누구라도 만나 나병환자들의 사연들을 듣고 싶었다. 그들의 애환을 듣고싶었고, 절절히 맺혀있는 그리움의 사연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철저하게 통제된 소록도의 법칙이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나병은 무서운 병이었다. 보리가 살찌던 계절이면 부모들이 들에 나간 틈에 코가 찌그러진 문둥이들이 아이들을 잡아다 배를 갈라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며 그로 인하여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일로 인하여 나병환자들이 세상의 적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 속에 잘려나가는 손가락 발가락을 바라보며 얼마나 원통했겠는가?. 현대 의학은 나병도 퇴치할 수 있어 애환의 섬 소록도가 희망과 갱생의 섬으로 되었다.
파란 남쪽바다와 더불어 푸른 숲으로 단장된 소록도, 그 아름다운 섬의 주인들이 하루속히 나병에서 벗어나고 또 나병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란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소록도는 더욱더 푸르게 보였다.
(200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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