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4 정재순의 수필 '고(孤)' 고(孤) / 정재순 여인의 머리 위에 꽃숭어리가 눈부시다. 쇄골로 살포시 내린 꽃잎에 나비가 앉을 듯 말듯 망설인다. 그림 제목은 ‘고(孤)’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모자랄 처연한 눈빛과 외로움을 애써 잊으려는 희미한 입가의 미소가 눈을 붙든다. 내 고독의 원형을 만난 것처럼 멍히 바라보고 서 있다. 어깨 위 나비와 머리의 화사한 꽃 빛깔이 묘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눈망울은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꽃을 한가득 올렸으나 그 뒤에 숨은 고독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인생의 실패와 좌절로 겪은 아픔을 고유의 색채와 향기를 지닌 꽃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갔다. 신혼시절, 달력에 실린 그림이 마음속으로 쑥 들어와 액자에 담아두고 한참을 그 .. 2022. 9. 13. 이숙진의 수필 '유자' 유자 이숙진 탱글탱글 상큼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공 모양 같다. 초겨울 언저리쯤 되면 노랗게 물들어 빛깔도 곱다. 노란빛 곱기로는 봄의 전령사 개나리와 앙증맞은 애기똥풀이 있고 제주에서 넘실대는 유채바다와 가을 산기슭에서 하롱대는 산국화가 있지만, 짧아진 햇살에 매달린 유.. 2015. 7. 1. 박신아의 수필 '뿌리내리기' 뿌리 내리기 박신아 두 해전 시월 중순 회사에 출근하니 남편의 테이블 옆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높이가 삼십센티가 채 되지 않은 가느다란 가지에 누런 잎파리을 달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부실해 보였다. 잎파리의 모양으로는 레몬나무나 오랜지나무일거라 생각 되었다. 남편도.. 2015. 7. 1. 김양화의 고흥만의 노래 고흥만의 노래 김양화 순해진 마음결처럼 바람이 잔잔한 날, 고흥만 물살이 멸치 떼로 보이 는 현상은 신비롭다. 방조제에 갇힌 물살이 바람결에 밀려 더 이상 멀리 움직이지 못한 채 잔잔하게 고여 있는 모습이 마치 멸치 떼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무수한 멸치 떼가 고흥만에 몰려든 것처럼 보인다. 고요해진 바다 바람결이 고흥만 방조제를 멸치 떼 산실로 만든 다. 눈의 착각 현상일까.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씩 하며 또 다시 보아 도 고흥만 방조제의 물살은 영락없이 멸치 떼이다. 고흥만의 잔잔한 물 살 위로 멸치 떼의 함성이 우렁차다. 자잘한 멸치도 고흥만으로 밀려들 면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고흥만은 멸치처럼 작은 것들을 넉넉하게 품어준다. 그리고 주어진 생명을 찬미하고 싶은 날, 고흥만.. 2010. 8.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