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에서는 군 번영회(회장 구자형)주관으로 최근 일본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학습지도요령개정안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명시한 것과 관련하여 독도의 순 우리말 이름 “독섬”이 조상들에 의해 지어져 내려온 것을 알리고자 ‘독도(독섬)’ 병행 표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도의 옛이름이 ‘독섬’이고 한자로 표기시 석도가 되어 결론적으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사실에 대한 범국민 공감대 형성과 고흥지역의 조상들이 지은 ‘독섬’에서 독도의 이름이 출발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데 있다.
독도는 1500년전인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장군이 삼척에서 출항해 우산국을 복속한 이래 수토활동 등을 통해 관리되고 지켜져온 소중한 우리 땅이다.
1900년 10월 25일 공표된 고종황제 칙령 제41호 2조에 따르면 『울릉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는 조항으로 석도(지금의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입증하고 있다.
1904년 일본의 ’군함신고행동일지‘에 울릉도 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인 ‘독섬’을 한자로 적은 독도(獨島)라는 명칭을 최초로 기록하면서 쓰게 되었다.
1938년에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문헌자료 조선어사전에도 ‘독’이란 돌의 사투리로서 돌석자 ‘석(石)’으로도 쓰고, 홀로독자 ‘독(獨)’으로도 쓴다고 한다. 따라서, "독섬"이 한문으로 "석도"가 되고, 곧 "독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 말기 1882년에 관원 이규원이 펴낸 울릉도 현지 조사보고서 ‘이규원 일지’에 따르면 당시 울릉도 전체 인구 140명중 전라도사람이 115명이고 그중 61명이 고흥사람이었으며 봄에 들어와 벌목하여 배를 만들고 가을에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울릉도가 산림이 훼손되지 않아 좋은 목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한 배에 13∼24명씩 태우고 들어와서 집단별로 막사를 치고 체류하면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전라도 출신들이 화산암으로 형성된 돌섬을 '독섬' 혹은 '돌섬'이라고도 불렀다.
'독섬'의 '독'은 '돌'(石)의 방언으로 지금도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돌' 대신 '독' 방언이 쓰이고 있다.
이렇게 원래 명칭은 '독섬'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현재 '독'은 음차 해 '獨'으로, '섬'은 '島'로 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고흥에는 조상들이 지어주신 이름이 그대로 내려와 도화 덕중에 독섬이 있으며, 과역 연등, 신곡에 석도라는 섬이 2개, 금산 오천에 독도라는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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