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구석
포두면 소재지에서 천등산(550m) 중턱에 위치한 금탑사까지는 약 7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상대리 갈림길에서 좌측의 봉림리 방향으로 진입하여 금사저수지 상류쪽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의 포장길을 1km 쯤 올라가면 금탑사가 나온다.
▲ 경내도
금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7세기말)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금탑사는 처음에 절을 세울 때 금탑을 함께 세웠다고 해서 이름을 금탑사라 하며 약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절이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으나 1604년(선조37)에 궁현(窮玄)과 왕순(王淳)이 중건하여 수백인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644년(인조22) 무가(無價), 계환(戒環) 스님이 극락전을 중수하였고 1692년(숙종18)에는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 범종각
1767년(영조43) 경징(鏡澄), 획심(獲心), 독일(篤日) 스님이 대총사의 명복을 위해 극락전을 중창, 1834년(순조34)에는 해월(海月) 스님이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35년 순조(純祖)의 능인 인릉(仁陵)과 관련되어 절이 나라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1845년(헌종11) 법당3채와 승료5채 등 12채의 전각이 불타 없어졌다.
2년후인 1847년 극락전에 후불탱화를 봉안하였으며, 1857년(철종8) 나한전 16다한, 탁자를 봉안하였고 1861년에는 유명(有明)스님이 절을 중창하였다. 1868년(고종5) 유명스님이 범종 불사를 하였다.
▲ 금화루
일제강점기 때 금탑사도 쇠락했으나 그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으며, 최근에 들어와서는 1974년 범종이 봉안되고, 1982년 신중탱화의 개수 불사가 있었다.
1991년 이후 지금까지는 서림(瑞林) 스님이 주지하고, 1992년에 극락전 및 축대를 보수함과 아울러 진입 도로를 확장하고 이후 건물에 대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보수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 응향각
금탑사는 4단으로 나누어 가람배치가 되어있는데 1단에는 범종각, 2단에는 법당과 무주당, 요사채 그리고 3단에는 명부전과 나한전이 있고, 마지막으로 4단에는 삼성각과 선원이 있는 구조이다.
▲ 극락전과 나한전, 승방, 세존진신사리5층석탑
절의 입구를 알리는 일주문도 없이 널따란 주차장과 범종각 그리고 2층으로 지어진 관와루가 눈에 들어온다. 관와루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오층석탑과 본존불이 모셔진 극락전이 보인다.
금탑사 극락전은 1985년 2월25일 지방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축대형식으로 쌓은 3단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건물이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약한 굵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창방과 평방은 굵은 부재로 하여 길게 좌우를 빼냈고 그 위에 기둥 사이에 포를 배치하였다.
기둥과 평방이 결구된 부분의 내부에 용모양을 만들어 용머리를 밖으로 내놓았고, 외 3출목에 내 4출목이다, 살미첨차의 앙혀부분은 둥그렇게 굽어올라 가지 않고 직각으로 깍아 각을 이루고 있다.
첨차의 굽면 역시 둥그렇지 않고 경사지게 깍아 강직한 맛을 풍긴다. 약간 넓은 중앙칸에는 2조의 기둥 사이 포가 있고 협칸에는 1조의 기둥 사이 포가 있다.
▲ 삼존불
내부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2개의 대량에 걸쳐 놓은 기둥을 세우고 닷집을 만들었으며, 연등천장이면서 중앙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보개천장을 설치하였다.
이 보개천장과 내부공포와의 사이에는 다시 빗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용의 몸뚱이를 한 부재로 공포와 대량을 연결하여 설치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2분합의 문은 빗살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처마밑이 모두 공포로 휩싸인 듯한 느낌을 주며 4모서리에 활주를 세웠다.
▲ 괘불탱
극락전안의 괘불함에 보관돼 있던 금탑사 괘불탱은 2002년7월3일 보물제1344호로 지정되었다.비현(丕賢)과 쾌윤(快允)이 1788년에 그렸으며 길이 506cm, 너비 648cm로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三世佛)을 표현한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이다.
삼세불은 화면을 횡으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태는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인 원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侈絹)장식 등을 보여준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 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 시기의 것이다.
▲ 요사체
또한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이라 그런지 장독대의 옹기종기 모여있는 항아리와 지천에 널린 화사한 꽃밭들로 인해 금탑사의 모습은 여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도덕면 출생인 신동 손문경이 13살 때에 썼다는 금탑사 현판이 있다.
▲ 명부전
극락전 우측으로 바로 옆에 감로수라 불리우는 원형의 석조가 놓여있고 그곳의 계단을 이용해 오르면 명부전이 나온다. 명부전 우측으로도 아담한 석조가 있다.
▲ 삼성각
극락전 좌측에 있는 무주당을 돌아가서 계단을 오르면 물이 흐르는 예쁜 석조와 나한전 건물이 보이고 나한전 좌측으로 3분 정도 오르면 나무들 사이에 있는 삼성각을 만날 수 있다.
▲ 선원
삼성각에서 계속 산기슭을 오르면 담장이 멋스러운 선원과 최근에 지어진 선원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 서면 금탑사의 전경을 한눈에 다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경내 주변은 온통 화려한 꽃밭들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금탑사는 산중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구니 도량이다. 옛날의 화려하고 규모 있던 사찰을 그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멋스럽고 풍류가 감도는 사찰로 내 마음속에 다가왔다.