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동3 오재동의 시 '그해 가을' 그해 가을 오재동 내 고향 갈재 넘어 月下 가는 길 서리 찬 왕머루 무리져 익어가고 구절~구절~ 구절초 피어난 가을 속으로 한 줄기 기러기 끼르륵끼르륵 하얗게 떠간다 가을빛 번져 잘 익은 강낭콩 머리에 이고 비단옷 날개로 하늘하늘 춤을 춘 고추잠자리 그새 잊을만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떠 오는 것은 보리피리 언덕에 피지 못한 사랑 하나 묻어두고 온 탓일까? 2022. 8. 10. 오재동의 시 '능가사(楞伽寺)에서 능가사楞伽寺에서 오재동 흰 구름 몇 굽이 능선을 감고 넘어온다 솔숲을 헤치고 골짝으로 불어온 바람은 대웅전을 기웃거리고 고요를 흔들어 깨우는 풍경소리는 단청이 시리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흐르는 촛불 앞에서 살아서 지은 죄 풀지 못하고 아스라이 너무나 멀리 있는 염원 꼭 감아쥔 두 손 모두우고 들릴 듯 말 득 향 묻는 음색으로 슬픔을 유언처럼 일궈 올린 여인의 기도 소리 너를 위해 천 번 죽어도 여한이 있으리오 바람이 지나고 새들이 지저귄다 전생에 살다 이생의 산자락 속에서 머물다 가고 싶다고 흘러간 세월 무거운 행장 저 멀리 산 아래 벗어놓고 그림자처럼 올라온 비구니의 포름한 눈동자 눈썹 가늘게 덮고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우리는 것은 지금껏 마음을 닫지 못하고 두고 온 슬픔 하나 남아 있는 탓일까.. 2022. 8. 10. 오재동시인의 시 '도공의 노래' 도공의 노래/ 오재동 천년 세월 도공의 손에서 흐르던 물레야 시르렁시르렁 자꼬만 돌고 돌아라. 하늘이 울고 땅이 길을 열던 날 산기슭에 그리메가 실실이 풀리면 쑥꾹새 울음소리 골골이 빠져들던 남도의 하늘 아래 석촌 운곡 사구실 마을은 울빗장을 죄다 풀어놓으니 독짓는 사람들 줄줄이 찾아들어 만공에 추를 달아 하늘 끝에 모두우고 땅속 깊숙이 바스락거리는 흙 물과 햇빛과 가슴으로 주물럭거려 천도 열량으로 불가마를 지펴내니 분청사기 백자 위로 돋아난 푸른 속말들 백합무늬 물결무늬 비취무늬 칠보무늬 오호라 이것은 가녀린 천 년의 꿈 한 잎의 꽃잎 모양 살포시 눈을 감으면 사르르 감아 돈 소리 없는 가락이 울고 묵묵히 앓고 떠는 도공의 숨결이 흐른다 고와라 고와라 하늘빛 보다 더 얇은 우리들의 사랑 갓구운 옹기 위.. 2022. 4.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