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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출신인물

황학주 시인과의 일문일답

by 고흥을 찾아서 201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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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학주는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이 있으며, 시선집으로는 <상처학교>를 펴냈다. 지금 아프리카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1회 서울문학대상, 제3회 서정시학 작품상을 받았다.

 

- 시를 처음 쓴 때는 언제인가?

"처음 쓴 시는 숲길에 관한 것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었지만, 그 시로 상을 받아 내가 비가 오면 비를 다 맞고 다니고 눈이 오면 눈을 다 맞고 다닌 것을 묵인하셨다. 모든 게 궁했던 내 처지에서는 그런 용납이 용돈보다도 유용했다. 내 기억 속 저녁 빛의 아름다움은 그때부터였다."

 

- 시는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시는 무슨 거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소하고 애매하고 미완성적인 것으로서 내게 소중하다. 다만 그게 시인 이상 당신의 상상력을 고무시킬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시만 쓰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갈망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시는 내 사랑이면서 어떻게 나에게 귀한 것이 되었는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운명적인 것이며, 사랑은 대체로 운명적으로 왔다 간다."

 

- 어떤 때 시가 찾아오는가?

"내 속에 시가 없을 때 허둥지둥 시가 찾아진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것처럼. 내 속에 그런 갈증이 있을 때 시가 쓰여진다. 내 속에 시가 떨어지면 길가다 멈춰서고, 뒤돌아가고, 책상에 앉아 시를 쓰는 것이다. 시란 '그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 속에 숨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앞세우는 시 뒤에 숨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시가 대신 욕을 먹기도 한다. 시가 욕을 먹어주기 때문에 나는 시를 정복할 수가 없다."

 

- 고향 고흥은 어떤 곳인가?

"내게 있어 고흥은 땅끝마을 사람들의 노래와 같다. 늙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바다의 방종함과 나른함과 두려움 같은 것을 홀로 지키며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먹고 사는 모습이 있고, 그것은 내게 말없는 춤으로 다가온다. 그런 노래와 춤은 끝끝내 단독자이면서 동시에 동지적 갈망을 요하는 시의 숙명과도 연대한다. 시를 쓰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시의 고독에 영감을 준다."

 

-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시인에게 어떤 곳인가?

"내게 있어 아프리카는 강박이 없는 세계, 그 자체다. 새로움과 낯섦이 공짜에 가깝고, 불충분성, 애매모호성, 아픔 같은 게 내게 있거나 닮은 것들이다.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추구 없는 시는 내용성을 갖기 어려운데, 이런 추구가 상투적 자기복제에 갇히는 일을 가장 빈번하게 허용하는 세계, 그게 바로 '강박' 아닐까. 아프리카에서 나는 무엇인가 이해했다는 기쁨을 맛보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다 알지 못한다."

 

- 끝으로 한마디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를 쓰면서 한걸음씩 늙어갈 수 있으니 좋다. 아무리 창의적인 작품이 나온 경우에도 누군가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더한 것이고, 시와 나는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 걸음엔 끝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