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신천지}, 1949.4)
한하운 [韓何雲, 1920.3.20~1975.2.28] 본명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생.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 ·경기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화제를 낳았다.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하고,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한하운은 나병의 병고(病苦)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悲痛)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천형(天刑)의 시인이다. 부제 <소록도로 가는 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의 수용소를 찾아가는 나병 환자인 화자의 고달픈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형이라는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라는 첫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천리'는 고향 함경남도 함주에서 전라도 소록도까지의 공간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화자의 절망적 삶의 모습이자, 평상인들과 결코 동화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거리감 즉, 삶의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 아득하고 막막한 여행 길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가운' 화자는 그들에게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깊은 동류애(同類愛)를 느낀다. 버림받은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 미덕 뒤에는 '절름거리며 / 가는' 고통이 있으며,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 슬픔이 자리한다. 그러므로 간신히 천안에 당도해도 여름해는 여전히 거친 수세미 같은 무더위를 내뿜고 있을 뿐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버드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신을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진 사실을 발견해도 화자는 놀라거나 어떠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화자가 지닌 냉엄한 현실 인식과 '소록도'로 표상된 안식처를 간구하는 화자의 비극적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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